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아바나
까삐똘리오 옆에 있는 유명한(거의 일본,한국,중국 사람들에게만 알려짐) 그리고 거의 유일할 것으로 생각되는 쿠바의 도미토리, '호아끼나' 아주머니네 집으로 왔다. 이른 아침에 도착했음에도 아주머니는 아침식사를 차려주셨고, 한국인에게 아주 호의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 만큼 그 동안 한국 여행자들이 좋은 인상을 심어줬을거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역시 일본인들이 많다. 1년 넘게 혼자 세계여행하고 있는 일본여자, 작년에 6개월간 쿠바 아바나에서만 살았고 이번에는 2주 정도 지내다가 아르헨티나로 2년 동안 법률 공부를 하러 떠나는 일본남자 변호사, 우연히 버스에서 만난 일본사람에게 추천받고 온 스페인 교사 아저씨, 1년 2개월 동안 세계여행하고 있는 일본청년(내가 좋아하는 오래된 일본 뮤지션들을 모두 알고 좋아해서 나와 너무 잘 맞았다) 그리고 콜롬비아에서 1년 동안 스페인어를 공부했고 내일 중국으로 귀국하는 투어리즘을 전공하는 중국학생. 20일 정도 혼자 지내다가(물론 거리에서 나처럼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을 가끔 만나 만담을 나누긴 했지만) 도미토리에 오니 얻는 것도 많고 심심하지 않아서 좋다. 역시 배낭여행은 도미토리에서 지내야 한다. 멕시코 부터는 계속 싼 도미토리를 찾아 다닐테니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시 찾은 아바나의 첫 날은 못 가본 거리들을 걸어다니며 보냈고 둘째 날은 중국 친구랑 중국인 대학교에 갔다. 산따마리아 해변으로 가는게 목적이었으나 자기 친구가 대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공짜로 인터넷을 할 수 있다고 해서 나도 좋다고 했다. 당연히 쿠바는 대학교까지 무상교육인데, 내가 간 학교는 오직 중국인들만 다니는 대학교였다. 5-6년 동안 스페인어 및 관련 전공을 배우는 학교다. 중국과 쿠바의 경제협력으로 이 대학 역시 모든게 무상으로 지원된다. 우리는 중국 대학생 친구를 따라 몰래 대학교에 들어가서 점심까지 먹었다. 쿠바에서 먹기 힘든 떠 먹는 요구르트까지 나와서 감동했다. 매우 친절하게 나를 대해주는 중국 대학생들과 얘기를 나눴고 우리는 컴퓨터가 있는 건물로 이동했다. 콜롬비아 여자친구와 사랑에 빠진 중국친구는 그녀에게 메일을 보내고 난 Gmail을 확인했다. 100메가 속도라고 나오지만 모뎀보다 느린 인터넷, 다행히 우리의 Gmail은 Basic HTML View 를 지원해서 큰 지장은 없다. 하지만 트위터, 페이스북은 접속조차 할 수 없다. 아예 접근 자체를 막아 놓았는데 재밌는건 네이버도 마찬가지. 하지만 다음은 접속이 되서 겨우 헤드라인 뉴스 정도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어제와 마찬가지로 아바나에는 계속 비가 내린다. 중국 친구들은 해변으로 수영하러 가고 나는 쿠바 여행을 정리하러 까사로 돌아왔다. 차이나 타운에서 쿠바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하고 밀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밤에는 돌아온 중국 친구, 스페인 교사 아저씨와 깊은 얘기를 나누며 보냈다. 24세의 혈기 왕성한 중국 대학생,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열정적이었던 가슴은 사라지고 꿈이 있는지 조차 모르겠다. 스페인 교사 아저씨는 민감한 문제인 티벳, 대만 얘기까지 꺼냈는데 중국 친구와 대립하며 토론하는 모습이 매우 재밌다. 우리는 새벽 1시까지 럼을 마시면서 다양한 얘기들을 했고, 결국 마지막에는 우리가 바꿀 수 있다는 전형적인 결론으로 토론을 끝냈다. 마지막 밤, 많은 양의 럼을 마신 탓인지 깊은 잠을 잤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고 처음으로 꿈을 꾸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