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u 도착, 500원 사기부터 히피들의 잔치까지
에콰도르 남부지역에선 페루 국경에서 가까운 도시까지 직행하는 버스가 있어서 좋다. BlackSheepInn 에서 에콰도르에서 가장 행복한 나날들을 마치고 Loja에서 프랑스 친구들을 또 만났다. 오따발로, 바뇨스에 이어 세 번째 만남. 아무튼 페루 중간에서 헤어지고 난 Trujillo 로 갔다. 수도 리마로 가기 전에 잠깐 쉬기 위해서 그리고 전원생활을 마치고 큰 도시에 다시 적응하기 위해서.
페루 터미널에서는 에콰도르에서 쓰던 US달러를 내면 페루Sol로 거슬러 준다. 터미널에 1달러에 2.75솔 이라고 써 있다. 조금 손해 보는 환율이지만 여기 ATM에서 돈을 꺼내기 싫어서(난 항상 방문하는 나라에서 초기에 한 번만 돈을 뽑는다. 수수료 때문에;;) 달러로 버스비를 냈는데 2.70으로 계산해서 거슬러 준다. 내가 1솔 더 줘야 한다고 말하자 젊은 직원은 환율표를 2.7로 바꾸면서 오늘 변경됐다고 한다. 밤새 버스타고 국경을 넘어서 피곤하기도 해서 그냥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화가 났다. 더군다나 5분 있다가 환율표가 다시 2.75로 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처음부터 이렇게 당할(?) 수 없다는 생각에 팀장급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항의를 했다. "20달러 냈는데 1솔 덜 받았어요. 저기 환율표 보세요" 조금은 찡그린 표정으로 아까 그 젊은 직원을 부르더니 막 뭐라고 하고 난 결국 1솔을 받았다. 배낭여행자들은 알 것이다. 100원, 500원이 얼마나 소중한 돈인지.
뜨루히요에서는 페루 가족이 운영하는 호스텔에 머물렀다. 하지만 명성과 다르게 주인아저씨, 아주머니는 매우 불쾌하고 불친절했다. 아들로 보이는 청년만 하루 종일 일하면서 그나마 내 말을 들어줬지 머무는 내내 욕을 내뱉고 싶을 정도였다. 가격이 나에겐 조금 비싸게 느껴졌지만 푸짐한 아침이 있다는 말에 그냥 이틀 여기서 지내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또 짜증이 났다. 아침은 백원이면 살 수 있는 빵쪼가리 두 개에 미칠정도로 맛 없는 커피 한 잔. 내가 여행을 하면서 짜증이 나기 시작한 것은 그 만큼 여행 자체가 나에게 일상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행 초반에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했고 화를 내 본적이 없다. 아무튼 난 산책하러 나가면서 "아침이 정말 실망이네요. 푸짐하다고 했는데 달걀요리도 없고 과일쥬스도 없고.." 결국 다음 날, 아침식사가 달라졌다. 과일쥬스도 있고성의없는 달걀 후라이도 있다. 그런데 이젠 빵이 없다. 'ㅎㅎ 너희 정말 재밌는 사람들이구나!'
이제는 조금은 지겨울만한 콜로니얼풍 도시와 커다란 광장. 그래도 난 아직까지 좋다. 항상 첫 날에는 광장이나 공원에 가고 시장에 가서 밥을 먹는다. 시장밥이 얼마나 싼지, 먹을만 한지, 분위기는 어떤지 파악하기 위해서. 아무튼 워낙 대도시라 차도 엄청 많고, 사람도 북적인다. 근교에 위치한 'Chan Chan'이라는 유적지와 서핑하기 좋은 바다 'Huanchaco'를 구경하긴 했지만 심심하다. 사람들에게 혹시 현대미술관 같은거 있냐구 물어봤더니 있다고 해서 갔다왔지만 여전히 따분하다. 그리고 사람들도 별로 맘에 안든다.
그러면서 그냥 길을 걷고 있는데 한 청년이 말을 걸어 온다. 자기도 한국에서 두 달동안 일했다면서, 직업은 가수고 지금 친구랑 같이 에콰도르 한 축제에 공연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러 여기 들렀단다. '너, 잘 걸렸다. 얼마나 재밌게 나한테 사기치나 보자'. 우리는 같이 점심을 먹었다. 조금 있다가 친구가 합석했도 여자친구 두 명도 합석했다. 저녁에 바에서 살사파티 가서 같이 놀자고 한다. 가장 웃겼던건 "그거 알아요? 100솔 짜리 지폐는 현재 대통령 얼굴이 새겨져 있어. 몰랐지? 한 번 줘봐, 내가 확인해 줄게". 예전 같으면 난 불안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웃음만 나온다. 난 지금 100솔 짜리 없다고 말하면서 한국에 대한 질문 공세를 했다. 당연히 제대로 아는게 없다. "야, 너 한국에서 일했다는거랑 지금 말하는거 전부 거짓말인거 알아. 내가 너희들한테 속을 정도로 바보로 보이냐" 얼굴이 빨개지면서, "왜 내 말을 못 믿는지 모르겠네. 저녁 7시에 광장에서 보자. 오늘 밤 같이 즐기자고!" 난 혼자 계산을 하고 나가면서 말했다. "자꾸 이러면 사람들이 말하는 페루사람들에 대한 얘기 전부 믿어버린다. 그만해라!"
그래도 이렇게 짜증만 내고 다니기 싫어서 공원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그래, 친절하고 재밌는 사람들이 없을리가 없지!' 그리고 수도 리마로 향한다.
리마의 숙소는 콜롬비아에서 만난 한국 친구가 소개해 준 곳. 간판도 없고 인터넷이나 가이드북에서 찾을 수 없는 곳. 당연히 장기체류나자 개성강한 여행자들이 많다. 어차피 리마에선 똑같은 패턴의 생활을 하기 싫었는데 너무 잘 됐다. 카메라가 고장나서 수리하러 가야하는데 주인 아저씨가 고물 봉고차로 데려다 줬다. 카메라를 맡기고 다른 여행자 친구들과 하루 종일 주변 해변 대부분을 돌아다녔다. '어? 이거 재밌는데!' 저녁에는 밤바다가 보이는 절벽 근처의 공원에서 진짜 히피들의 잔치가 벌어졌다. 다양한 타악기와 피리, 트럼펫, 기타 등 모든 악기가 다 같이 연주하고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이 타악기가 된다. 모닥불을 중심으로 모두 춤을 추고 황홀감에 빠져 있다.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고 같이 빠져 보고 싶었던게 이거였는데!' 주인 아저씨가 아니었으면 가 보지도 못 했을 숨은 해변들과 히피들의 아지트까지. 밤에는 피자도 주고 와인도 준다. '어... 이거 다 공짜 맞나;;' 아무튼 리마에서는 책 보면서 공원이나 박물관 돌아다니고 맛 집 찾아다니는 패턴의 생활은 안 할 것이다.
여행은 이렇게 내가 한국에서 살았던 일상보다 더 다양하고 재밌는 기복이 있다. 그래서 항상 긴장하고 설레이고 짧은 순간에 더 많은 추억을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