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에서 폭포까지

Ushuaia 에서 El Calafate 까지 버스 17시간. 고맙게도 내 여행친구가 날 기다리고 있었고 예상대로 이스라엘 여행자들이 대부분 시끄럽게 떠들고 있다. 숙소 가격이 너무 싸서 내가 고른 곳이지만 다음 날 우리는 그렇게 유명(?)하다던 '후지여관'을 가 보았다. 한국인,일본인 부부가 운영하는 숙소. 송어낚시 투어도 있다고 하고 도대체 얼마나 정겨운 곳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터미널 및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후지여관, 하지만 가격도 다른 호스텔에 비해 비싸고 한국인 아주머니도 그다지 정겹지 않은데? 이렇게 외진 곳이면 주변 마을이 이쁘거나 생활하기에 편리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다. 멕시코부터 일본인 숙소들을 쭉 둘러본 내가 보기에 후지여관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우리는 집을 나오자마자 바로 '여긴 아니야'라고 동시에 느꼈다. 멕시코 San Cristobal 이나 칠레 Viña del Mar 의 숙소를 가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도대체가 떠날 수 없게 만드는 가정집 숙소의 매력이 무엇인지.

파타고니아의 마지막은 El Calafate 에서 빙하를 보는 것. 거대한 빙하를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조금은 기대했던 곳. 역시나 학생증 신공과 아르헨티나 학생이라고 우기는 비양심적인 행동으로 비싼 입장료 대신 현지가격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스스로에게 변명을 한다. 아르헨티나 북부부터 구석구석 다녔지만 국립공원이라고 그러면서 대중교통으로 갈 수 없던 곳이 얼마나 많았어? 결국 차가 없으면 비싼 투어로만 갈 수 있었던 곳들. 미안하지만 이제 돈을 아껴야 겠어.

언제나 그렇듯, 남들 다 가는 곳은 감흥이 크지 않다. '아.. 그냥 발도장 찍었구나'. 그래도 다행히 날씨가 너무 좋았고 오후시간을 선택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투어객들이 없어서 나름대로 조용히 빙하를 감상했고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무너지는 빙하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제 남은건 이과수 폭포와 두 개의 큰 도시 Rosario, Buenos Aires 그리고 우루과이.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마지막으로 남겨두고 우리는 이과수 까지 달리기로 했다. 화가 날 정도로 비싼 아르헨티나 버스비, 다행히 버스비와 비슷한 저가 항공이 있지만 이미 다 매진. 고민끝에 6만원 정도를 아끼고 아르헨티나 동쪽을 종단한다는 의미를 두고 우리는 버스를 선택한다.

El Calafate -> Rio Gallegos 4시간, Rio Gallegos -> Buenos Aires 36시간, Buenos Aires -> Puerto Iguazú 20시간. 그렇게 3박을 버스에서 지내면서 60시간을 달렸다(원래 계획은 그 중간중간 지역들을 둘러보는 것이었지만 포기했다, 그리고 크게 즐길거리도 없는 것 같아서;;). 음식이 포함된 버스라면서 아침은 커피에 설탕과자 하나, 점심은 싸구려 햄치즈빵, 그나마 저녁만 식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제공되었다. 난 결국 이과수에서 다시 Rosario로 오는 버스에서까지 아르헨티나의 버스를 욕했다. 내가 듣기론 환상적인 서비스의 아르헨티나 버스, 언제부터 이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몇 십만원을 내고 탄 장거리 버스 여행은 실망만 안겨주었다. 더군다나 그렇게 아름다웠던 아르헨티나의 풍경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북동쪽의 분위기와 자연이 조금 색다른 느낌을 줬다는 것 빼고는.

아니나 다를까, 이과수 폭포도 예상보다는 감흥이 덜 했다. 물론 '악마의 목구멍'에서는 탄성이 나오고 그냥 빨려들어가 떨어지고 싶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비싼 입장료 값을 못 했다. 그렇다. 관광지는 순간이다. 언제나 긴 여운을 남기지 않는다. 나만의 절경이나 사람들과의 추억이 평생 남을 내 여행의 자산이다.

빙하, 폭포와 별개로 내가 아르헨티나에서 처음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두 도시 El Calafate, Puerto Iguazú 를 떠나 아르헨티나 제2의 문화도시 Rosario 로 왔다. 나는 괜찮은데 내 몸이 자꾸 피곤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내 생애 가장 긴 버스 여행의 후유증일까.

점심에 와인을 마시고 이제 잔다. 이제 내 여행도 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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