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선물
토요일, Museo de Arte Moderno Medellín (현대미술관)에 갔다가 Pueblito Paisa 를 둘러보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걷다보니 커다란 쇼핑센터가 보인다. 근데 왠 태극기? 궁금해서 달려가 보았더니 한국전쟁 참전한 할아버지들이다. 콜롬비아는 한국전쟁 당시 남미에서 유일하게 참전한 국가다. 그냥 사진 한 장 찍고 가려는데, "한국 사람이에요?" "네, 한국에서 왔습니다." "너무 반갑습니다!" 3-4명의 할아버지들이 전부 나에게 달라 붙어서 얘기를 하기 시작한다. "콜롬비아에 사는군요!" "아뇨, 여행자 입니다. 지금은 메데진 San Diego에서 홈스테이 하고 있구요. 벌써 60년 전 일이네요. Cartagena와 인천시가 자매결연 맺은 것 알고 있습니다." "자, 이것 봐요, 한국에 있었을 때 사진들, 아직도 가지고 있어요." 할아버지들은 아직도 한국의 도시 이름들과 기본적인 인사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요, 6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김정일이 살아있고 그 아들에게 권력이 세습되고 말이죠." "네, 아주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전쟁, 군대의 존재 조차 반대하는 걸요'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경험하지 못 했고 이 분들은 경험했다. 그 전에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중요하겠지만 커다란 사건과 경험을 통해 평생을 이어갈 가치관이 만들어 지기도 한다. 가슴에 담긴 상처 없이 말로만 반대하고 비판하는 일이란 얼마나 쉬운가? 아무튼! 10분 정도 얘기하는 동안 문득, '아! 조금씩 더 들리기 시작하는구나'하는 생각에 잠시 기분이 들뜨기도 했다. "이제, 가봐야 합니다. 만나서 무척 좋았습니다." "조심하고, 다음에 만날 때 까지!"
콜롬비아의 수도 Bogota 에 가면 수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있다고 해서 메데진에서는 전에 가 본 Museo de Antioquia로 만족하려 했으나 그래도 현대 미술관이니 뭔가 재밌는게 있을까 해서 갔다. 하지만 규모도 매우 작고 볼 것도 별로 없었다(그래도 Ethel Gilmour 와 그의 남편 관련 동영상 및 작품들은 쉽게 눈에 들어왔다). 사실, 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도 잘 모른다. 워낙 배경 지식이 없다보니 자세히 보기는 하지만 모르고 지나치는 것도 많다. 그래서 항상 David Lynch의 말을 위로 삼는다. "이해하고 분석하려 하지 말고 그냥 느끼는대로 받아들여라" 그래도 여행 처음 보다 머무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 아직까지는 쿠바 미술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원래 박물관, 미술관에서 사진 안 찍는데 오늘은 심심해서 보이는대로 찍어봤다.
Pueblito Paisa, 빠이사 마을. Paisa란 이 지역, Antioquia 및 주변 지역 사람들을 지칭한다. 대부분이 메스티소 및 백인이고 아주 친절하며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그리고 스페인어 억양이 매우 아름답다고 하는데(특히 여자?), 이제 카르타헤나와 메데진 두 개 도시만 여행한 나로선 확인할 길이 없다. 보고타 가면 알 수 있겠지. Pueblito Paisa는 빠이사 전통 양식들을 압축해 놓은 미니어처 같은 곳이다. 마을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작고 관광지 느낌만 나는 곳이다(저녁에 오면 더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메데진 전경과 함께). 토요일이라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작은 곳인지 몰랐다. 밥은 커녕, 과일 하나 사 먹을 수 없다.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그래도 수공예품을 보는 즐거움은 있다. 물론 전부 수공예품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난 콜롬비아 가방 및 악세사리에 끌린다. 멕시코, 과테말라에서 본 그 수많은 민예품 시장에서도 꾹 참았는데 콜롬비아에서는 참기가 매우 힘들다. '아! 여기는 그저 남산타워 같은 관광지일 뿐이야. 여기서 사면 너무 비싸다고! 참고 센뜨로나 다른 도시에서 사자!' 도대체 난 왜 콜롬비아를 좋아하는 거지? 여행 오기 전 부터 가장 기대했던 곳이고 지금도 너무 행복하다. 정치적인 성향, 나라의 치안을 보더라도 결코 무조건 마음에 들수가 없는데 말이다. 전생에 콜롬비아 사람이었나?
갑자기 여행 선물 생각이 났다. '음.. 귀국할 때 선물을 들고 가야 하나? 근데, 누구에게?' 평소엔 만나는 사람도 거의 없고 외톨이로 지냈는데 선물 줄 생각하니 내 주위에 사람들이 많아진다. '어휴, 어떻게 모두에게 선물을 줘.. 내 생활할 돈도 없는데. 그렇다고 빈 손으로 가면 사람들이 실망할텐데. 사람들은 그저 나를 만나면 열쇠고리나 동전지갑 하나라도 가져왔겠지 하는 기대를 아주 편하게 하고 있을텐데 말이지. 음.. 사람들 목록을 작성해야 하나?' 괜한 고민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콜롬비아 혹은 에콰도르 Otavalo 시장에서 선물을 사고 싶었기 때문이다. '에잇, 엽서도 보내고 커피도 보내고 있는데 무슨 선물이야..., 휴.. 여행 초기엔 정신 없었는데 이젠 이런 고민까지 다 하는구나.'
메데진에서 너무 편하게 생활해서 그렇다. 빨리 마무리 짓고 보고타로 가서 다시 긴장된 여정을 시작하자.
* 그러고보니, 여행 떠나기 전에 여행 중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줄 작은 선물들을 사가지고 왔어야 했는데, 너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