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 산사태, 대참사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나갈 준비를 하고 오늘도 역시 옆 숙소에 있는 로베르토가 과테말라 커피, 빵을 준비해줘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했다. 옥상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마지막 아띠뜰란. 비가 그치긴 했지만 날씨가 흐려서 역시 선명한 일출은 보지 못했다. 그런데 과테말라 커피 생각보다 난 별로인 것 같은데, 좋은 커피는 모두 수출용인가?(내가 커피맛을 모르긴 하지만) 로베르토와 마지막 인사를 하고 치킨버스가 출발하는 곳으로 갔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기 때문에 Xela 로 가는 직행버스는 없다고 한다. 한 번 갈아타야 한다고. 그쯤이야 뭐. 그래도 여기 호수마을은 하루 만에 도로를 복구한 모양이구나. 호수마을을 하나씩 들리며 가는 길의 경치는 역시 환상적이었다. 진짜 마지막으로 보는 아띠뜰란. 1시간이 지나고 난 졸다가 갈아타야 할 곳을 지나버렸다. 다행히 사람들이 기억해서 버스를 세우고 나를 내려주었다. 이제 진짜 Xela 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고 가는데 역시 일요일이라 만원버스다. 난 운전석 옆에 서서 가고 있는데 30분 정도 지나자 버스가 정차한다. 아! 경찰이 도로를 막아버렸다. 무슨 일이지? 버스비 절반을 환불받고 내려서 사람들과 운전기사 아저씨에게 물어봤다. 지금 이 산의 일부분은 일반차량의 진입을 막고 있단다. 걸어서 산을 넘어야 한다고 했다. 하하! 과테말라에서는 단 한 번도 시원하게 일이 풀리질 않는구나. 1시가 이상 걸어야 한다니, 뭐 재밌는 추억이라 생각하고 걷기 시작했다. 어디서 많이 보던 풍경이다. 군대 시절에 항상 넘어야 했던 함묵령 같기도 하고, 눈 앞에 정상이 보이는 듯 하지만 나선형으로 계속 오르막길인 산. 아주 힘들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적당한 오르막길이 계속 이어져서 쉽다고 할 수도 없다. 이럴 때는 쉬면서 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 번 리듬이 깨지면 오히려 더 힘들기 때문이다. 걸어가면서 원주민 아저씨들과 얘기를 했는데 그제 내린 폭우로 산사태가 일어나서 1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한다. 만원버스와 그 앞 뒤로 있던 차들을 그대로 덮쳐버린 것이다. 이 정도면 대참사다. 멕시코 남부지역도 그랬고 여기 과테말라도 산에 있는 도로를 보면 정말 위험한 곳이 한 두 곳이 아니었다. 예방책이 부족했던 것인지 아니면 폭우 속에서도 버스가 운행된게 잘 못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당했다. 그래서 이 산의 대부분을 지금 통제하고 복구 작업 및 구조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1시간 30분 정도 후, 반대쪽 통제 구역에 도착했다. 도대체 어디서 버스를 타야할까, 아니 이동 수단이 있기는 한 것일까? 버스가 두 대 보인다. 한 백인 남자가 버스에서 내려서 나에게 말을 건다. 난 미국사람인 줄 알았는데 과테말라 사람이었다. 과테말라에는 원주민의 비율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메스티소 혹은 백인을 보는게 쉽지가 않다. 그가 말하길 버스에서 이틀을 지냈다고 한다. 그 사고 이후 오던 버스는 갈 길을 가지 못하고 그냥 서서 이틀을 보낸거구나. 다행히 지금 우회도로의 복구 작업이 완료되서 조금 기다리면 버스를 타고 빠져 나갈 수 있다고 한다. 결국 난 그 버스를 타고 또 한번 갈아타고 터미널에 도착, 봉고차를 마지막으로 Xela, 스페인어 학원에 도착했다.

홈스테이를 할 집이 정해졌고 그 곳은 학원에서 꽤 먼거리였다. 2남 1녀, 5명의 가족이 살고 있는 가정집인데, 난 너무 놀라서 할 말을 잃었다. 집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차고도 있고 아주 비싸 보이는 개도 키우고 있다. 2층 집인데 도대체 방이 몇 개고 화장실이 몇 개인지 모르겠다. 남자 아이들은 Wii 게임도 하고 조금 어설프지만 웅장한 스테레오 시스템으로 영화를 본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식사제공이 없지만 고맙게도 맛 있는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도대체 과테말라에서 이런 집을 봤다는 것 자체가 너무 놀라웠다. 역시 인디오는 아니고 메스티소로 보인다. 아주 비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과테말라의 생활비를 생각하면 엄청나게 비싼 돈을 주고 배우는 스페인어 그리고 홈스테이. 후회없이 열심히 하는게 당연하다.

자꾸 산사태 생각이 난다. 뉴스를 보고 싶기도 하고. 내일 학원에서 인터넷으로 조금 알아봐야겠다. 너무도 끔찍하고 슬픈 일이다.

1847 views and 0 respons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