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후안 차물라

멕시코 치아빠스 주. 고산지대이면서 마야 토착민들이 자기들의 문화를 버리지 않고 지키며 살고 있는 곳. 그리고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사빠띠스따까지 역사적, 정치적으로 아직까지 멕시코 정부와 대립하고 있는 곳. 자원은 풍부하지만 가장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 곳의 중심 도시는 지금 내가 있는 산 끄리스또발 데 라스 까사스(San Cristobal de las Casas)이다. 멕시코 여행 전, 만약 내가 멕시코에서 장기체류하거나 살게 된다면 이 곳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곳이다.

오늘은 여기 오면 누구나 다 가는 산 후안 차물라(San Juan Chamula) 마을을 방문했다. 산 끄리스또발 에서 근처 Tzotzil 부족이 사는 마을들은 봉고차(꼴렉띠보)를 타고 쉽게 갈 수 있다. 마야의 후예들, 마야 언어를 사용하고 정부와 대립하면서 전통문화를 고수하고 있다. 아직도 이 지역과 관련한 법 개정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마을 내에서 사진 촬영은 매우 민감한 문제다. 사진을 찍히면 영혼이 빠져 나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도 하고, 특히 유명한 차물라 교회 내 사진 촬영은 절대 금지다. 어차피 내가 이 곳에 와서 사진을 찍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교회 외관은 사진 촬영이 가능해서 기념으로 찍기는 했다. 어차피 센뜨로는 관광객들을 위한 곳이어서 조금 여유를 갖고 마을 구석 구석을 돌아다녔다. 어차피 내가 무엇을 얻어가겠다는건 아니었지만, 내가 왜 이 마을에 와서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우 조심스러웠고 또한 부끄럽기도 했다. 누가 동물원의 동물인지 말이다.

카톨릭과 전통신앙의 결합된 형태의 종교의식으로 유명한 차물라 교회. 입장권을 사서 내고 들어가자마자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바닥에는 솔잎 지푸라기들이 널려져 있고 의자는 없다. 향 연기와 내음이 자욱하다. 교회 좌우 및 중앙에는 수십 개의 유리관이 있는데 그 안에는 지역 성자의 모형이 있다. 그 앞에 그들을 기리는 수 많은 촛불들이 있다. 촛불은 앉아서 의식을 치루고 있는 사람들 앞의 바닥부터 교회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교회 전체가 촛불의 황금색으로 칠해져 있는 느낌이다. 불경을 읽는 듯한 소리, 닭을 제물로 바치고 그 앞에 콜라가 있다. 와인이 아니라 콜라다. 그들은 콜라가 모든 병과 나쁜 것들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는다.

미리 자세히 공부를 하지도 않고 가이드 없이 혼자 오다보니 궁금한 것도 너무 많았고 답답하기도 했다. 결국 내가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 하는 것인데 쉽지가 않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성자들을 위해 의식을 치루는 것인데, 그 장소가 그들의 문화를 짓밟고 빼앗았던 카톨릭의 공간이다. 근데 이것을 카톨릭과 토착신앙의 결합으로 봐야 하는 것인가? 어떻게 보면 매우 인상적이고 심오하지만 조금 삐뚫어지게 보면 우스꽝스럽거나 슬픈 현실로 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들에겐 그들이 섬기는 성자가 중요하고 의식이 중요한거겠지? 고도로 문명화된 곳에서 느낄 수 있는 종교의 모습은 절대 아니겠지만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워낙 종교에 관해선 아는게 없으니 말이다.

원래 이 땅의 주인들이 가장 억압을 받고 가난하게 살고 있다. 사빠띠스따 해방 조직은 과연 이들과 함께 길고 길었던 투쟁을 희망의 결실로 맺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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