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적은 도시, 더 오래 머물기

"프랑스에서 왔어." "난 한국!"

"난 내일 레띠시아로 떠나." "어? 아마존 투어 하나 보지?"

"아니, 페루로 배타고 가려고. 마추픽추 투어를 11월 1일에 예약해 놓아서 지금 여유가 없네."

"그래도, 보고타에 밤 도착해서 하루 자고 바로 떠난다고? 아쉽지 않나..?"

"난 큰 도시가 싫더라."

"하하, 나도 마찬가지이긴 해. 그래도 여기서 레띠시아까지는 비행기 밖에 없을거고 거기서 페루까지 배로 이동하려면 3-4일 이상은 걸리겠네."

"응, 난 배타고 이동하는걸 즐겨. 파나마에서도 콜롬비아까지 며칠동안 아주 황홀했어. 진짜 파라다이스 같은 작은 섬들도 봤고."

"콜롬비아에서는 그럼 어디서 뭐 했어?"

"한 마을에(->지명 까먹음) 머물면서 2주 동안 패러글라이딩 교육을 받았고, 나머지 일주일은 매일같이 혼자 하늘을 날았어."

"그래도 다른 곳을 못 봐서 좀 그렇다..."

"하지만 난 여러 도시를 하루 이틀만 머물면서 찍고 다니는 여행을 싫어해. 사진으로 기록만 남기고 계속 바쁘게 움직이지. 내가 머문 3주 동안 호스텔은 거의 텅 비어 있어서 내 집처럼 생활했고 오래 머물수록 현지 친구들도 생기고 단골집도 생기잖아. 조금 더 이 나라의 생활과 문화를 느낄 수 있지. 이런게 오래 남더라고. 멋진 풍경과 유적은 그 순간 뿐이고 갔다 왔다는 자랑거리는 되겠지만 다시 그 사진을 보지 않는 이상 오래 남는건 별로 없는 것 같아. 그래서 난 항상 이렇게 다니고 있어? 넌?"

"절대적으로 네 말에 동의해. 그래서 나도 최대한 그렇게 다니고 있지만 아무래도 그냥 지나치기엔 아까운 마음이 생기면 며칠이라도 머물기도 해. 하지만 그렇게 해서 간 곳 중에 마음에 든 곳은 별로 없었어. 그래도 사람 마음이란게 참 쉽지가 않네. 아무리 라틴아메리카 여행이 한국사람에겐 쉽게 오기 힘든 곳이라지만 꼭 모든 도시를 방문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앞으로 내 여행이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르지만 평소 내 생각과 일치해서 너무 좋구나."

한달 반 이상 머물게 될 콜롬비아에서는 난 최대한 많은 도시를 가 볼 생각을 했었다. 물론 메데진에서 20일 이상 머물긴 했지만 그건 홈스테이를 한 특이한 경우였고, 지금 머물고 있는 보고타 부터 시작해서 에콰도르 국경까지 7-8개 이상의 도시를 방문할 생각이었다. 항상 말했듯이 난 알수 없는 콜롬비아 사랑에 빠지기도 했고, 조금 더 다양한 콜롬비아의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JM과의 대화는 내가 그 동안 잊었던 것을 생각나게 했다. '나, 이렇게 여행 해 오지 않았잖아. 도대체 무슨 욕심으로 이런 계획을 세운거야?'

여행을 잘 하고 못 하는게 어딨을까. 여행 정보를 많이 안 다고 잘 하는 것일까? 무조건 최대한 싸게 다닌다고 잘 하는 것일까? 모두 다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고는 말하지만 얼마나 황당한 여행루트들이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는가. 게임 미션 수행 하듯이 남이 짜논 경로, 호스텔에 그대로 돌아다니고 하루가 멀게 계속 이동하는 여행자들은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던가. 사진과 투어정보, 가계부 뿐인 블로그도 얼마나 많던가.

이제 난 모든게 다 자기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더 선호하는게 있을 뿐. 하지만 내가 하고 있는 여행 얘기를 듣고 왜 자꾸 평가를 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냥 자연스럽게 만나서 이야기하고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은데 말이다. 나이보다 이름을 먼저 물어보고, 여행 정보 보다 여행의 느낌을 공유하고, 같이 있는 동안 정겨움을 느끼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싶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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