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으로 가는 길

여행 중 사고를 당한 얘기를 들으면 전염된다. 쿠바, 멕시코, 과테말라 여행 중에는 조심하기는 했지만(쿠바는 제외, 쿠바는 여행자에겐 가장 안전한 나라가 아닐까..) 지금처럼 신경쓰지는 않았던 것 같다. 멕시코, 과테말라에서 만난 현지인들에게 항상 조심하라는 얘기는 몇 번 들었지만 지금 이 곳, 콜롬비아에서는 정말 많이 듣고 있다. 더군다나 처음으로 한국 친구들과 며칠 같이 일정을 보내고 있는데 당연히 이런 저런 사고난 얘기들을 들을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기도 한다. 그래, 라틴 아메리카 전체가 다 위험한건 인정하자. 그런데 사실 위험이라는 개념도 상대적이지 않나? 아무튼 난 긴장 풀지 않고 조심할건데 지나치면 오히려 여행에 독이 될 수도 있다.

Medellin 이라는 콜롬비아 제2의 도시에 머물고 있다. 안전한 곳에 있는 한국인 숙소에 가지 않고, 중심가 한복판에 있는 여관에 머물고 있다. 호스텔이 아니다. 호텔이라고 써 있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여관, 모텔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주방이 없어서 한국인 숙소로 옮길까 했지만 어차피 며칠 뒤에 홈스테이를 할 예정이라 그냥 지내기로 했다. 누구는 위험하다고 그러고 누구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사실 아주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다. 내가 있는 이 여관에는 당연히 여행자는 거의 없고 현지인들이 대부분이다. 메데진 도시에 지금 여행자들이 거의 없기도 하다. 옆 방 아저씨 방 안에는 치과병원이 차려져 있고, 다른 방 여자들은 약에 취해 나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그 외에도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참 많다. 메데진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당연히 센뜨로에는 더 시끌벅적하다. 이 곳에 도착한다면 바로, 우와! 사람 진짜 많고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있구나! 라고 외칠 수 밖에 없다.

내가 홈스테이할 집은 조금은 부유한 동네다. 쿠바에서 만난 중국인 친구가 부탁한 선물을 전달하러 방문한 날, 아주머니와 그 딸은 센뜨로는 아주 위험하니 당장 방을 옮기라고 조언을 해 줬다. 자꾸 이런 얘기들을 들으니 조금은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여관으로 돌아오려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데 경찰이 붙잡고 다른 길로 돌아서 다른 정류장으로 가란다. 여기로 가면 위험하니 돌아서 가라는 것이다. 고맙긴 했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정말 한시도 긴장을 풀 수는 없는 거구나.

오늘은 저녁을 조금 밖에 안 먹고(900원짜리 곱창 한 접시^^) 비가 와서 여관 바로 앞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는데 한 아저씨가 우리와 합석을 해서 맥주를 사주셨다. 그냥 단순한 친근함의 표시일 수도 있고 다른 목적이 있을 수도 있지만 1시간 넘게 즐겁게 얘기를 나누는 중에도 다른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진짜 맥주를 사 주는거 맞나? 우리 숙소 이름을 물어봐도 알려주면 안되겠지? 사실 이런 생각을 해야 한다는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 이상 조금은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 

메데진 사람들은 콜롬비아에서도 친절하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아직 더 여행할 곳이 많이 남았지만 콜롬비아 사람들은 유난히 여행자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관심을 갖는다. 그런 사람들도 있고 정말 반가운 마음으로 다가오는 사람들도 있다. 솔직히 난 그런 사람들과 잠깐이라도 얘기를 나누는게 즐겁다. 그러나 언제나 생각한다. 순간 방심하면 그게 바로 사고로 이어진다는 것을.

안타까운 일이다. 위험하다는 생각으로 모든 사람들을 무시한다면 소중한 만남을 놓치거나 그들에게 안 좋은 인상을 남길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자칫하다가 안 좋은 일을 당할 수도 있다.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아직 내가 작은 사고라도 당한 적이 없어서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일까? 아무튼 난 또 홈스테이를 하게 된다. 그들이 내 가치관과 맞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가장 가까이서 소통을 하고 싶다. 어쩌면 나 같은 사람에게는 콜롬비아가 가장 매력적인 나라일 수도 있다. 아직까지는 너무 좋다. 음식도 너무 맘에 들고 커피는 말할 필요도 없다. 친절한 사람들도 아주 많다(그리고 당연히 미녀의 도시다^^). 어차피 여행자를 돈으로 보는 시선까지 내가 바꿀 수는 없겠지만, 무사히 그리고 후회없는 콜롬비아 여행이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