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목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도 살면서 뭐 하나 제대로 이뤄놓은 것도 없고 끝맺음을 아름답게 한 적도 없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해서 대학도 중간에 포기했고, 하고자 했던 음악활동, 사운드 엔지니어, 프로그래머 등 모두 초급단계를 넘어서지 못 했다.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였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20대 시절인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군대시절을 무사히 마쳤고 그 안에서 평생 친구들을 만났다는게 유일한 위로랄까. 배낭여행이라곤 태국, 라오스 한 달 갔다온게 전부인 내가 장기여행을 왜 떠났을까. 물론 서른 다섯살 전에 회사를 관두고 여행을 가겠다는 계획은 있었지만 올해는 아니었다.

난 내가 무엇을 누구를 위해 일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자신감과 열정은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바닥에 있었고 경제적 사정은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그 때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난 떠났다. 돈도 거의 없고 계획도 없이.

한 친구는 내가 공정여행을 체험하고 싶어서 소위 가난한 나라들을 선택했다고 하는데 그건 절대 아니다. 우선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일부지역, 중동, 인도는 내가 항상 가고 싶었던 곳 이었다. 거기에 시간과 돈이 있다면 중앙아시아, 러시아, 동유럽 등이 포함됐을 것이다. 그리고 책임여행(공정여행)은 내가 오래 전 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여행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게 해 줬고 더 많은 고민을 하게 해 줬다. 여행 자체를 가지 않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는 그 친구의 말에도 동감한다. 나도 하루에도 여러 번 그 생각을 한다. 왜 내가 여기에 와서 현지인들에게 헛된 희망을 품게하고 그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일까. 하지만 여행도 하나의 활동이다. 국내든 외국이든 여행자가 쓰는 돈, 그들이 하는 행동, 그들이 남기는 것들, 그들이 배우는 것들 모두가 이 사회체제 안에서 이뤄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처음부터 큰 것을 이루려 하지 말고 작은 것 부터 실천하는게 좋을 것 같다. 심지어 Lonely Planet 같은 가이드북에도 책임여행에 대한 조언이 있는 페이지가 항상 들어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그냥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면 되지 않을까. 현지 문화를 존중하고, 현지인과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모든 자원을 아껴쓰고 항상 환경을 생각하는 것. 이런 것들을 한국에 있을 때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여행 중에 배우자. 그리고 내 나라로 돌아가서 그대로 실천하자. 그리고 난 거기에 외국에서 유입된 거대 자본을 거부한다. 내가 방문한 나라에 도움이 되지 않는 여행사의 상품이나 관련된 모든 것들을 거부한다. 거창하지 않은 것이다. 아주 쉽다. 조금만 신경써서 바라보면 다 볼 수 있고 찾아서 실천할 수 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그 나라 말을 어느 정도 할 줄 아는게 유리하고, 찾고자 하는 여행상품이나 숙소, 도시등에 대한 정보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몇 개의 회사들이 있고 영국등 외국에도 많이 있다. 마음만 있다면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어제는 원주민들의 사진을 마구잡이로 찍고 있었던 한 외국 여행자에게 말을 걸었다. 난 그들에게 양해를 구하거나 친구가 되거나 혹은 허락을 받고 찍는게 예의 아니겠냐며 엉터리 영어로 설명했지만 결국 그 여행자를 설득하지는 못 했다. 세상일이 다 그렇듯 완벽한게 어디 있을까. 그래도 작은 것 부터 시작하자는 것이다. 나 부터 시작하고 내 주위에 알리고 여행이 끝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자리를 마련하고. 그리고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예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정보가 퍼지게 할 수 있다.

쓸데 없는 얘기가 길어졌다. 이제 내가 생각하는 여행의 목표를 얘기하고 싶다. 떠나기 전에는 어느 책 제목처럼 '행복의 지도'를 그리고 찾고 싶었다.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은 마음에. 지금도 그 목표를 버린 것은 아니지만 우선 순위는 아니다. 지금 내가 여행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은 10대, 20대 시절에는 몇 번 경험했지만 다시 한번 나의 정신적, 육체적 한계를 극복해 보는 것이다. 거기에는 혼자 하는 여행에서 항상 따라오는 외로움의 극복도 포함된다. 또 하나는 우리 부모님, 가족들, 친구들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며 내가 얼마나 그들을 사랑하는지 느끼는 것이다. 이 정도를 이뤄낸다면 나의 여행의 목표는 달성된 것이다.

지금 멕시코에서의 여행은 하루 하루 나에게 실망하고 있다. 쿠바에서 보여줬던 적극성과 긴장감이 사라진 것 같다. 항상 흐리고 비오는 날씨 때문일까. 아니면 가장 먼저 신자유주의를 극복한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 무리한 상상을 한 내 잘못일까. 아직 일주일 남았다. 멕시코 여행을 일단 잘 마무리 하고 과테말라, 콜롬비아에서 스페인어 열심히 배워서 이 곳을 보는 몇 명 안되는 사람들에게 재밌는 이야기, 새로운 이야기, 영감을 주는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다.

425 views and 0 respons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