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낭만을 느끼면 되잖아

예상했던 것 보다 더 아름다운 도시, 구아나후아또. 비가 내리는 저녁에 도착해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서 겨욱 숙소를 찾았고, 숙소 근처에서 들리던 Banda 음악을 따라가 사람들과 춤을 추는 것으로 구아나후아또의 여정을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여행자들을 계속 만나면서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역시 다양한 사연과 이유로 여기 멕시코에 있는 사람들. 여전히 나의 영어실력에 좌절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구아나후아또에 가면 반드시 연인을 데리고 다시 오게 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지구에서 가장 낭만적인 도시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한다. 보통 이 정도면 대부분 실망감이 더 크기 마련인데 구아나후아또는 내가 가 본 도시 중 분명히 가장 낭만적인 곳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혼자 여행하는 나에겐 그만큼 외로움도 더 크게 느껴진다. 여행자들도 커플이 많고, 아름다운 거리 악단의 노래들은 당장이라도 내 옆에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 키스의 골목 (Callejon del Beso) - 한 광부와 사랑에 빠졌던 딸이 이 곳에서 키스하는 모습을 본 아버지가 그만 딸을 칼로 찔러 죽였다는 전설이 있는 곳. 그래서 이곳을 지나는 연인들은 세 번째 계단 위에서 키스를 하지 않으면 불행이 닥친다나 뭐라나.. 혼자 몰래 가서 즐기려고 했으나 역시 입구부터 들어선 기념품 가게들과 계단에는 표시까지 돼있고, 커플들은 줄 서서 키스할 차례를 기다린다. 나는 뭐 지금 키스할 사람이 없으니까!!ㅠㅠ

스페인 식민지였던 라틴 아메리카 나라들의 도시를 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센뜨로(중심가)가 있고, 센뜨로에는 많은 광장, 공원, 정원 등이 있다. 그래서 그 주변에 많은 여행자 숙소가 있고 먹을거리, 즐길거리, 교회, 극장등이 몰려 있는 경우가 많다. 구아나후아또 센뜨로는 화려한 건물과 돌길로 이어진 아름다운 골목길등 식민지 시대 느낌이 물씬 나는 곳이다. 하지만 당연히 여기에도 빈부의 격차가 있다. 짧지만 멕시코 시티에서 느꼈던 극심한 빈부의 격차. 물론 우리나라도 그렇고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여기서는 우리나라에선 느낄 수 없는 인종간의 차이를 볼 수 있다. 아무리 변했다고 해도 피부색의 차이는 신분의 차이로 나타난다. 비싼 야외 레스토랑에서 마리아치에게 노래를 부탁하는 풍경 바로 뒤에는 아이를 옆에 두고 돈을 구걸하는 사람들이 있고, 낭만이 넘치는 광장에서 조금만 다른 골목으로 들어가면 가난한 삶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사실, 구아나후아또는 내 생애 가장 낭만적인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온 곳인데, 도대체 내 눈에 보이는 현실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냥 신경쓰지 말고 낭만을 느끼고 싶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무언가가 나를 계속 불편하게 한다.

* 로맨틱한 정원과 광장에는 아름다운 악단들의 노래 소리가 계속 이어진다. 나는 식사는 항상 시장에서 해결하지만 오늘은 현지인들이 자주 가는 레스토랑에 가 볼 생각.

내가 세상을 바꿀 수도 없고, 그러려고 여행을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작은 경험을 통해서라도 세상을 배우고 싶고, 사람을 알고 싶고, 부조리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실천하고 싶다. 꼭 들러야 하는 도시와 박물관, 유적지를 포기하면서도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여행의 모습이 분명히 있을텐데 난 그렇게 할 용기가 있을까. 도장 찍듯이 많은 도시들을 가는게 중요한게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다시는 오지 못할 수도 있는 나라에서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다른 추억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여행을 내가 시도하게 될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계속 고민하고 알아보는 중이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여행자도 이제 만났으면 좋겠다.

534 views and 4 responses

  • Aug 16 2010, 10:00 AM
    주희 responded:
    포스팅 재밌게 읽었어요. 사진도 잘봤구요. 여행에서 많은 것을 얻으려면 병수님 처럼 다양한 면을 보고 느낄 줄 아는게 중요한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멋진 추억들과 함께 많은 생각들과 고민들이 차곡차곡 정리되는 알찬 여행이 되시길..^^
  • Aug 16 2010, 1:44 PM
    HolaSu responded:
    @주희 감사감사^^ 멕시코 여정을 너무 짧게 잡은 것 같아서 고민 중입니다. 현지인들에게 몇 몇 작은 동네들을 추천 받았는데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역시 여러나라를 여행하는 것 보다 한 나라에 오래 머무르는게 더 좋은듯 해요.
  • Aug 16 2010, 4:48 PM
    영환 responded:
    잘지내나보군... 과나후아토... 정말 마음에 드는 곳이지..그곳은 조금 서늘하지? 여기 한국은 무지하게 덥다.. 조심해서 잘다녀...
  • Aug 16 2010, 7:36 PM
    HolaSu responded:
    @영환 쿠바에 비하면 여긴 늦가을 날씨;; 아직 외로움은 없는데 숙소, 교통편 항상 준비하고 신경쓰는게 좀 짜증. 콜롬비아부터는 계획대로 한 도시에 오래머물러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