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시작

※ (내가 듣기로는) 우유니 소금사막 안에 있는 호텔들은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이 불법이라고 알고 있다. 1박 이상의 투어를 할 경우 꼭 고려하자. periphery 근처에 있는 호텔들은 괜찮으니 확인해 보자.

- 갑작스런 볼리비아의 이별

새벽 1시에 숙소를 나와 바로 앞에 있는 기차역으로 갔다. Moro와 Doro를 기다리다가 배가 고파 노점에서 계란햄버거를 사 먹었다. 할머니에게 버스 사고를 얘기했더니 가격을 깎아주신다. 아직 배낭을 찾지 못 했지만 여기서 마냥 기다릴 수는 없어서 우리는 다음날 밤기차표를 샀다. 그런데 잠이 안 온다. 만약 내일 배낭이 도착하지 않으면? 기차표를 환불해야 할까? 아니, 배낭 자체는 무사할까?

내가 숙박비를 5Bs 깍아서 그런건지 아니면 원래 그런건지 숙소 아저씨, 아주머니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버스 사고를 당했고 배낭도 차 안에 있으니 샤워를 위해 수건을 좀 빌리려고 했으나 샤워비, 수건대여비를 모두 내란다. 그래, 열악한 이 곳의 환경과 물의 소중함은 알겠는데 찬물로 샤워하겠다고 해도 마찬가지. 어차피 며칠 동안 더러워진 몸, 아르헨티나 가서 씻자. 그리고 난 나가면서 그들에게 말했다. 사실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신경이 너무 날카로운 상태였나보다. "너무 불친절하시네요. 몸이 아파서 샤워 좀 하겠다는데...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인터넷에 불친절하다고 쓸거에요. 뭐, 어차피 여기는 하루 장사여서 신경 안쓰시겠지만요."

몸도 안 좋고 기름값 인상으로 인해 또 다시 불안해진 정세. 난 소금사막만 보는 하루짜리 투어만 하기로 했다. 투어 시작까지는 2시간이 조금 넘게 남았다. 버스회사 사무실로 갔으나 역시 배낭은 도착 안했다. 작업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니 오늘 오후 혹은 저녁에는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이미 기차표를 샀고 확실한 보증이 필요했다. 그래서 여행자들을 상대로하는 경찰서로 갔다.

"저 좀 도와주세요. 어제 버스 사고 아시죠? 모르신다구요?" '경찰내에서 서로 소통안하나?' 난 경찰아주머니에게 사고 내용을 설명해드렸다. "어제 밤 7시, 9시 그리고 오늘 아침 8시에 찾을 수 있다던 제 배낭이 아직도 버스 안에 있어요. 작업이 오래 걸린다는건 이해해요. 하지만 전 여행자에요. 그리고 오늘 밤에 아르헨티나로 떠난다구요. 제발 좀 도와주세요!" 아주머니는 해당 버스회사로 담당 경찰을 보냈으니 지금 가서 도움요청을 하라고 한다. 다시 버스회사 사무실로 갔다. 어제 봤던 보험회사 아가씨도 있고 담당경찰등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다. 난 그들에게 다시 다그쳤다. 결국 오후 3시까지 가방을 찾아 오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번엔 정말 확실해야 해요! 아시죠?"

우유니 투어 사무실 주인 아저씨 '크리스토발'과 아들 '에릭'은 매우 정이 넘쳤다. 이틀 동안 계속해서 내 걱정을 해 줬고 에릭은 내가 구글쿠롬을 전도해 준 이후로 내 곁을 떠나질 않았다. 간혹 나를 부러워하는 느낌도 받았다. 투어가 끝나고 가방을 찾고 기차역으로 가기 전까지의 몇 시간 동안 나는 묘한 감정에 쌓였다. 복잡하고 불안한 볼리비아의 정세 때문에 갑작스럽게 일정을 변경했는데 생각해보니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이틀 동안 참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계속 몸 괜찮냐고 물어봐주셨다. 가 보고 싶었던 도시들을 포기하고 국경으로 가는 밤기차표를 이미 사놨지만 막상 파업은 없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로 간 후에 알게된거지만 그 다음날 부터 총파업이 시작됐다고 한다. 볼리비아에 더 남았을 경우를 생각해 봤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너무나도 짧았던 볼리비아 여행, 버스전복사고까지 당했지만 그리고 지금까지 여행한 그 어느나라보다 삶의 빈곤함을 느꼈지만, 그저 스쳐 지나가는 나를 걱정해준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 Moro 와 Doro

Moro, 그녀의 어머니, Moro의 친구인 프랑스 아가씨 Doro 그리고 같은 의자에 앉아서 기차를 기다리던 이탈리아 남자까지, 우리는 카드놀이를 했다. 예상대로 기차는 제 시간에 오지 않았다. 새벽 1시가 되서야 기차 좌석에 앉게 됐다. Moro와 나는 잠시 얘기를 나누다가 잠을 잤다. 하지만 카드놀이를 하면서 마신 차(Tea) 때문인지 도대체가 잠이 오질 않는다. 아무리 에너지를 강하게 해 주는 차라고 하지만 이렇게 강할 줄이야. '내가 어제 Moro를 우연히 만나지 않았다면 난 지금 어디에 있을까?'

기차에서 제공해준 환상적인 아침식사를 하고 우리는 볼리비아 국경도시 Villazon에 도착했다. Moro와 어머니는 가족선물을 사기로 했고 나와 Doro는 먼저 국경을 넘고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가야 하는 어머니를 위해 표를 사기로 했다. 아르헨티나 이민국에서 한시간 반 넘게 기다렸다. 보자기에 짐을 싸서 개미떼처럼 이동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볼리비아-아르헨티나 국경. 불법을 떠나서 저 사람들이 처한 환경을 떠나서 놀라운 광경이었다. 90일짜리 기분좋은 도장을 받고 Doro와 나는 하이파이브를 하고 터미널로 걸어갔다.

9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남자는 여행보다는 결혼과 아기를 원했고 Moro는 결국 그와 헤어지고 여행을 시작했다. Doro는 나 보다 한 살 어리지만 벌써 9년째 여행 중이다. 물론 돈이 필요할 때 마다 프랑스, 미국, 남미 등에서 다양한 일을 하지만 배낭은 벗지 않는다. 그녀의 여권에는 너무나도 귀엽고 아름다운 프랑스 아가씨 사진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나이보다 10년은 더 들어보이는 베테랑 배낭여행자의 모습만 남아있다. Moro와 그녀의 어머니가 왔던 저녁 7시까지 우리는 터미널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가는 버스표를 알아봤고 '메디아 루나'빵도 사서 같이 먹었다. 마지막 1시간은 길가에 짐을 내려 놓고 얘기를 했다. 거의 완벽한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그녀. 그녀가 9년 동안 여행하면서 가장 사랑하는 나라는 '멕시코' 그리고 '치아빠스'. 당연히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치아빠스 그리고 San Cristobal de las Casas. 우리의 이야기는 절정에 이르렀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난 그녀처럼 살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일까? Moro와 어머니가 오고 우리는 같이 저녁을 먹은 후 나는 먼저 Humahuaca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그녀들은 어머니가 버스에 타기까지 기다렸다가 히치하이킹으로 다른 도시로 가거나 여기서 캠핑을 할 것이다. 내가 마음의 여유가 조금 더 있었더라면, 냄새나는 몸과 옷을 씻고 싶은 욕구가 없었더라면 그녀들과 같이 있었을 것이다. "텐트 없지? 우리가 두 개 가지고 있는데 세 명 자기엔 충분해."

"나 이제 갈게." 나도 알고 그녀들도 알고 있다. 다시 봤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을.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키스를 하고 난 버스 안에서 잠이 들었다. 최근 며칠 동안 너무 피곤했다.

- 아르헨티나의 시작

아르헨티나의 시작은 잉카의 마을이었고 인디헤나의 역사가 남아 있는 북부에서 시작한다. 페루, 볼리비아에서 만난 아르헨티나 친구들이 그렇게 극찬하던 마을들을 대부분 둘러볼 생각이다.

Moro와 어머니를 기다리면서 Doro와 나는 마지막엔 많이 지쳤다. 하루 종일 이야기 했지만 부족한 내 스페인어가 미안할 뿐이다. 물론 영어로도 말할 수 있었지만 마치 서로 합의한듯이 우리는 영어로 말하지 않았다. 무덥던 날씨는 저녁이 되자 차가워지기 시작했고 Doro는 내 어깨에 기대었다. 그리고 난 여행 중 처음으로 감기에 걸렸다.

630 views and 0 respons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