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도시, Popayan

산 아구스틴에서 Popayan으로 오는 길은 비포장 도로가 대부분이었지만 그림보다 아름다운 경치를 많이 봐서 좋았다. 100km가 조금 넘는 거리지만 5시간 이상 걸리니 어떤 도로인지 상상할 수 있지 않은가. 위험한 지역이 시작될 때, 벗어날 때는 운전기사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한다. 이건 멕시코, 과테말라도 마찬가지였다. 고산지대에 있는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도로에서 심심치 않게 사고가 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Popayan 터미널에서 숙소까지 택시를 탔다. 분명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인데 피곤하다는 이유 하나로. 1시간 이상 걸리지 않는다면 항상 걸었던 나인데, 지금 이렇게 변해버렸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호스텔에 도착하자 마자 다른 호스텔을 찾기 위해 WikiTravel 을 보기 시작했다. 방도 너무 좁고 답답했으며 방음이 전혀 안되서 시끄러웠다. 그리고 뭔가 모르게 침울한 분위기. 다행히 '유미꼬' 짱을 만나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 맞는 부분에 한해서 같이 다니기로 했다. 아무튼 난 다음날 콜롬비아 가족이 운영하는 근처 호스텔로 옮겼다. WikiTravel에 써 있는 그대로 매우 친절한 가족이었다. 호스텔은 매우 깨끗하고 방 안에 TV도 있고 주방도 사용하기 편했다. "5일 이상 머물거고 5일치는 선불로 드릴테니 좀 깎아 주세요". 난 영어로 말하는 호스텔이 싫고 갈 필요도 없다. 콜롬비아 가족이 운영하는 호스텔에 머무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콜롬비아 Cauca주의 수도 Popayan은 콜로니얼풍 도시다. 스페인식 가옥인 하얀 벽에 붉은 지붕. 온 도시가 하얗다. 더군다나 도시 자체가 매우 잘 정비되어 있어서 걸을 때 마다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온다. "정말 아름답구나". 콜롬비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을 포함해서 많은 대학교, 학교들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도 매우 지적이라고 들었다. 조금 무뚝뚝하고 차갑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잘 보면 도시 자체가 아주 활발한 분위기 보다는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다. 유네스코에 지정될 만큼 독특하고 맛 있는 음식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비싸게 장을 봐버렸다. 당연히 여기도 물가가 싸서 오히려 장 보는게 더 비싼데 말이지. 아무튼 마음에 든다.

마찬가지로 성당, 교회도 많지만 박물관도 많다. 그런데 의외로 여기에 있는 박물관들은 지루하지 않고 매우 재밌다. 더군다나 입구에서 몇 마디 나누다보면 그냥 공짜로 들여보내줘서 너무 좋다^^ 그리고 항상 가이드가 있어서 마치 혼자 투어하는 기분이다. 이렇게 첫 날은 박물관들을 돌아다니고 동네 대부분을 걸어다녔다. 모두 하얗지만 모든 골목이 새롭게 느껴진다. 너무 깨끗하고 아름다운 도시다.

대도시를 벗어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한국 동전 있냐고 묻는다. 전부 다 자기가 동전 수집가란다ㅎㅎ.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호스텔 주인 아주머니(아가씨라고 불러도 손색 없지만), '라파엘로'도 똑같이 묻는다. 난 친절한 라파엘로가 너무 좋았고 그녀의 미소가 마음에 들어서 나의 행운의 500원짜리 동전을 하나 주었다. "이건 행운의 동전이에요. 그래서 한국에 있을 때 저는 항상 주머니 안에 지니고 있었답니다. 당신에게도 행운이 올거에요!"

오늘은 구석 구석 돌아다니면서 이 곳만의 특별한 음식과 간식들을 먹어 볼 참이다. 가는 길에 비가 와서 잠깐 나무 밑에 피했는데 역시나 한 아가씨와 청년들이 말을 걸어온다. 이제 꽤 오래 얘기할 수 있지만 어차피 난 똑같은 말 밖에 못 한다. '더 공부하고 계속 접하다 보면 조금씩 늘겠지'. 이 정도로 얘기하다보면 facebook 친구까지 맺게 된다. 아, 즐거워.

맛 있는 점심과 지역 특산 간식들을 몇 개 먹고 마을 전경을 보기 위해 작은 언덕을 올라갔다. 남미를 쭉 돌고 콜롬비아가 마지막 남미 나라인 뉴질랜드 할아버지 '로드니'. 중미까지 쭉 올라가신다는데 신기한건 스페인어라곤 감사표현과 인사만 할 줄 안다는 것이다. 딴지 걸 필요가 없다. 이렇게 혼자 여행하시는 것 만도 존경스럽다. 아름다운 도시 전경을 보고 햇살이 뜨거워 같이 자연 박물관에 갔다. 가이드를 맡고 있는 대학생 '까스뜨로'는 한국 대중가요 팬이라면서 날 공짜로 들여보내줬다ㅋㅋ. 생물학의 보고이기도 한 콜롬비아, 여기도 매우 재밌다. 결국 마지막에 까스뜨로는 친구까지 데려와 2NE1, 빅뱅등의 CD를 보여주며 facebook 친구를 맺자고 한다. "그래요, 언제든 연락하면 내가 한국 음악이나 여러가지로 도와줄게요. 근데 난 한국 노래 안 들어요, 하하. 그래도 인디 밴드들에는 관심이 많으니 추천해 주기도 할게요".

비가 많이 내려서 숙소로 들어와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오늘은 그냥 볶음밥으로 간단히 먹자. 오늘 들어온 미국 아가씨 두명, '제시카'와 '라우라'는 매우 마음에 든다. 나이도 나랑 비슷해서 더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녀들에겐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매력이 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겠지만 자신이 가지지 못한 부분을 가진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던가. 항상 고민하고 심각하고 우울했던 20대 시절에는 유머감각있고 활발한 사람을 보면 그렇게 되고 싶었는데 지금은 또 다르다. 나는 생긴 것 부터 말투, 모든 것이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지 못 하는데 그 반대인 사람을 보면 너무 부럽고 평온함을 느낀다. 제시카와 라우라가 그렇다. 스페인에서 1년 정도 스페인어를 공부해서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로 대화하는 것도 좋고, 그녀들의 미소와 편안한 인상은 나를 매우 행복하게 해 준다. 다른 여행자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인상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어제와 마찬가지로 콜롬비아 가족들과 짧게 담소를 나누는 것도 좋다. 그래, 여행 중 처음으로 숙소를 옮겼는데 정말 잘 선택한 것 같다. 아직 Popayan에서의 여정은 시작도 안 한 것 같다. 찾아보니 갈 곳도 많고 즐길 것도 많다. "Soo상. 내일 뭐 해요? 괜찮다면 점심 같이 드실래요? 그리고 어제 말한 그 올드뮤직카페도 가봐야죠. 모레 갈 Silvia 시장에 대해서도 얘기해야 하고.." "당연히 괜찮죠. 아침에 여기로 오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이번 달 중순에는 떠나야 하는 콜롬비아. 난 벌써부터 콜롬비아를 떠나기 싫다. 그리고 Popayan에서의 여정은 이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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