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되고 있는 마야 공동체

3주 전 Xela에서 한 컨퍼런스를 보고 Pablo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Pablo가 발표하고 들려 준 얘기는 나에게 자극이 됐고 Pablo가 속한 단체에 작은 도움을 주고 싶었다. 직접 마야 공동체 마을에 가거나 그들의 현실을 알릴 수 있는 홈페이지 혹은 SNS 도입을 도와 줄 생각이었다. 어차피 세묵 참페이등 휴가를 목적으로 Alta Verapaz 주, Cobán에 갈 계획이었으니 현재 Pablo가 주로 활동하고 있는 장소와 가까운 곳 이어서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메일로 계속 연락을 취했고 Pablo는 이번 주 수요일 밤에 내가 묶고 있는 호스텔에 전화를 해서 약속을 잡겠다고 했으나 전화는 오지 않았다. 난 하루 더 머물면서 기다려봤지만 역시 연락은 오지 않았다. 난 결국 메일을 보내고 금요일 오전 안티구아로 갈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떠나기 한 시간 전, Pablo에게 지금 Coban에 도착했으니 사무실로 올 수 있냐는 전화가 왔다. 오늘 마야 공동체 마을에 간 다면 하루 자고 내일 Cobán으로 돌아올텐데, 그러면 결국 일요일에 안티구아로 가게되고 다음 날 콜롬비아로 떠나니 안티구아는 관광도 못 할 처지가 됐다. 약속을 지키고 싶은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꼭 그 마을에 가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난 좋다고 하고 사무실로 걸어갔다. 현재 Pablo가 속해있는 CUC(Comité de Unidad Campesina)는 아주 적은 인원이 활동하는 조직이었다. 난 Pablo에게 현재 상황에 대한 얘기를 듣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서 짐을 챙기고 마을로 떠날 채비를 갖췄다.

그렇다면 과테말라 마야 공동체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간단히 말하면 셀 수도 없는 공동체들이 파괴되고 있고 마야 원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때로는 영문도 모른 채 감옥에 갇히기도 한다. 과테말라 정부와 법은 당연히 이들의 삶을 파괴하는 돈 많은 권력자의 편이다. 또한, SOA(The School Of America) 혹은 '암살학교'라고도 불리는 이 곳 출신 군인들이 원주민들의 삶을 파괴하는데 이용되고 있다. SOA는 미국이 라틴아메리카의 민주화를 표방하면서 만든 군사학교로 라틴아메리카의 테러 및 범죄를 차단하는 목적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라틴아메리카를 통제하기 위함이고 이 곳 출신 군인들은 권력의 부당한 명령들을 그대로 수행하고 있다. 멕시코, 콜롬비아, 과테말라 등의 군인들이 SOA에 파견되어 고문기술, 암살기술등의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Pablo도 미국에 있을 때 SOA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간 적도 있다고 했다(SOA에 반대하는 SOA Watch 홈페이지). 내가 방문한 지역은 '마리아'라는 한 여자와 그 가족들에 의해 수 많은 마야 공동체 마을이 파괴되고 있는 곳 중 하나다. 멕시코 치아빠스 주도 그랬지만 마야 원주민들이 사는 곳은 자원이 아주 풍부하다(이 지역은 Cardamom). 30년 전 마리아의 아버지가 죽은 후, 다시 마야 공동체의 터전이 됐지만 지금 마리아는 이 모든 땅이 자기의 땅이라며 혹은 거짓으로 마을을 강제 이주시키려 하면서 아이가 있는 집에 불을 지르거나 마을 자체를 파괴하고 있다. 엄청난 돈을 가지고 있는 마리아를 위해 경찰, SOA출신 군인들이 이용되는 건 당연하다. 컨퍼런스에서 관련 비디오를 보고 너무 슬프고 화가 나서 방문한 마을이지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홈페이지 만들어 주겠다는 생각은 지금 사치이자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Cobán에서 봉고차를 타고 포장도로 1시간, 비포장도로 1시간을 달려 마을 근처에 도착,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비가 오고 등산화 보다 무거운 진흙이 바닥에 붙어서 한 걸음 옮기기도 벅찼다. 1시간 20분 정도 걸으니 드디어 마을이 나타났다. 마야 언어를 사용하는 주민들, 스페인어가 통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과테말라에서만 30개가 넘은 마야 언어가 있는데 일반 여행지에선 쉽게 접하기 힘들다. Pablo와 내가 묶을 곳은 판잣집이지만 바닥도 없고 임의로 만든 널빤지 위에서 자야 한다. 여기서 내일 마을 회의를 하게 되니 마을 회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주민들은 나를 무척 반가워 했다. 아이들은 내 얼굴이 웃긴지, 계속 웃고 장난 친다. 마을 회관으로 오는 주민들마다 나에게 악수를 청하고 때로는 왜 이 곳에 왔는지 궁금해 한다. 아이가 안에 있는데 집이 불 타버린 아픔을 가지고 있는 아저씨,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고 스페인어에 아주 능숙하다. 그 분이 준비해 주신 맛 있는 저녁을 먹고 우리는 잠자리를 준비했다. 이 곳엔 전기가 없으니 7시 전후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다가 각자 집에 들어가 잠을 잔다. 널빤지 위에 침낭을 펴고 온 몸에 모기퇴치제를 뿌리고 잠을 청했다. 전기가 아예 없는 마을에 내가 간 적이 있던가? 카메라 충전기와 아이폰 충전기를 챙겨 온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한 참을 잔 것 같은데 새벽 3시, 밤 새 모기와 싸우며 7시에 일어났다. 주민들이 챙겨 준 아침식사를 하고 7시 30분 부터 회의가 시작됐다. 2시간 넘게 계속된 회의, Pablo가 얘기를 하면 스페인어를 할 수 있는 공동체 리더 청년이 다시 마야 언어로 통역해 준다. 마지막에는 질문 답변 및 간단한 토론도 있었다. 내가 스페인어에 능숙하질 않으니 자세한 내용은 대부분 못 알아들었다. 나중에 Pablo가 개인적으로 다시 설명해 줬지만, 이건 뭐 영어도 엉터리니. 마리아의 집은 내가 있는 마을에서 바로 보이는 곳에 있었다. 저택같이 생긴 그 집으로 가는 길은 철조망으로 바리케이트를 쳐 놓았다. 지금은 휴가 중이지만 돌아오면 또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 각종 괴기한 소문을 만들어 내면서 어떻게 마야 공동체를 괴롭힐지 혹은 권력을 이용해서 한 번에 파괴해 버릴지 모를 일이다. 현재 변호사 한 명이 300개 정도의 마야 공동체를 담당하고 있다고 해서 이 곳은 다른 변호사를 선임할 계획도 있다. Pablo만 해도 수 년 동안 과테말라에서 이렇게 생활하고 있지만 이 싸움이 해결될지 혹은 언제 끝날지 누가 알까.

다른 사람의 아픔을 느낀다는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만나서 위로하고 트위터에서 위로하고 이메일로 위로하고 있지만 내가 겪지 않는 이상 그 아픔과 상처를 느낀다는 것은 거짓일 것이다. 아직도 생각만 하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상처가 된 내 가족 얘기는 친구한테 알려준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에는 내 주위를 바라보지 못 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부터는 사회를 바라보지 못 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여행하면서 나의 만족만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방문한 나라를 알고 그 사람들의 실질적인 삶과 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꼭 그렇게 할 필요도 없을 뿐더러, 현지인들에게는 지나가는 나그네가 악세사리처럼 티를 내려고 방문한 것 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어쨌든 난 마야 공동체가 파괴되고 있는 이야기를 듣고, 동영상을 보면서 슬픔을 느꼈다. 그리고 마을로 가는 산 길에서 조차도 내가 왜 이곳에 왔을까, 내가 무슨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을 계속 했지만 직접 주민들을 만난 후 나의 방문 자체가 그들에 대한 관심이고 그들에겐 작은 기쁨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주민들의 이야기, 표정 하나 하나가 나에겐 소중한 경험이었다. 비록 1박 2일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Pablo와 시간이 맞았다면 더 오래 있었을지 모른다. 이제 우리나라도 라틴 아메리카 여행자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 블로그는 일기장이지만 이 얘기를 다른 곳에도 전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마야 공동체 주민들이 원하는 것이다.

난 내가 슬픔을 느낀다고 내 삶을 그 곳에 쏟아부어 사회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다. 난 Pablo와 같은 피를 가지고 있지 않다. 입만 살아서 불평만 하는 사람도 절대 아니지만, 난 나를 잘 알고 있다. Pablo와 같은 삶을 살 수도 없고 그렇게 할 의지도 없다. Pablo와 이 곳의 이야기 외에 미국, 한국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가 지금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알게 됐다. 내가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한 감정도 들었다. 나 같은 지나가는 여행자가 Pablo에게 무슨 힘이 되었을까? Pablo와의 마지막 인사 그리고 그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는 또 시장에서 싸디 싼 식사를 하고 과테말라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있겠지. "제가 볼 때 너무나도 어려운 여정인데요, 가끔 지치지 않나요?" "저요? 아주 가끔 지치긴 해요. 하지만 이 사람들의 삶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요. 수! 메일로 이 곳의 진전 상황을 계속 알려줄게요. 우리 계속 연락합시다!!"

'Pablo... 내가 이 마음과 감정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자신은 없어. 하지만 난 변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아마도 난 당신과 계속 연락을 하게 될거야. 고마워, Pablo'

 

* 제가 방문한 마을에 관련된 동영상을 첨부합니다. (의심되는 댓글도 있네요;;;)

* 동영상 출처Guatemala Solidarity Project 홈페이지

* Pablo 의 email : palmerlegare@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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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p 28 2010, 10:30 AM
    이호범 responded:
    항상 글 잘 보고 있습니다~ (매번 아이폰으로 보느라 댓글을 못달았는데, 오늘은 컴이라 댓글 달아요.^^)

    글 적어주신 덕분에 전혀 모르고 있던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멀리서 글과 동영상만 보고 있자니 무력하게 느껴지는군요.

  • Sep 28 2010, 10:44 AM
    이호범 responded:
    기부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군요? SOA Watch 홈피에서, 그리고 http://upavim.pursuantgroup.net/english/donate.htm 여기에서.
  • Sep 28 2010, 1:02 PM
    HolaSu responded:
    앗, 이호범 부장님^^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저 일기장일 뿐인데ㅎㅎ 어디가나 원주민들은 가난하게 살고 억압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슬픈 일이죠. 이 땅의 주인이 원래 누구였는데...일단 저도 알릴 수 있는 여행관련 커뮤니티들에 글을 함 써보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