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비
이틀 전 저녁, 멕시코시티에서 만났던 필리핀 친구(Roberto, 51세, 대학교수, 조각술)를 또 만났다. Xela 에 있을 줄 알았는데 우연히, 그것도 바로 옆 숙소에서 만나다니.. 분명히 나에게 도움이 될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우리는 아침 일찍 만나 호수를 끼고 작은 언덕 및 산길을 따라 2시간 동안 조깅을 했다. 물론 난 1시간 뛰고 나머지는 걸었다ㅠㅠ 그 친구는 자연의 아버지처럼 2시간 동안 참 잘 뛰더라(난 51세 아저씨보다 체력이 안되는 구나ㅠㅠ). 오랜만에 하는 뜀박질이라 몸은 힘들었지만 아띠뜰란 호수에 숨어있던 절경을 많이 봐서 기분이 참 상쾌했다. 난 아무래도 호수를 너무 좋아하나봐. 숙소로 돌아와서 아침을 간단히 먹고 약속대로 산 후안 마을까지 걸어갔다. 30분 정도 걸리는데 걸어가면서 바라보는 호수마을들의 풍경이 너무 이쁘다. 산 후안 마을은 이 곳 산 페드로 보다 물가가 훨씬 더 저렴하다. 마을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얘기도 하고 먹거리가 너무 싸서 계속 사 먹었다. 그런데 로베르토와 같이 다니면서 내가 잊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난 물통 정도만 가지고 다니면서 물을 채워서 다니는데 로베르토는 물통 뿐 아니라 몇 개의 그릇과 스푼, 포크 등을 가지고 다니는 것 이었다. 시장이나 식당에서는 플라스틱등 일회용품에 음식을 담아주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로베르토는 일회용품이 아닌 다른 그릇을 먼저 요구하고 없다고 하면 가지고 다니는 그릇에 음식을 담는다. 환경을 생각하는 그의 행동에 내가 너무 부끄러워졌다. 과테말라는 거리 자체가 쓰레기통인 곳도 많고 일회용품이 너무 많은데 나 하나 다르게 행동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리고 그릇 및 포크 가지고 다니는거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하는 행동이 현지인 및 다른 여행자들에게도 작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다시 산 페드로 마을로 돌아와서 장을 보고 숙소로 돌아오려고 하는데 폭우가 또 쏟아진다. 30분 정도 기다렸지만 비가 그칠 생각을 안해서 우리는 뛰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정말 난 비가 너무 싫어! 그런데 로베르토가 밥 짓는 방법을 물어본다. 아니, 완전 자연의 아버지같은 풍채가 느껴지는데 밥 짓는 법을 모르다니! 아무튼 난 또 소고기 요리를 했다. 비록 매우 질기지만 이렇게 싼 소고기를 언제 먹어보겠냐는 마음에 산끄리스또발 부터 지금까지 이틀에 한 번은 소고기 요리가 저녁식단이다.
오늘도 발코니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5시 쯤 일어났는데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보통 정오까지는 맑고 오후에 비가 내리는데 오늘은 아니다. 지금 저녁 9시인데 계속 비가 내리고 있다. 난 옷에 비가 젖는 것을 무척 싫어하기 때문에 비오는 날이 정말 싫다. 그런데 할 수 없다. 지금은 우기. 쿠바는 며칠에 한 번씩 아주 잠깐 비가 내리곤 했지만 멕시코, 과테말라는 매일 그것도 하루의 반 이상 비가 내린다. 계획도 없이 무작정 떠나오고 보니 내가 갈 나라들의 날씨, 축제 기간등을 생각하지도 않았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장단점이 있다. 축제기간은 그 만큼 즐겁고 볼 거리가 많지만 물가가 비싸지고 숙소 구하기가 아주 어려울 것이다. 날씨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칠레 전 까지는 계속 이렇게 비가 내릴텐데(아.. 마추픽추 잉카 트레일을 비 맞으면서 하겠네ㅠㅠ), 그건 성수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뭐, 이렇게 위로하고 있지만 아쉬운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날씨가 기분에 영향을 주는게 분명하다. 혼자 하는 여행이란 중간에 좋은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외로움과의 싸움인데 날씨가 이러면 더 힘들어진다. 아니면 인터넷을 할 수 없기 때문일까. 인터넷을 할 수 없으면 주로 책을 읽기는 하지만 여러가지 생각이 많아지고 걱정도 많아지는 것 같다. 여행 경비 걱정, 신세 한탄, 어두운 미래에 대한 걱정 등등.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더군다나 이름까지 이쁜 '아띠뜰란(Atitlan)'호수 마을에서 참 우울한 마지막 날을 보내는 나.
* 내일 아침 6시에 치킨버스 타고 Xela 로 가야하는데 제발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