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에서 폭포까지
파타고니아의 마지막은 El Calafate 에서 빙하를 보는 것. 거대한 빙하를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조금은 기대했던 곳. 역시나 학생증 신공과 아르헨티나 학생이라고 우기는 비양심적인 행동으로 비싼 입장료 대신 현지가격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스스로에게 변명을 한다. 아르헨티나 북부부터 구석구석 다녔지만 국립공원이라고 그러면서 대중교통으로 갈 수 없던 곳이 얼마나 많았어? 결국 차가 없으면 비싼 투어로만 갈 수 있었던 곳들. 미안하지만 이제 돈을 아껴야 겠어.
언제나 그렇듯, 남들 다 가는 곳은 감흥이 크지 않다. '아.. 그냥 발도장 찍었구나'. 그래도 다행히 날씨가 너무 좋았고 오후시간을 선택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투어객들이 없어서 나름대로 조용히 빙하를 감상했고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무너지는 빙하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제 남은건 이과수 폭포와 두 개의 큰 도시 Rosario, Buenos Aires 그리고 우루과이.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마지막으로 남겨두고 우리는 이과수 까지 달리기로 했다. 화가 날 정도로 비싼 아르헨티나 버스비, 다행히 버스비와 비슷한 저가 항공이 있지만 이미 다 매진. 고민끝에 6만원 정도를 아끼고 아르헨티나 동쪽을 종단한다는 의미를 두고 우리는 버스를 선택한다.
El Calafate -> Rio Gallegos 4시간, Rio Gallegos -> Buenos Aires 36시간, Buenos Aires -> Puerto Iguazú 20시간. 그렇게 3박을 버스에서 지내면서 60시간을 달렸다(원래 계획은 그 중간중간 지역들을 둘러보는 것이었지만 포기했다, 그리고 크게 즐길거리도 없는 것 같아서;;). 음식이 포함된 버스라면서 아침은 커피에 설탕과자 하나, 점심은 싸구려 햄치즈빵, 그나마 저녁만 식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제공되었다. 난 결국 이과수에서 다시 Rosario로 오는 버스에서까지 아르헨티나의 버스를 욕했다. 내가 듣기론 환상적인 서비스의 아르헨티나 버스, 언제부터 이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몇 십만원을 내고 탄 장거리 버스 여행은 실망만 안겨주었다. 더군다나 그렇게 아름다웠던 아르헨티나의 풍경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북동쪽의 분위기와 자연이 조금 색다른 느낌을 줬다는 것 빼고는.
아니나 다를까, 이과수 폭포도 예상보다는 감흥이 덜 했다. 물론 '악마의 목구멍'에서는 탄성이 나오고 그냥 빨려들어가 떨어지고 싶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비싼 입장료 값을 못 했다. 그렇다. 관광지는 순간이다. 언제나 긴 여운을 남기지 않는다. 나만의 절경이나 사람들과의 추억이 평생 남을 내 여행의 자산이다.
빙하, 폭포와 별개로 내가 아르헨티나에서 처음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두 도시 El Calafate, Puerto Iguazú 를 떠나 아르헨티나 제2의 문화도시 Rosario 로 왔다. 나는 괜찮은데 내 몸이 자꾸 피곤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내 생애 가장 긴 버스 여행의 후유증일까.
점심에 와인을 마시고 이제 잔다. 이제 내 여행도 끝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