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icaca 에서 수영하고 싶다고?

마음이 여린건지 정이 많은건지 아니면 터미널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기사 아저씨와의 대화 때문인지, 막상 페루를 떠나는 밤은 슬펐다. 여행 초기에는 나라를 떠날 때 다음 나라로 이동하기까지의 교통수단, 그리고 그 나라에서의 숙박문제로 슬퍼할 틈이 많지 않았지만 어느덧 반년이 넘어가는 여행은 아주 익숙한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 그리워하거나 슬퍼할 여유까지 생겼다. 어쨌든 볼리비아로 가기 위한 페루의 Puno 터미널에서도 사기를 치려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마지막까지 이어졌지만 난 마음을 가다듬고 Titicaca 에 대한 설레임만 생각했다.

만약 과테말라 호수마을과 비슷한 분위기라면 난 여기서 일주일 이상 머물 생각이었다. 볼리비아 입국 심사가 끝나고 다시 버스에 올라타자 한 아저씨가 기본적인 볼리비아 여행에 대한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Copacabana 에 대한 설명과 홍보를 하기 시작한다. 얘기가 끝나고 버스에 있는 모든 여행자들에게 호스텔 명함을 나눠주는데 내 자리는 그냥 지나친다. 'ㅎㅎ 당신도 날 무시하는거야? 내 모습이 당신이 가지고 있는 호스텔에 머물 능력이 없어 보이니? 아니면 나만 혼자 앉아있어서?' 현지인 혹은 같은 여행자 중에서도 차별을 하는 사람은 종종 만난다. 꼭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얘기만 해도 알 수 있다. 처음엔 화도 나고 서러웠지만 지금은 별 느낌이 없다. '지금 당장은 내가 당신들을 설득할 여유가 없어. 내 여정을 꾸려나가고 조금이라도 좋은 경험을 하는게 나에겐 우선이라고.'

숙소를 미리 정하지 않아서 가격을 알아보려고 돌아다니는데 모두 거절한다. "혼자에요? 우린 더블룸 이상이라 한 명에게 내 줄 방이 없어요." "도미토리도 없어요? 지금 건물안에 방이 텅텅 비었는데 안 내주겠다고요?" 뭐 이런 곳이 다 있나. 작은 이 마을에 수 많은 호스텔과 호텔이 있는데 손님을 거절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배를 타고 '태양의 섬'에서 숙박을 하는게 일반적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푼돈 받아가며 방 하나 관리하는게 오히려 손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조금 황당했다. 지금 다시 가이드북을 보기도 귀찮고 난 아무한테나 말을 걸어 물어보았다. "여기 저 혼자 묶을 싼 방이 있을까요?" 결국 허름해 보이는 한 건물에 들어가서 겨우 방을 구했다. 여기 주인아저씨도 처음엔 망설였으나 내가 싱글룸 없냐고 자꾸 다그치자 결국 방 하나를 내주었다. 그래도 아저씨는 다음날 내가 떠나기 전까지 나의 수 많은 질문들에 친절하고 상세히 답해주셨다. '첫 인상과 만남이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자. 계속 다가가고 먼저 말을 걸자. 내가 웃으면 상대방도 웃을 수 밖에 없을테니...'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호수, 하늘과 가장 가까운 호수 Titicaca. 실제로 바라보고 있으면 구름이 내 머리 바로 위에 있는 것 처럼 느껴진다. 바다가 없는 볼리비아 사람들에겐 바다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넓은 바다 혹은 아늑한 호수 그 어떤 느낌도 없었다. La Isla del Sol (태양의 섬)도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는 것만 좋았을 뿐, 불친절하고 퉁명스러운 상인들, 결코 싸지 않은 물가, 오래 머물 수 없도록 되어있는 호스텔 등 마음에 드는 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 높은 고도가 사람들의 성격에 영향을 주기 때문일까. 아니면 대부분 하루 이틀 묶는 여행자들을 상대하기 때문일까. 그래도 난 불편했다. '과테말라 호수마을을 봐. 어느 호수마을이 더 아름다운가를 따지기 이전에 거기 사람들의 친절함, 싼 물가, 장기체류가 가능한 숙박시설 등을 보라구!'

그래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고 짜증만 낼 수는 없다. 내가 여행을 하면서 달라진게 있다면 한국에 있을 때 보다 모든 일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는 것이다. 구석구석 걷다보니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장소를 만나기도 했고 사람들이 아무리 불친절해도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난 사람들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지금 내가 여행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인데 한국에 돌아가서도 이랬으면 좋겠다. 내가 생각해도 요즘 나는 사람들에게 참 잘 다가가고 질문도 많이 하고 얘기도 많이 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당연히 서로 웃을 수 밖에 없는 얘기도 하게되고 뜻밖의 여행정보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나에겐 짧지만 또 하나의 이미지를 가슴 속에 담을 수 있지 않은가. 내가 예의를 지키면 상대방도 나의 마음을 이해하고 다가오더라. 쉽지 않은 일이지만 서로를 동물원에 있는 동물 보듯이 보는게 아니라 작은 것 부터 하나씩 다가가고 이해한다면 친구가 될 수 있다.

'후아유'의 서인주(이나영)는 Titicaca 에서 수영을 하면 세상 가장 높은 물에서 수영을 하는 것이라며 언젠가 꼭 하고 싶다고 했지만, 많은 여행지는 직접 와 보면 방 안에서 상상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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