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우수아이아

더 머물고 싶어도 떠나야 할 때가 있다. 그저 슬픔만 버리고 혼자 사색의 시간을 가지려고 했던 우수아이아에서의 일주일은 좋은 친구들과 추억을 나에게 선물해줬다. "수, 이거 가져가야지!". 페드로 할아버지는 며칠 전 같이 마시던 와인 병을 물에 담가두고 오늘 밤 병에 붙어있던 상표딱지를 떼어주었다. "네 여행친구가 와인에 관심이 많다며, 그리고 네가 이 화이트와인이 맛있다고 해서.. 네 친구에게 선물해줘." 난 내일 새벽버스를 타고 떠나기 때문에 이제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해야 한다. 할머니는 남은 내 여행을 위해 기도를 해 주셨고, '로미나, 에스겔' 부부와도 작별키스를 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짐을 챙기고 나가려는데 페드로 할아버지가 깨셨다. 한번 더 인사를 하고 난 문을 나섰다. 언덕을 내려가는데 할아버지가 또 내 이름을 부른다.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고 나를 보시는 할아버지를 보니 어제 마지막 밤이 더 아쉽게 느껴진다.

나의 가장 아름다운 가을
오늘은 엽서들을 보내고 조용히 쉬려고 했는데, 에스겔이 같이 국립공원에 가자고 한다. 내가 입장료 때문에 조금 머뭇거리자 할머니가 말씀하신다. "수, 갔다와. 내가 하루 숙박비 빼줄테니까!". "아뇨, 할머니. 그러실 필요 없어요. 학생증 있으니까 할인은 될 거에요, 감사합니다." 원래 60페소 정도의 입장료를 내야 하지만 난 결국 아르헨티나 현지인 할인 가격인 5페소만 내고 공원에 들어갔다^^ 이게 다 로미나, 에스겔 부부랑 차 타고 같이 간 덕분이다.

Parque Nacional Tierra del Fuego. 여기 지나쳤으면 후회할 뻔 했다.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가을 풍경이다. 하지만 난 디카의 배터리를 집에 두고 왔고, 다행히 가방에 필카가 있었지만 필름이 몇 장 없다. 물론 내가 본 풍경을 이 카메라들로 표현은 못 하겠지만 땅을 치고 후회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게 아이폰으로 사진 찍는건데 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가을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이 넓은 아르헨티나 땅끝에서의 가을은 더 다양한 풍경과 공기를 가지고 있다. 평소에 보기 힘들었던 동물들도 함께. 비록 거센 바람이 계속 불었고 가끔씩 비가 내리기도 했지만 바로 옆에선 밝은 햇살도 보인다. 파타고니아의 날씨는 늘 이렇다. 어제 모든 슬픔을 버리고 오늘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을 느끼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캠핑차 안에서
우리는 차를 잠시 세우고 Mate를 나눠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다가 조금 옆에 있는 캠핑차를 발견했다. 가서 말을 걸어보니 부에노스 아이레스 출신 커플. 이제 여행을 막 시작했다. 차 밖에는 블로그 주소와 여행 목표가 써 있는 스티커가 붙어있다. 'de Ushuaia a Alaska'. 우수아이아에서 알라스카까지 이어져있는 Pan-Amercian 고속도로를 타고 올라가겠다는 것이다. 봉고차를 개조해서 만든 캠핑차. '나도 다음에 다시 여행을 떠난다면 차를 가지고 여행을 가고 싶다. 특히 아르헨티나는 차로 여행하기에 더 최적화된 곳이고...'

우리는 Mercedes Sosa의 노래로 시작해 아르헨티나 북부 전통 음악을 들으면서 해가 질 무렵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 이쁘게 여행하는 부부, 커플이다. 난 아직 여자친구의 마음을 저렇게 편하게 해주고 믿음을 주는 사람이 아닌데... 저런 사람이 못 될거라면 부러워만 하지말고 내가 가진 장점을 더 알아야 할까.'

내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가을을 뒤로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난 마지막 남은 한 장의 엽서를 쓰고 우체통에 넣었다. 저녁을 먹은 후 샤워를 하고 방에서 짐 정리를 하는데 식탁에서 내 얘기를 하는 소리가 들린다. 뭐가 저렇게 즐거울까. 이제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가야지...


* 우수아이아 (Ushuaia) 숙소 정보

Deloqui 395, Ushuaia.
Hilda 할머니와 Pedro 할아버지 집
. 문에 이름 써 있습니다.
아침부터 점심, 저녁 모두 같이 먹을 수 있는 곳(물론 얻어먹기만 하면 안되겠죠;;)
하루 40페소. 터미널, 부두, 중심거리, 마트 모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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