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전환 좀 하자

콜롬비아에 처음 도착해서 나를 가장 힘들게한 것은 바로 '물가'였다. 한국 보다 싼 건 확실하지만, 배낭여행자에겐 결코 싸게 느껴지지 않는 물가. 최대 두 달의 계획을 가지고 도착한 콜롬비아, 파타고니아, 부에나스 아이레스 보다 더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싶었던 콜롬비아. 하지만 돈 때문에 스트레스는 계속 되고 있었다.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래, 콜롬비아에서는 좀 만족하면서 즐겨보자. 아껴쓰긴 하겠지만 지난 3개월 처럼 미친듯이 가난하게 지내지는 말자. 그래서 돈을 조금 쓰기 시작했다. 역시 순간의 만족은 있지만 자려고 하면 다시 걱정하기 시작한다. 이래서 부에노스 아이레스 전에 돈 없어서 귀국하게 되는건 아닐까? 그 만큼 나의 여행은 경제적으로도 최근 10년간 가장 안 좋을 때 떠난 것이다. 그래도 난 알고 있다. 이런 고민들 자체가 쓸데 없다는 것을. 나중에 후회하게 되면 그것이 얼마나 큰 아쉬움으로 남는지.

지금은 Medellín (꽃과 미녀의 도시^^, 콜롬비아 제2의 산업도시)에 머물고 있다. 메데진이 속해있는, 콜롬비아에서도 아주 독특한 이 지역과 사람들에 대한 얘기는 이 곳을 떠날 때 할 생각이다. 콜롬비아 가족 이야기와 함께(여기서 가족이란 영화 '가족의 탄생'에서의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홈스테이를 하고 있는데 집에서 지내는 것 만큼 편안하지만 또 다른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바로 '스페인어'다. 홈스테이를 하면서 'Gloria' 아주머니에게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는데 이게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오전에 4시간 동안 배우고 있는데 정식 수업이라기 보다는 자유로운 대화가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한다. 생소한 스페인어를 2주 정도 배운다고(과테말라에서 배운건 일단 빼자, 나중에 과테말라 스페인어 학교에 대해 정리를 한 번 해 보려고 한다) 달라지는게 있을까? 일단, 분명히 전 보다 나아진건 확실하다. 이건 나도 알고 다른 사람들도 느낀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내 귀에 뭐가 들었는지 사람들이 말을 하면 거의 못 알아 듣는다. 그런데 이것도 당연한거겠지? 생각해 보면 난 영어를 중고등학교 외에 배운 적이 없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 부터 팝송을 들었고 영미권 영화는 왠만한 B급영화까지 대부분 섭렵했고 MLB등 미국 스포츠는 또 얼마나 좋아했던가. 그리고 한국에 살면 기본적으로 영어라는 것을 항상 접하지 않는가. 거기에 난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다. 항상 영어로 된 문서를 참고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나의 영어 실력은? 아마 요즘 초등학생 보다 못 할 것이다. 영어가 이 정도니 이제 3개월 여행한 라틴아메리카, 도대체 스페인어에 대한 목표를 어디로 잡고 있는건가?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 난 거기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이다. 돈을 내고 배우니 돈 문제와 연관지어 더 신경을 쓰는 것일까? 스페인어는 배울수록 정말 아름다운 언어라는 것을 느끼지만, 난 너무 성급하게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산책을 나갔다. 콜롬비아 가족 중 한 명인 중국 친구 '첸'의 초청으로 한 행사에 갔다. 이 부근엔 대학교들이 참 많은데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자기 나라의 문화를 소개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였다. 반갑게도 한국인 친구 두 명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한국을 소개하고 있었다. 많은 콜롬비아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궁금해 하지만 의외로 모르는 것들이 많다고 한다. 아주 가난한 나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사실 '꼬레아'하면 북한이 더 유명한게 사실이다. 우리는 아주 작은 나라에서 살고 있고 육로로 다른 나라로 갈 수 없는 섬 아닌 섬에 살고 있어서 우물안 개구리가 되기 싶다. 그래서 내가 변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내가 여행하는 나라 만큼이나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밖에 나오니 아름다워 보이는 우리나라(귀국해도 똑같은 마음일까?), 제대로 알아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지 않을까.

아주 오랜만에 점심을 사 먹었다(홈스테이 중이니 당연히 집에서 요리해서 먹는다). 난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을 거절 안 하기도 하지만 내가 먼저 말을 잘 걸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만큼 여행은 아주 작은 것에도 자유를 느낄 수 있고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싼 뷔페식 가게에서 주문을 하면서 한 아저씨와 얘기를 나누다가 그 아저씨가 나랑 같이 자리를 하고 싶다고 해서 우리는 같이 식사를 하며 얘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도대체 언제쯤이면 내 귀가 뚫릴까?'

403 views and 0 respons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