예술의 도시에서 만난 예술가 가족

아르헨티나 제2의 문화예술의 도시, Rosaio. 가을로 접어들었지만 커다란 강과 섬들이 있는 이 도시는 모기의 천국이었다. 모기스프레이도 뚫고 내 피를 빨아먹는 모기들,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어느정도 적응이 됐지만 첫 며칠은 제대로 돌아다니기도 힘들 정도였다. 아무튼 이 나라를 거의 종단해서 이과수 폭포를 보고 다시 밤버스를 타고 왔기에 첫 날은 마트에서 요리할 재료들만 사고 푹 쉬었다.

아주 오랜만에 큰 도시에 와서 기대 반 두려움 반 이었다. 난 언제나 큰 도시에 적응을 하지 못 한다. 시간은 있어도 마음이 급해서일까, 보고 느끼고 할 것들이 많은 도시에서는 도대체 뭐 부터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일정을 짜야할 지도 모르겠다. 우선 처음엔 늘 하던대로 박물관과 미술관들을 가보려고 했지만 왜 이렇게 여는 시간도 제각각이고 가 보면 문 닫은 곳이 대부분인지.,

그래도 탱고 기초 수업도 한 번 듣고, 극장에서 환상적인 현대무용과 연극도 관람했다. 밤이 되면 광장에서 탱고를 보러 가서 부끄러웠지만 나도 탱고를 즐겨봤다. 아르헨티나의 자부심이라고 할 수 있는 탱고, 나를 보고 가르쳐 주겠다고 하는 친절한 사람들도 역시 있다. 하지만 어렵다. 적어도 반 년은 탱고만 해야 조금은 마음 편히 파트너를 리드할 수 있을텐데.

학교도 많고 예술의 도시 답게 거리는 언제나 활발하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사는 모습 또한 다양하다. 파타고니아에 있다가 와서 그럴까, 사람들이 참 맘에 든다. 문화예술을 즐기는 여유가 있는 사람들부터 길거리에서 바쁘게 샌드위치를 파는 사람들까지 오랜만에 사람들의 친절함과 따뜻한 냄새를 느꼈다.

호스텔 생활도 아주 편했다. 파티호스텔을 갈 수도 있었지만 가격때문에 온 곳인데, 대학생들 위주로 많은 사람들이 리셉션을 관리해서 그것 자체도 매우 흥미로웠다. 새벽 늦게 들어와서 술을 마시고 있으면 옆에 와서 자기가 만든 노래를 기타를 치며 들려주기도 하고 일하는 내내 공부만 하는 학생도 있고 TV만 보는 학생도 있다. 학교 수업때문에 일주일에 3일은 여기서 지낸다는 고등학교 선생님과 Asado 파티를 했고, 암에 걸리셨지만 이미 전 세계의 대부분을 알고 아르헨티나에만 14번째 방문인 영국 할아버지, 도대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청년 등, 호스텔이 아니라 한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을 계속 보는 기분이었다.

예술가 가족을 만나다
지금부터 석 달도 더 전에 Jujuy에서 히치하이킹을 했는데 그때 만난 가족을 보고 싶었다. 반나절의 시간을 같이 보낸게 전부인데 남매들과는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계속하고 있었고, 때마침 아들의 생일이 이번 주라서 나도 초대되어 가게 되었다. 클럽이라고 들었지만 그저 동네 선술집 같은 곳. 예술가 집안 답게 친구들과 친척들도 개성있고 자기들의 악기를 가져와서 음악도 계속 연주한다. 대학 동아리 시절의 풍경과 너무 비슷해서 잠시 15년 전 그 때를 생각하기도 했다. 아버지, 어머니는 나를 기억하고 반겨주셨고 다음 날 집에서 같이 식사를 하자고 하셨다. 그리고 다음 날 그 집에서 정말 맛 있는 음식을 먹고(역시 집에서 먹는 밥이 최고야!!),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미술가고 아들과 딸도 영화와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 25년 전에 산 집의 인테리어는 대부분 아버지가 직접 만들었고 두 분의 작업실도 실컷 구경했다. 외출하는 딸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모습과, 결혼과 아이에 대한 얘기까지.. 역시 지구 반대편에 있지만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하다.
* Adrián Carnevale - http://www.adriancarnevale.com.ar/
* Luchi Collaud - http://www.luchicollaud.com.ar/

지금 생각해도 믿기 힘들다. 우린 그저 몇 달 전에 몇 시간을 같이 보냈을 뿐인데 이렇게 다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리고 난 선물도 받고 그날 저녁 조카부부 집에서 있는 식사자리에도 초대받았다. 전날 예매해 놓은 연극표가 없었다면 난 아마 그 날도 하루 종일 로사리오 가족들과 지냈을 것이다.

내가 남미에서 만났던 가족들이 그랬듯, "수, 잊지 말라고. 이 나라에 오면 우리가 있다는 것을! 언제든지 환영이야!" 나를 울리게 하는 말을 또 들었다. 우수아이아를 빼면 파타고니아를 여행하면서 늘 사람냄새를 그리워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습니다. 인연이 계속 이어지겠죠... 저도 보답하고 싶어요.'

 

하지만 마지막은?
음... 이런 저런 일로 마음이 편치 않다. 사실, 아주 괴롭다. 이 일기도 억지로 쓴 것이라 내가 느낀 것들이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을 것 같다. 모든게 다시 꼬이기 시작하고 불안하다. 이제 여행의 끝인데...,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는 괴로워만하다가 귀국할 지도......

3087 views and 0 respons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