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쿠바, 올긴 #2
가 보고 후회하는게 안 가고 후회하는 것 보다 나을 것 같아 산띠아고행 버스표를 샀다. 아침은 3MN(150원) 짜리 샌드위치(따끈하게 데워줘서 먹을만하다)와 레몬라임 음료수로 해결했고, 센뜨로 거리를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합주를 하는 사람들이 보여서 들어가서 구경했다. 쿠바의 대중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 son 이었다. 인사하고 몇 마디 나누다가, 나도 건반악기 다룰 줄 안다고 하자 한 번 쳐보라고 한다. 그냥 생각나는 코드 진행을 하며 32마디 정도 쳤다. 트럼펫 부는 리더 아저씨가 yesterday 쳐보라고 했는데 코드진행을 몰라 못 했다. 시작하는 key만 알면 예전엔 어떤 노래도 거의 비슷한 코드로 즉흥적으로 칠 수 있었는데, 이젠 그것도 못한다. 난 간단히 jam 을 하자고 제안했는데, 리듬이 너무 어려웠다. 재밌으면 계속 구경하려고 했는데 실력도 별로였는데다가 너무 산만하고 기본기도 없는 아마추어 티가 나서 몇 곡 합주하는거 보다가 인사하고 나왔다.
저녁엔 19세기 중반 쿠바 1차 독립전쟁 중 전사한 올긴의 혁명군 리더 CALIXTO CARCIA 문화제가 공원에서 열렸다. 무대, 음향, 조명팀 참 고생이다. 지금 올긴은 TU VERANO BONITO 축제 기간인데, CALIXTO CARCIA 공원 안에서 매일 무대가 옮겨지고 추가되기도 한다. 쿠바 국가로 시작된 문화제는 엄숙하고 투쟁적인 분위기의 멘트, 노래, 율동 등이 반복되는 형태였다. 책도 없고 올긴 관련해서는 미리 준비도 못한지라 주위 사람들에게 CALIXTO CARCIA 에 관해 물어봤고 자세한 설명과 기념주간의 의미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물론 반도 못 알아 들었다). 어떤 사람은 CALIXTO CARCIA 가 자살했다고도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절대로 그럴리가 없다고 하며 많은 사람들은 그가 전사한 것으로 믿고 있다. 쿠바를 여행하면서 체 게바라, 피델 까스뜨로 뿐 아니라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인사들이나 혁명 영웅들에 대한 얘기를 제법 많이 듣게 된다. 특히 쿠바 혁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들도 많다. 환상적인 교육, 의료 시스템에 비해 물자도 부족하고 생활하기에 불편한 부분도 참 많은데 라울 까스뜨로 체제(사실 아직도 실질적인 힘은 피델 까스뜨로가 가지고 있지만) 하에 앞으로 쿠바가 어떻게 변화할지 무척 궁금하다. 아무튼, 노래는 우리나라 민중가요랑 비슷한 분위기의 노래도 있었지만 대부분 무겁고 장엄한 분위기였다. 문화제를 보면서 소름이 돋는 순간들도 많았는데 마지막에 무대 연희자들과 공원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VIVA CALIXTO CARCIA! 를 외칠때가 압권이었다.
이제 무대를 옮겨 또 패션쇼로 이어진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란제리 및 드레스 패션쇼인데 모델 및 스타일이 어제와 다르다. 무척 재밌었다. 그래도 정겨운 분위기는 변함없다. 패션쇼가 끝나고 메인 공연들이 기다리고 있다. 아까 문화제에서 반주를 했던 팀이 또 연주와 노래를 하고 정열적인 춤의 공연이 시작됐다. 역시나 음향의 질이 좋지는 않았지만 대단히 흥분된 무대였다. 무대가 끝나고 중간에 살사 음악이 나오니 역시 공원은 전부 살사 파티 분위기다. 그 다음 팀은 또 힙합이다. 쿠바는 힙합이다! 라고 누가 그랬던 것 같은데,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시 상당수 사람들에게 낯선 음악임엔 분명한 것 같다. 떠나는 사람들도 조금 되고 살사에 미쳤던 사람들이 힙합 음악 앞에서는 쥐죽은 듯이 가만히 서 있다. 다음 날엔 조금은 어설픈 듯한 그룹 사운드. 역시 80-90년대 팝송을 부른다. 드러머도 번갈아가면서 하고 기타, 베이스가 서로 바꿔가며 연주하기도 한다. 마치 대학교 동아리 워크샵 공연 같았다. 공연 시작 전에 나온 살사 음악에는 많은 사람들이 몸을 흔들어댔지만, 그룹 사운드의 공연에는 역시 멍하니 서 있다. 쿠바의 지역 여름 축제에서 울려퍼지는 영미권 팝송들, 다행히 아직은 사람들이 별 흥미를 못 느끼는건지 아니면 아직 적응단계인지 모르지만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혁명은 50년 전 일이다. 이제 젊은 사람들은 힙합, 그리도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표출한다. 젊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오래 전의 혁명 영웅들이나 그 역사를 모르거나 관심이 없다고 한다. 쿠바의 경제체제와 사회정치 시스템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운 좋게 쿠바의 보석 같은 곳을 찾아서 기쁘다. 관광객이 거의 없고,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 그러면서도 여행자가 생활하기에도 아주 편리해서 "올긴"은 진짜 쿠바를 느끼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꼭 들러야 할 곳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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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21 2010, 9:12 AMsyngiru responded:hola! 제대로 여행하고 계신것 같아요. 묵묵히 걸음을 따라가 볼까 합니다.. 저도 쿠바 어느 거리에서 언젠가 잼을 해볼 수 있을까요...? 건강 조심하시구요, 늘... ^^ 살면서도 그렇지만 여행할때는 특히! 중요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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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21 2010, 2:32 PMHolaSu responded:반가워요!!ㅎㅎ 쿠바에서 여러가지 감정을 느꼈지만 아직도 그립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사람들 때문이겠지요. 아무래도 지금 멕시코에서 관광 그 이상의 것을 못하고 있어서 더 그런것 같아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