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떼 광장에서의 대화
올긴까지 왔는데 산띠아고 데 꾸바를 가지 않고 돌아가기엔 너무 아까워 결국 아바나와 함께 쿠바에서 가장 크고 활발한 도시 산띠아고에 왔다. 쿠바 음악의 본 고장이라고 할 수 있지만 유명한 클럽 및 거리는 모두 여행자들을 상대하기 위한 음악으로 변질된 것 같다. 예상한 모습이라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고 쿠바 혁명의 발자취 및 주요 광장을 둘러보고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아바나 혹은 뜨리니다드로 가는 버스가 앞으로 3일동안 모두 매진 상태다. 심지어 국내선 비행기까지 마찬가지. 그렇다고 여기서 며칠 더 보내긴 싫었다. 결국 올긴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하고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했다. 버스 시간까지 몇 시간이 남아서 마르떼 광장에서 앉아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30분 정도 앉아있는데 건너편에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보인다. 저거 50원 비싸야 100원이겠지 생각하고 배낭을 메고 걸어가는데 어떤 사람이 말을 걸었다. 이제 말투 혹은 그 사람만 봐도 삐끼인지 진짜 얘기하려고 말을 거는건지 다 알 수 있다. 나는 왠만하면 삐끼라도 기본적으로는 상대해 준다. 쿠바에서 모든 사람을 무시 했다가는 정말 순수한 목적으로 말을 거는 사람들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삐끼들 상대하는 법도 다 아니까 귀찮을 것도 없다.
아버지 연배 비슷하신 분과 큰 형님 연배 정도의 아저씨 두 분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난 조금 얘기하다가 재밌을 것 같아 배낭을 풀고 같이 앉았다. 59세의 '후앙' 아저씨는 스페인어 교사인데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도 할 줄 안다. '알렉한드로' 아저씨는 전에는 택시기사였고 지금은 하루 하루 일거리를 찾아 돈을 벌고 있다. 기본적으로 서로 궁금한 관심사항에 대해 얘기하다가 '알렉한드로' 아저씨가 맥주를 사오겠다고 해서 내가 1CUC 를 주었다. 난 캔 맥주 한 병인 줄 알았는데 도대체 오질 않는다. 그 사이 '후앙' 아저씨와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서로의 국가에 대한 기초적인 궁금사항 부터 스포츠, 문화, 결국 쿠바에서의 삶에 대한 얘기까지 하게 됐다. 이게 모두 아저씨가 영어를 할 줄 알아서 가능한 일 이었다. 예상한대로 쿠바의 지식인들 혹은 전문직 종사자들은 현 체제에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고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한다. 사실 그 인구수도 매우 적은데 그 이유는 전문직들의 월급이 적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돈을 벌기 위해 다른 일을 하기 때문이다. 대학도 무상교육인 쿠바, 하지만 빈곤한 삶 앞에서는 그것도 초라해질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난 내가 지은 집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그 집을 팔 수 없습니다. 그건 내 것이 아니죠"
"현 체제에 반하는 어떤 얘기도 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당신과의 만남이 반가워서 우리 집에 초대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지금 조직을 만들어서 투쟁하기는 어려우니, 그저 바뀌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행복하지 않아요. 우리는 매우 가난합니다. 1월부터 12월까지 달이 지날수록 더 생활고에 시달립니다. 비옥한 땅과 카리브해, 그리고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다지만 사람들의 삶은 매우 힘들어요."
"사회주의 사회, 쿠바에 대해서 어설픈 환상이나 상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쿠바에서의 삶이 행복한 사람들도 있지만 현실 자체는 모든게 평화롭고 느긋하고 잘 분배되어 있지는 않아요"
"조금씩 사면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많은 양심수들이 있고 계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난 경제체제, 정치체제를 분리해서 더 자세하게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많은 쿠바 사람들이 궁금해 하듯이 '후앙' 아저씨도 북한에 대해서 궁금해 하셨다. 난 내가 아는대로 답해주고 현재 우리나라 정권 및 역사에 대해서도 내가 아는 한 자세히 설명해 드렸다. 당연히 내 주관적인 견해다. 여행할 때 그 나라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한다. 외국인 여행자가 물어보고 현지사람들이 물어볼 때 제대로 답해주지 못 하거나 모른다고 하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아무튼 오랜 만에 흥분해서 열변을 토했던 것 같다.
그 때 '알렉한드로' 아저씨가 왔다. 1.5리터 PET 병에 양조맥주를 담아 오셨다. 아하! 이거 였구나. '후앙' 아저씨가 컵이 없다며 길 건너편 카페로 가서 컵을 구해가지고 오셨다. 쿠바에서 양조맥주는 처음 마셔본다. 그리고 우리는 여러가지 서로 궁금한 다양한 주제들을 가지고 얘기를 했고 마지막에는 여행에 관련한 얘기를 했다. 내가 쿠바를 여행하면서 보는 관광객들의 모습, 그들을 이용하는 쿠바인들의 모습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보람있었던 여행의 기억들을 얘기했고 두 분 모두 공감하셨다. 내가 '시엔푸에고스'와 '올긴'을 좋아했던게 순간적인 판단이 아니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실제로도 쿠바인들이 토론장소로 많이 이용한다는 "마르떼 광장", 어쩌면 산띠아고에 오지 않았으면 후회했을 정도로 2시간 정도의 대화는 매우 유익했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체제의 이론적인 논쟁을 떠나서 도대체 사람들이 갈구하는 행복한 삶에 가장 가까운 사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물론 그 모습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서 만들어 나간다 해도 분명히 방해하는 사람 및 나라들이 있을게 분명하다면 어차피 또 악순환이 계속될까. 내가 만났던 많은 쿠바 사람들, 내가 아무리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건 그들의 현실을 제외한 나만의 추억일 뿐이다. 설레임과 막연한 낭만을 가지고 시작했던 쿠바 여행, 이제 끝을 향해 가고 있는데 머리속이 복잡하다. 지나가는 나그네 밖에 안 되는 내가 그들에게 괜한 피해를 준 것은 아닐까 혹은 나는 여행이 끝나도 무언가 고리를 잡기 위해 계속 노력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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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12 2010, 7:16 PMlandnfreedom (Twitter) responded:계속 올리는 중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