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여행을 마치며
22일 동안의 쿠바여행이 끝났다. 가난한 배낭여행자에게 쿠바여행은 엄청난 경비가 드는데 22일은 분명히 긴 시간이었다. 낭만 보다는 실망과 좌절감을 느꼈던 아바나부터, 현지인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고 가장 가까이서 쿠바의 삶을 경험했던 시엔푸에고스, 올긴까지 22일 전부가 나에겐 소중한 경험이었다. 다행히도 내가 생각하는 여행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대했고 내가 쓰는 돈, 내가 지나가면서 남기는 것들에 대해 항상 생각하면서 행동했다. 마음에 드는 동네에서는 5일 이상 머물며 현지인들과 친분을 쌓았는데 배낭 안에 기념품은 없지만 내 마음 속엔 그 친구들이 있다. 가끔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여행자를 만나서 얘기를 나눴던 것도 기쁜 일이었지만, 무엇보다 쿠바 사람들이 얘기하는 쿠바의 삶, 현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여행을 통해 여행자와 현지인 모두가 보람을 느끼고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 항상 고민했다. 처음부터 모두를 설득할 수 없고 강요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건 무자비한 관광의 현실과 현지인들이 받는 고통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면 꼭 알려주고 싶다. 나의 여행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아쉽게도 중남미 여행 대부분은 그저 관광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지만, 몇 개의 책임여행 투어를 예약해 놓았다. 모르는 일이다. 여행 도중, 남미 가이드북을 버리고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지. 그래서 과테말라, 콜롬비아에서 열심히 스페인어를 공부해서 현지인들과 소통하는 것이 나에겐 매우 중요하다.
산띠아고에서 만난 후앙 아저씨가 나에게 메일을 보낸다고 해서 기대하고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계속 연락을 주고 받으며 쿠바 얘기를 듣고 싶다. 멀리서 보는 쿠바는 분명 낭만적이고 매력적이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록 그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가난한지 알 수 있다. 완벽한 세상은 없겠지만, 행복한 세상은 분명히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변할지도 모른다. 쿠바의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이 웃을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려본다.
나는 왜 여행을 떠난 것일까. 학력도 능력도 인맥도 없고 뚜렷한 인생의 목표도 없는 내 삶이 싫어서 도피한 것일까. 여행을 통해 내가 성숙해지길 바란다. 그리고 내 나라, 가족, 친구들이 그리워지길 바란다. 혼자 하는 여행이라 항상 외로움과의 싸움이지만, 한국이 얼마나 나에게 소중한지 깨닫고 부모님, 가족, 친구들이 보고 싶으면 그 때 돌아갈 것이다.
* 공항 화장실에 하루 종일 앉아서 관리하시는 할아버지. 면세점에서 비싼 기념품을 사고 비싼 음식과 술을 먹으면서 아무도 화장실 사용비를 주지 않는다. 감상에 빠지긴 싫었지만,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몇 마디 얘기를 나누고 남은 돈 2,000원 정도를 모두 드렸다. 수줍은 할아버지의 미소와 인사, 아마도 쿠바여행의 마지막 기억이 될 것 같다. 나도 인사를 하고 나갔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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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13 2010, 7:36 AMchu responded:쿠바가 드뎌 끝났구나. 아침에 늦게 출근해서 네이트 뒤늦게 확인했다는.. 너무 아쉽다 ;ㅁ; 그래도 건강히 잘 다니고 있나보이.. 쫌 대견한걸^^ 글들도 좋고.. 함께 여행하는 기분들이 들어.. 아프지 말고.. 계속 이렇게 이야기 들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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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14 2010, 7:16 PMHolaSu responded:멕시코는 아직까진 잘 모르겠네.. 멕시코 느낌(?)이 나는 동네가면 이야기 들려주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