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다행이야
남미여행 혹은 세계여행 최고의 로망, '우유니 사막' 투어. 난 Cochabamba 터미널로 갔다. 우유니로 가려면 Oruro 라는 곳을 경유해야 하는데 버스가 없다. 터미널이 난리다. 이때까진 난 그저 크리스마스 연휴와 연말 바캉스 시즌이라 그런 줄 알았다(이래서 여행 중에도 신문을 보는게 중요하다;;). 결국 운 좋게 막 떠나는 한 버스를 찾았고, 평소보다 비싼 25Bs를 주고 탔다. 버스 안에서 돈을 내는 다른 현지인들은 30Bs를 받더라. '어? 그나마 내가 싸게 탄거네... 좀 미안하군.' Oruro에 도착하자 여기도 터미널이 난리통이다. 그리고 한 아저씨와의 대화를 통해 이유를 알게 됐다. "내일부터 정부에서 기름값을 두 배로 올려요. 그래서 내일은 버스도 없을거에요. 지금도 가격이 올랐지만 내일부터는 버스비를 포함 모든 물품의 가격이 오릅니다." 우유니는 커녕, 포토시, 수크레등 다른 도시로 가는 모든 버스표가 없다. 같이 표를 구하던 스웨덴 여행자는 포기하고 내일 다시 표를 사겠다며 숙소를 찾으러 떠났다. 하지만 난 생각했다. '우유니로 가는 표가 아예 없을리가 없어. 다시 매표소로 가 보자.' 다른 버스회사는 모두 문을 닫았지만 한 회사는 계속 열려있다. 그리고 갔더니 아까와는 다르게 표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매표소 안에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고 표를 교환하는 작업을 하는 것 같다. '저거 끝나면 표를 살 수 있겠지'. 여기서 난 볼리비아 가족의 도움을 받았다. 우유니에서 일하시는 아버지 표를 끊어주러 온 착한 아들, 딸이 있었는데 고맙게도 내 표를 사는데 도움을 주었다. 비가 오는데도 버스 밖에서 손을 흔드는 남매를 보며 난 차분하신 성격의 아버지와 같이 앉았다. 아버지는 얇은 담요를 덮은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당신의 담요로 나까지 덮어주셨다. 그런데 버스에 사람들이 계속 탄다. 결국 버스는 입석으로 탄 사람들까지 가득 찼다. 안 좋은 버스지만 7시간만 참기로 한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오른쪽 허벅지가 계속 불편해서 깊은 잠은 자지 못 했지만 난 '아르헨티나'로 가는 꿈을 꿨다. 그리고 새벽 4시 경, 이 때쯤이면 사실 우유니에 도착해야 하는데 내 몸은 마치 '미션임파서블3'의 톰 크루즈처럼 날아갔다. 아직 잠이 덜 깬 걸까. 약 몇 초 후 난 버스가 전복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은 울고 있고, 아주머니들은 소리를 지른다. 난 제일 먼저, "아저씨, 어디있어요? 괜찮으세요?" 라고 말했다. 다행히 아버지는 무사하셨고 난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그나마 다행인 걸까? 위로 혹은 옆으로 나갈 틈이 있었다는게. 그런데 난 아직도 잠이 덜 깬건지 나오자 마자 이런 생각을 했다. '이 넓은 평원, 밤하늘의 별들이 진짜 아름답구나!'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난 현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버스 전복이라니... 이게 여행 중에 겪을 수 있는 일인가? 그것보다 등을 다쳤는데 척추나 허리엔 이상 없을까? 아직 결혼도 못 했는데..' 원인은 기사아저씨의 졸음운전이지만 따지고 보면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데 있을 것이다. 정부의 어이없는 기름값 두 배 인상부터 무리하게 많은 승객을 태운 버스회사 그리고 볼리비아의 기본적인 노동 조건 등등. 나 정도의 부상을 당한 사람들이 몇몇 있었지만 대부분 무사하다. 그리고 여기서도 남미사람들은 낙천적이다. 아예 담요를 깔고 계속 자는 사람들부터 전복된 버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까지. 1시간 이상을 밖에서 기다리다가 결국 우리는 트럭을 얻어타고 우유니로 향한다. '내 큰 배낭은 버스 안에 있는데...' 미치도록 흔들리는 트럭 위에서 모래먼지를 먹으면서 2시간 정도를 달렸다. 그리고 마을 도착 전에 기사가 돈을 걷는다. '아 뭐야! 이거 그냥 태워준거 아니었나? 좋겠다, 아저씨. 큰 돈 벌어서... 젠장'
이제는 버스회사, 보험회사와 승객들간의 싸움이 시작됐다. 보험회사 사람들은 어디가나 마찬가지다. 친절해 보이지만 정말 재수없다. 평소보다 두배나 비싼 돈을 주고왔는데 결국 우리는 50%의 버스비만 돌려받았다. 하지만 난 여기서 끝낼 수 없다. "저 등이 아프거든요. 병원 가야되요." 다행히도 버스회사는 나를 병원에 데려다 주고 모든 치료비와 약값을 처리해 주었다. 하지만 불안하다. 지금 당장 아픈게 중요한게 아니라 후유증도 있을테고 여행 중에 더 아프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의사는 3일치 약이면 충분하다고 했지만, 교통사고라는건 며칠 혹은 몇달 뒤에도 후유증이 나타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래도 이 정도로 처리 되도록 같이 탔던 아버지를 포함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었다. 여행자라곤 나 혼자였으니까.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점심을 먹고 숙소에 들어가니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꿈을 꿨다. 중고등학교 친구들이 나왔고 여행 전에 그만뒀던 회사 사람들도 나왔다. 무슨 의미일까? 아무튼 여기까지 왔는데 우유니 소금 사막은 봐야겠고 난 투어오피스로 갔다. 3박4일 짜리는 오피스로 가기 전에 포기했다. 왜냐면 분명히 가격이 엄청 올랐을게 뻔하니까. '그냥, 소금 사막 위주로 하는 하루짜리 투어로 하자.' 다행히 다른 곳 보다 싸게 투어 예약을 했고, 그 가족들에세 하소연도 했다. '정말 나쁜 정부와 대통령이네요. 기름값을 2원도 아니도 2배로 올리다니! 더 살기 힘들어지는게 뻔한데...'
나머지 시간은 길거리에서 만난 프랑스 여행자와 낯술도 마시고 이런저런 여행정보를 교환했다. 그리고 저녁 7시쯤 배낭 찾으로 오라고 해서 버스회사 사무실로 갔지만 아직 작업 중이란다. 밤 9시에 다시 오라고 하는데 믿을 수 없다. '나, 그 배낭 없으면 절망인데. 옷은 다시 산다고 해도 나름 필수품들이 꽤 들어있단 말야!!' 그러는 도중 한국 여행자 둘을 만났다. 그녀들은 내일 라파즈로 갈 버스표를 구하고 있었고, 내가 도와주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새로운 소식을 알게 됐다. '내일부터 아마 버스가 안 다닐거에요. 내일 아침 6시가 되면 정확히 알겠지만 현재로선 내일부터 볼리비아 전 지역이 파업에 들어갑니다.' 말로만 듣던 볼리비아의 파업. 문제는 볼리비아에서는 파업 중에 도로를 막는다는 것이다. 난 내일 투어를 마치고 밤차로 다른 도시로 갈 예정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버스는 오늘 밤이 마지막이라는 소린데, 지금 시간엔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는 버스가 없다. 설사 아무 버스나 탄다고 해도 어차피 거기서 언제까지 묶여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우유니 사막을 포기하라고? 모든 것이 완전히 꼬여버렸다. 하루 이틀의 시간 차이로 나의 볼리비아 여행은 공황상태가 돼버렸다. 줄담배를 피면서 고민한 끝에 내일은 그냥 우유니 투어를 하고 다음 계획을 변경하기로 했다.
우유니 투어 후에 2개 혹은 3개의 도시를 더 갈 예정이었지만 모두 포기하기로 했다. 기차표를 구해서 아르헨티나로 가자. 몸도 안 좋은데 열악한 볼리비아에 더 있는 것 보다 콜롬비아, 쿠바와 함께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한 아르헨티나에 가는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PC방으로 갔다. 가격을 물어보는데 한 아가씨가 계산을 하고 있다. 말 많은 나는 또 말을 건다. "여기 인터넷 느려요? " "진짜 느려요. 그나마 여기가 빠르다고 하는데도..." "페이스북은 할 정도 인가요?" "페이스북 하다가 속 터질거에요." 그리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와서 얘기를 시작했다.
"그거 알아요? 내일부터 파업에 들어가서 버스 없다던데..." "아!! 벌써 이틀 째 묶여있는데!" 그리고 우리는 약 한시간 가량 거리를 걸으면서 얘기를 했다. 서로 똑같다. "빨리 볼리비아를 벗어나고 싶단 말이야!" 그녀도 아르헨티나 출신. '앗, 나 요즘 왜 이러지, 난 콜롬비아 여자보다 아르헨티나 여자에게 더 끌리나봐!' 의외로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고 난 또 한번 스트레스가 풀렸다. "새벽 1시에 기차역 매표소가 문을 여니 거기서 만나요, 표가 있기를 바라면서.."
아르헨티나 여행에 대한 준비는 하나도 안했지만 지금 난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다행히 페루에서 만난 아르헨티나 친구들이 가 볼만한 도시 리스트를 적어주었고, 잘하면 오늘 만난 그녀의 가족과 함께 아르헨티나 국경으로 갈 수 있다. 그녀도 좋고 다 좋다. 버스 전복 사고도 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지금은 그저 내 배낭을 찾고, 불편한 등이 빨리 낫기만을 바란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에서 남미여행의 마지막을 불태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