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언제 떠나지?

내가 라틴아메리카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좌파정권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나라는 미국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점점 외국의 자본과 힘이 그들의 삶 속에 파고든 것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지만 말이다.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칠레는 여러가지 면에서 관심을 가졌던 나라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면서 완전히 관심 밖으로 사라졌었다. 아르헨티나 물가도 견디기 힘든데 칠레 물가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고, 아르헨티나 북부가 나에겐 너무 매력적이어서 다른 곳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오랜 군사독재의 역사, 조금은 급해보이는 성격의 사람들(하지만 얘기하다보면 정이 많은듯?!), 고추장 같은 매운 소스들, 마치 한국 같은 풍경의 거리들과 건물들. 이렇게 별 것 아닌 것들에 벌써 칠레가 좋아지고 있다. 비록 지금은 보수정권이지만 군사독재 이후 20년 정도 중도좌파 연합이 정권을 유지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점이다. 난 아직도 죽기 전에 우리나라에서 좌파가 집권하는 모습을 볼거라 믿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수도 Santiago에서 5일 정도를 보내고 근처 항구도시 Viña del Mar로 왔다. 빈민가촌이라고 할 수 있는 Valparaiso의 옆 동네이기도 하다. 산티아고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이곳에 머물게 된 이유는 역시 일본인 가정집 숙소가 있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더 깨끗하고 조용한 집 이었다. 날씨가 조금 차가운 이 곳은 너무 조용하고 바다 냄새가 바람을 타고 들어오는 것 같다. 가격은 당연히 싸고 내 집같이 편안한 화장실, 주방, 빨래터가 있는건 기본. 숙박계를 적는데 혈액형을 써야 하고 가장 좋아하는 나라와 싫어하는 나라 그리고 현재 기분을 적어야 한다^^ 가장 좋아하는 나라는 "콜롬비아!!", 현재 기분은 "너무 배고파요!!"

마을이 아무리 이뻐도 빈민가촌을 거니는건 언제나 불편한 일이다. 하지만 반나절 머무는 나에겐 그저 카메라로 사진찍고 최대한 주민들에게 피해가는 일을 하지 않는게 최선. 그래도 그렇게 먹고 싶었던 해산물 요리를 와인과 함께 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매일 이렇게 먹을 수 없기에 평소에 최대한 요리해서 먹거나 돈을 아끼는게 중요하다;;

아침엔 간단한 식사를 하면서 TV를 본다. 뉴스가 보고 싶을 땐 마떼를 마시면서 편안하게 시청한다. 쌀쌀하고 해가 안 보이는 날씨지만 저녁 무렵이 되면 햇살이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 머무시는 아저씨의 아름다운 클래식 기타 소리에 그 동안 쌓였던 피로가 전부 풀어지는 듯 하다. 일본책 밖에 없다는게 가장 아쉬운 일, 가져온 책은 이미 읽어서 새로 읽을 책이 없다. 여기서 일주일 동안 머물면서 책 읽고 요리해서 밥 먹고 자고.. 그냥 이렇게 지내고 싶다.

내일부터는 여기서 유명한 음악축제가 시작된다. 금요일에는 Sting도 온다던데... 난 그 전에 여기를 떠나야 하겠지?ㅠㅠ

 

* Viña del Mar 일본인 가정집 숙소
Shiomiso : Baquedano 319, Recreo, Viña del Mar
터미널에서 수크레 광장까지 도보이동, 거기서 합승택시 86번 타면 집앞에 내려주고 Recreo라고 쓰여진 합승택시 아무거나 타고 Baquedano거리 입구에 내려서 언덕 조금 올라가면 됩니다. 하루 6,000페소, 4번째 밤부터는 5,500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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