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쿠바, 올긴 #1

가이드북 없이 여행을 하다 보니 재밌기도 하지만 때로는 불편할 때도 많다. 지금 내 배낭에는 South America-Lonely Planet(Rough Guide 혹은 FootPrint 사려고 했지만 일단 보던 책의 편집 스타일이 익숙해서 어려운 남미 여행을 새로운 책으로 모험을 할 수 없었다) 한 권이 있다. 쿠바, 멕시코, 과테말라는 론리 플래닛 사이트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나라 개괄 소개 및 기본 여행 경로 등이 나와있는 무료 PDF 파일로 여정을 정하고 하루 하루 버텨나가야 한다. 그래도 쿠바는 미리 좀 봐 둔게 있어서 뜨리니다드 까지는 큰 탈 없이 지냈고, 이제 다음 도착지를 정해야 할 때가 왔다. 보통 산띠아고 데 꾸바로 간다. 아바나와 함께 쿠바의 양대 산맥 도시, 쿠바 음악의 고향, 혁명의 시발지 등등. 뜨리니다드에서 버스로 12시간 거리다. 며칠 동안 고민했다. 아바나부터 길거리 및 클럽에서 하는 공연들은 계속 봐왔는데 관광객들만을 위한 그들의 공연과 강제적인 팁 요구등 계속 실망스러웠다. 물론 산따끌라라에서 인상 깊었던 할아버지 밴드들, 그리고 축제때 강렬한 비트의 공연을 보여준 많은 밴드 등 나도 충분히 즐기고 흥분했던 기억도 많다. 그렇다면 가장 수준 높은 음악을 보여준다는 산띠아고 데 꾸바를 포기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산띠아고의 명성은 이미 예전부터 들은바. 더군다나 쿠바도 휴가시즌이고 다른 나라들도 여름방학 시즌이라 유명 여행지에는 관광객들이 엄청나게 많다. 즉, 가봤자 아름답지 않았던 뜨리니다드의 밤과 비슷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거리 자체의 음악적인 분위기등 다른 점이 분명히 있겠지만, 지금 돈도 부족하고 다들 간다고 꼭 가라는 법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 가이드북이라도 있거나 인터넷이라도 됐으면 고민하는 시간을 좀 더 줄이고 다음 여정을 더 빠르고 상세하게 정할 수 있을거란 아쉬움도 들었다. 물론 덕분에 현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서 얘기할 기회가 많아져서 좋은 점도 있다.

론리 플래닛 무료 PDF 파일을 보다가 Holguin 이라는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 you'd be follish to miss gritty Holguin which is about as real as Cuba gets". 도대체 올긴에 가면 어떤 풍경이 눈에 들어올까 매우 궁금해서 뜨리니다드 까사 할머니에게도 물어보고 마을 사람들에게도 물어봤다. 모두 매우 좋다고 평가해주셔서 버스표를 사고 올긴으로 향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고 센뜨로에 있는 공원으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 보이는 마을 풍경, 아주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센뜨로에 도착하니 일단 관광객이 거의 없어서 마음에 들었고, 삐끼들도 거의 없다. 심지어 자전거택시 기사들도 말을 걸지 않는다. 공원(사실 광장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공간)이 센뜨로에 아주 많다. 그리고 휴가 시즌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남녀노소 구분없이 아주 다양해서 좋았다. 지금까지 봤던 다양한 쿠바 사람들이 전부 이 곳에 모인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심지어 할아버지, 할머니 거지들도 제각각 다양한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쿠바에서 본 어떤 공원, 광장 보다 활기차고 사람이 많았으며 몇 시간을 구경해도 지루하지 않을 정도였다. 더군다나 축제 기간이라 야외무대까지 설치되어 있어서 공연에 대한 기대를 하면서 밤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술취한 사람들, 거지들도 많지만 세련된 옷 차림의 청소년들, 야무진 꼬마 아이들, 아이를 데리고 나온 가족, 보고만 있어도 멋있는 청춘남녀들 등등 이렇게 눈이 쉴틈이 없는건 처음 느낀다. 술취한 아저씨들이 술마시라면서 말을 걸기도 하고, 대학생들이 다가와 같이 밤새 놀자고 꼬시기도 하고 돈 달라는 거지아저씨들도 있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가 나를 한번 더 쳐다볼 뿐 크게 신경쓰지 않아서 너무 편안했다. 

음향시스템이 준비가 되고 80년대 롤라장 음악이 나오길래 뭔가 하고 보니 거리 중간에서 패션쇼를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모델들과 옷이 아니어서 사실 속으로 많이 웃었다. 디자이너 분들도 직접 모델로 나온 것 같다. 관심있게 지켜보고 사진찍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니 웃지만 말고 그들이 무엇을 느끼고 좋아하는지 관심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패션쇼가 끝나고 공연팀이 준비하는 동안 살사 음악이 나오자 커다란 공원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짝을 지어 살사를 추기 시작한다. 너무나도 멋진 광경이었다. 클럽에서 봤던 살사의 풍경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경험이었다. 산따 끌라라의 축제에서도 모두 살사를 추었지만 공간의 크기와 사람 수의 차이랄까, 아무튼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됐고, 힙합 팀 이었다. 사실, 쿠바의 음악장르는 매우 다양한데 의외로 쿠바의 힙합이 굉장히 대중화됐고 뛰어나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것 같다. 아바나에서는 힙합 페스티벌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 여기 올긴에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다. 살사에 열광하던 사람들이 멈추고 멍하니 서서 보기 시작한다. 몸을 흔들고 같이 참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보기만 한다. 가사를 알아 들을 수 있으면 더 좋았겠지만, 강렬하고 지루하지 않은 힙합 음악으로 올긴의 첫 밤을 지새웠다.

* 패션쇼 동영상 매우 정겨운데 업로드는 거의 불가능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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