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 호수마을 가기 14시간
지금 남은 멕시코 페소를 세어보니 산끄리스또발에서 3-4일은 더 지낼 수 있었네. 어쨌든 산끄리스또발에서 일주일을 채우고 오늘 과테말라로 이동하기로 했다. 멕시코 빨렌께, 과테말라 띠깔등 가장 유명한 마야 유적지들을 포기하고 우선 과테말라 호수마을로 가기로 했다. 난 나이가 들면 아름다운 호수가 있는 마을에서 살고 싶을 정도로 호수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산끄리스또발에서 여행자 셔틀버스를 타면 Atitlan 호수의 입구라고 할 수 있는 Panajachel 까지 편하게 갈 수 있다. 하지만 혼자 국경 넘는게 어려운게 아니고 돈도 절약할겸 직접 버스표를 사서 이동하기로 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씻고 짐을 챙기고 숙소를 나서는 순간 빗물이 무릎 근처까지 차오른 것을 느꼈다. 어제 많은 비가 내리긴 했지만 내가 묶고 있던 숙소와 그 근처만 길가까지 물이 차올랐다. 바로 옆에 조그만 개울이 있어서 그런것일까. 바지, 운동화, 양말이 모두 젖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게 신발, 양말 젖는건데.. 결국 양말을 짜고 신발을 벗고 물이 넘치지 않은 곳 까지 걸어나와서 찝찝한 기분으로 버스 터미널까지 30분 가량 걸어갔다. 보통 택시를 타는 거리인데, 뭔 돈을 그리 아끼겠다고. 멕시코 국경 도시로 가는 표를 사서 이동하는데 역시 어제 비가 많이 내렸는지 유실된 도로가 많아 우회해서 가야만 하는 곳이 많았다. 멕시코 이민국, 과테말라 이민국은 아무 문제없이 통과했다. 여행자 버스로 통과하는 차량은 과테말라 이민국에서 20페소를 받는다는데 그건 분명한 불법이자 여행사와 이민국 사이에 짜고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난 당연히 20페소 내라는 요구를 받지 않았고 혼자서 기분 좋아라 하면서 호수마을까지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까지 걸어갔다.
그 유명한 과테말라 치킨버스. 사진을 보고 얘기는 들었지만 당연히 노선을 알리가 없다. 터미널에서 물어보니 Panajachel 까지 바로 가는 버스는 없고 주요 도시를 찍으면서 갈아타야 한다고 했다. 11시 30분, 과테말라 국경도시에서 HueHueTenango 까지 2시간. 거기서 Xela 까지 2시간. 치킨버스는 가면서 같은 방향의 사람은 전부 태운다. 엄청난 매연을 뿜어대며 달리는 치킨버스는 좌석의 불편함은 둘째치고 턱이 있는 도로나 구멍난 도로도 그냥 막 달리기 때문에 거의 천장에 닿을만큼 몸이 들썩거린다. 가끔 그러는 것도 아니고 꽤 자주 그러기 때문에 엉덩이와 몸 전체에 받는 충격이 상당히 컸다. Xela 로 가는 길에 또 많은 비가 내린다. 치킨버스는 중간에 쉴 틈도 없이 터미널에서 바로 바꿔 타기 때문에 Xela 에 도착하니 몸이 피곤하기도 하고 배낭은 비에 젖었고 비는 그치지 않고.. 그냥 Xela 에서 하루 머물고 내일 호수마을로 갈까 생각했다. 하지만 Xela 는 어차피 다음주에 스페인어 교습때문에 다시 와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원래 계획대로 호수마을까지 가기로 했다. Xela 에서 버스를 또 갈아타고 가는데 버스가 고장나서 몇 번이고 멈춰서 수리를 한다. 그런데 중간 정류장에서 나 보고 내리란다. 또 갈아타라고? 난 Panajachel 까지 바로 가는 버스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스페인어 제대로 못 하는 내가 잘못이지. 결국 건너편 길가에서 또 다른 치킨버스를 탔다. 도대체 몇 번을 더 갈아타야 하는거야?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앞으로 3번의 버스를 타야하고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Xela 에서 Panajachel 까지 바로 가는 버스는 하루에 한 두개 밖에 없다고 한다. Panajachel 에서 내가 가려는 호수마을로 가는 마지막 배가 7시인데 지금 6시가 넘었는데 망했구나. 근데 사람들은 자꾸 충분하다고 한다. 1시간 걸린다면서 뭐가 충분하다는거야. 치킨버스로 20분 이동하고 봉고차로 갈아타면서 알았다. 아! 멕시코랑 과테말라는 1시간 차이났었지. 시간대는 같은데 멕시코는 일광절약 시간제를 했었지. 정신없어서 시간 변경하는 것도 잊고 있었다. 봉고차로 20분 정도 이동하고 계곡 사이로 임시로 만든 다리를 건넌다. 홍수피해로 유실된 곳이 아직 제대로 복구되지 않았다. 아, 이제 마지막 차구나. 내가 좋아하는 오픈카다. 기분이 조금 좋아져서 피곤도 잊고 시원하게 서서 달렸다. 드디어 6번의 교통수단을 갈아타고 Panajachel 에 도착. 뚝뚝(어? 태국에서 보던 뚝뚝이 여기에도 있구나)을 타고 선착장에 도착했다.
나도 모르게 "Muy Bonito!" 라고 속삭였다. 어둡고 안개가 자욱해서 흐릿하게 보였지만 그래도 알아볼 수 있는 화산들과 넓게 펼쳐진 호수. 너무 아름다웠다. 일출, 일몰, 아무때나 봐도 아름답겠지? 20명 정도 탈 수 있는 보트, 나는 선장 및 선원에게 이곳에 있는 호수마을들의 정보를 물어봤고 드디어 저 멀리 마을의 불빛들만 보이는 호수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50분 정도 후, 드디어 마지막 정류장 San Pedro 에 도착했다. San Pedro 를 선택한 이유는 가장 물가가 싸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차피 주변 마을은 산책하면서 가거나 보트 혹은 자전거로 왔다갔다 할 수 있다. 발코니에서 호수가 보이는 옥상방 4,000원 짜리 숙소에 짐을 풀었다. 6,000원인데 깍았다. 역시 싼 숙소라 개인방에 개인욕실이지만 시설이 안 좋고 달랑 침대밖에 없다. 더러운건 당연하고 빗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나 있을까 모르겠다. 숙소에 Wi-Fi가 없다. 아, 다시 쿠바에서처럼 생활해야 하나. 인터넷 카페가 싸니 가끔 할 수는 있겠지.
짐 정리하고 계산해보니 여행자 셔틀버스 타는 것과 내가 직접 이동한 것의 돈 차이가 생각보다 크게 나지 않는다(그래도 과테말라에서 이 돈이면 며칠 생활할 수 있다.. 가난하게). 도대체 난 뭐한거지? 나도 비 맞고, 짐도 비 맞고 치킨버스 6시간 동안 몸은 녹초가 됐는데 돈 절약한 보람도 없고 말이지. 토요일, Xela 로 갈 때는 로컬버스고 뭐고 셔틀버스로 가련다.
* 마지막 치킨버스 타기 전에 황량한 도로에서 혼자 버려졌는데, 내 걱정해주며 친절하게 모든 교통편을 안내해준 청년! 너무 감사합니다^^
* 파나하첼에서 탔던 보트 선원 아이, 과테말라 및 아띠뜰란 호수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고 주변 마을 정보 전부 알려주고 내가 갈 숙소 가는 길까지 자세히 알려줬다, 너무 고마워^^
* 그런데, 난 결국 Xela 까지 또 치킨버스로 간다..(한 번에 가는 버스가 하루에 3번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