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싶다면 바로 이 마을에서, El Bolsón
멕시코의 San Cristobal de las Casas, 과테말라의 호수마을(Lago de Atitlan)에서 들었던 생각이 여기서도 난다. '1년 정도 여기서 살고 싶다...'. 중심거리는 관광지분위기가 나지만 과하지 않다. 아름다운 산으로 둘러쌓인 이 마을은 높은 건물이 없어서 시야가 매우 좋고 불과 두 시간 거리지만 바릴로체와는 다른 사람들이 있다. '나에게 먼저 인사하고 얘기를 건네는 사람들이라니... 아르헨티나 북부 이후 이게 얼마만이야!'. 비핵화지역인 이 곳엔 70년대부터 모여든 히피들이 있고 음악과 문화가 있다. 친환경 농장에서 나오는 신선한 채소들과 나를 깜짝 놀라게 한 지역 특산 맥주들!! (아마도 귀국하면 우리나라 맥주 안 마실지도 모르겠다. 왜 그렇게 맛 없는건지;;) 아쉽게도 현지 친구를 만들 시간과 여유가 없었지만 이 곳을 지나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별 하는거 없이 보낸 시간도 많아 주변 마을 방문이나 계획했던 하이킹도 거의 못 했지만 대신 동행자 두 명과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다섯 밤을 여기서 보냈다.
* 화,목,토에는 이렇게 광장 주위로 장이 열린다. 당연히 먹거리도 있고 맛 있는 맥주도 있다!
"혼자 여행한다고 자신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도 아니고 둘이 여행한다고 그런 생각을 못 하는게 아니더라구요. 오히려 길게 여행하다보면 생각이 단순해지고 고민자체가 없어지기도 해요." 현재 여행이 3년 째인 누나의 말. 아직 난 1년도 안 됐지만 여행이 단순해지고 고민도 없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여행을 하면 커다란 깨달음을 얻고 미래가 달라질거라 생각했던 내 바람이 잘못된 것 이었다. "여자 셋이 있는 것 같아요. 병수씨는 참 부드럽고 편안해요." 과연 그럴까? 늘 말했든 나도 내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모른다. 귀국하고 답답한 일상에 다시 찌들면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사라질까?
* 천막 극장, 이 얼마만에 보는...ㅠㅠ 그리고 클럽에서 블루스음악을 못 봐서 근처 갤러리에서 컨츄리/포크 음악을 들었다
아무튼 시간이 지나면서 귀엽고 재밌는 사고를 더 많이 치는 경주와 바릴로체부터 함께한 누나. 술을 좋아하는 둘과 나는 거의 매일 와인과 맥주를 마시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누나는 우리와 함께 칠레로 돌아오고 이틀 후 먼저 아래로 내려갔다. 만나서 마음 통한다고 잘 노는 것보다 마지막 헤어질 때까지 그 마음이 지속되는게 언제나 더 힘들다. 안녕.
파타고니아라고 모두 관광지만 있고 차가운 사람들만 있는게 아닐텐데 처음부터 내가 큰 벽을 쌓고 시작했던 것 같다. 엘 볼손 보다 더 작고 아름다운 마을들이 많을텐데 경제적, 시간적인 문제로 빠르게 지나칠 수 밖에 없어서 아쉽다. 그리고 지금 칠레의 항구도시 Puerto Montt 에는 강한 비바람이 계속되고 있다. 요리할 재료도 없는데 추워서 나가지 못 하겠다. 오랜만에 배고픔을 느낀다. 여행 중 두번 째로 부모님께 엽서를 보내고 나머지 한 엽서는 비어있다. 누구에게 보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