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따뜻하고 아름다운 도시 Medellin 에서 지금 저는 홈스테이 중 입니다. 홈스테이 하기 전에, 센뜨로에서 5일 정도 지냈지만(여행자들도 잘 안 가고 현지인들도 위험하니 절대 가지 말라고 하던데 전 잘 모르겠어요. 물론 엄청난 인파가 항상 북적거려서 상대적으로 더 위험하겠지만 저는 큰 사고 없이 잘 지냈답니다. 사실 위험하다는 것은 그 적은 확률에 직접 당첨되야 느끼는 것이지만요), 홈스테이를 시작하고 부터는 거의 집에만 있었습니다. 무작정 시작한 스페인어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좀 받고 있었거든요. 지금은 괜찮습니다. 새로운 언어를 단기간에 어떻게 숙련되도록 배우겠습니까? 하루 하루 조금씩 늘고 있는 모습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현지인들과 대화하면 상당히 난감합니다. 아직 단어도 많이 모르고 빨리 말하면 도저히 알아들을수가 없거든요. 생각해보면 영어도 마찬가지니 괜히 스트레스 받을 필요 없죠. 제가 여기서 스페인어 공부하러 온 학생은 아니니까요. 오히려 지금보다 더 어눌했던 쿠바, 멕시코, 과테말라에선 그렇게 적극적이었는데 조금 더 알게 될 수록 욕심이 커져서 그런지 신경이 예민해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오후에 이 곳에서 가까운 'La Ceja' 라는 마을에 다녀왔습니다. 제가 머물고 있는 동네는 콜롬비아 중산층의 삶을 느낄 수 있는 곳 입니다. 물가도 상대적으로 비싸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메스티소죠. 도회적인 생활에 조금 지루함을 느껴 잠시 작은 마을로 산책을 다녀온 곳이죠. 가이드북이나 인터넷에서는 찾기 힘든 곳 입니다. 스페인 전통 가옥(하얀 벽, 붉은 지붕 등등)들로 가득한 이 마을까지는 1시간이 걸립니다. 높은 산에 굽이진 길을 계속 가기 때문에 조금 어지러웠습니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과일주스 한 잔을 마시고 시장 구경을 했습니다. 어디가나 마찬가지지만 시장에는 항상 식당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있는 식당은 대부분 검증이 필요없죠. 어차피 세련된 음식들은 앞으로도 먹을 기회가 많으니 시장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당연히 가격도 싸고 역시 콜롬비아의 점심 답게 다 먹으면 배 터집니다(양 적은 사람은 스프만 먹어도 될 정도로;;). 콜롬비아 음식은 실패할 확률이 매우 적습니다. 어디를 들어가도 평균 이상은 하는 것 같아요. 제가 머물고 있는 동네와 다른 스페인어 억양, 한국, 일본도 모르는 사람들을 보니 오히려 재밌더군요. 물론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유독 콜롬비아 사람들은 여행자(혹은 동양인?)를 계속 쳐다봅니다. 지나쳐가고 한참을 가다가 뒤돌아 보면 계속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 만큼 콜롬비아는 최근까지 위험하다는 이유로 여행자가 많지 않아서 일까요? 아니면 사람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일까요? 둘 다 맞는 것 같습니다. Bogota 같은 유명 여행지를 가면 좀 다르겠죠. 전 콜롬비아 사람들이 좋습니다. Bogota 사람들은 차갑다고들 하는데 제가 있는 곳이 유독 독특한 곳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렇게 친절하고 정겨운 사람들이 많다면 살아도 괜찮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Mexico, San Cristobal de las Casas 를 사랑했던 것과는 아주 다른 이유입니다. 생각해보니 전 잡종인 것 같아요. 아무튼 마을에서 필요한 물건들도 사고 몇 몇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었습니다. 산책을 나간 이유는 생각할 거리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냥 무작정 떠난 제 여행의 원래 계획을 조금 수정해야 할 것 같아서요. 사실 과테말라를 빼면 중미를 포기한 셈인데(멕시코는 중미가 아니죠, 치아빠스는 중미라고 하기도 하지만요), 남미 여행을 마치면(대략 내년 2월 혹은 3월이 될 것 같습니다) 터키 및 중동지역 그리고 인도까지 가고 귀국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모든 것은 수정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위에서 말한 것도 수정된 것이지요. 원래는 모로코, 이란, 캄보디아 등이 있었으니까요. 왜 수정해야 할까요? 첫 번째는 경비 때문입니다. 여러번 말했듯이 경제적으로 가장 안 좋을때 떠나서 결코 쉽게 생각할 수가 없더군요. 두 번째는 불안한 미래 입니다. 내년이면 한국나이로 34살, 결혼도 해야 하고 어떤 일이라도 다시 시작해야겠죠. 세 번째는 여행의 목표 입니다. 라틴아메리카를 제외한 다른 지역을 다음으로 미뤄도 여행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면 꼭 지금 한 바퀴 돌 필요는 없죠.
그럼 왜 지금 이런 고민을 하느냐. 바로 출국 티켓 때문 입니다. 남미를 빠져나가는 티켓이 없으면 입국시 항상 문제가 됩니다. 그리고 지금 사 놓는게 마음 편하고 가격이 싸기도 하죠. 정말 선택하기 힘든 고민 입니다. 이왕 떠난김에 한 바퀴 돌고 들어가고 싶은데 터키, 중동, 인도만 해도 최소 6개월 이상 걸릴테고 그러면 내년 가을로 넘어가게 되죠. 지금 라틴아메리카도 뺄거 다 뺐는데도 8개월 이상 걸립니다. 물론 빠르게 여행할 수도 있지만 제가 그렇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일단 귀국했다가 돈 벌고 다시 나올까 생각도 해 보았는데 사람 일은 알 수 없죠. 다시 나온다는 것도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테구요.
아무튼, 하루 이틀 더 생각해 보고 결정해야겠습니다. 전 지금 아주 편안하고 행복하고 항상 설레이지만 이게 영원하지는 않을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