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속고 살아야 하나, 아바나의 낚시

쿠바 사람들은 육체적인 매력뿐 아니라 내면에서 발산되는 사람에 대한 적극성과 친근함이 있다. 여행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인데 겁먹을 필요는 없다. 보통 시가판매, 성매매, 클럽입장등 소위 삐끼들이 많고, 처음엔 친근하게 다가왔다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따라가 주지 않으면 바로 뒤돌아서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도 쿠바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아주 많다는 것이다. 순수하게 다가와서 인사를 건네고 짧은 순간에도 많은 얘기를 나누게 된다. 서로에 대한 소개가 끝나면 음악, 야구, 한국에 관한 얘기 그리고 내 여행 일정에 대한 조언도 해 준다. 하지만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왜 내가 아직도 사회에 적응을 못 하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아바나 말레꼰을 거의 끝에서 끝까지 걸어가서 쉬고 있었다. 걷기도 힘들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었는데 도로 위로 넘치는 말레꼰의 파도는 말 그대로 가슴을 적시는 듯 낭만적이었다. 그런데 한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몇 마디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누다가 저녁식사까지 같이 하게 됐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남자가 자기가 맛있는 레스토랑을 소개해 줄테니 같이 먹자는 것 이었다. 사실, 나는 쿠바에서 레스토랑을 갈 계획은 없었다. 왜냐면 쿠바 숙소는 정부에서 허가받은 가정집인데 거기서 주는 아침, 저녁 밥이 레스토랑보다 맛있고 싸기 때문이다. 혹은 현지화폐로 먹을 수 있는 싼 레스토랑도 많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파는 커피, 아이스크림, 쥬스, 햄버거, 피자등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싸기 때문에 비싸게 레스토랑을 갈 필요가 없다. 거절을 잘 못하는 저주받은 성격 탓에 난 좋다고 말했고 우리는 아바나 비에하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서 랍스터를 비롯한 세트 메뉴를 시켜서 식사를 했다. 맛있기는 했지만 엄청나게 비쌌다. 서빙하는 여자분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정신을 잃은 것 같다. 그리고 현지인들만 가는 Bar에 가서 럼(Ron) 칵테일인 모히또(Mojito)를 마셨다. 사실 오래된 그 술집에서 재밌기는 했다. 현지인들과 계속 얘기를 나누고 젊은 사람들도 찾아와서 나와 대화를 나눴다. 물론 스페인어가 익숙하지 않아서 정말 고생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스페인어를 잘 못하는 나를 질책하기도 했다. 어떤 아저씨는 시가를 계속 물고 있는 나를 보고 마리화나를 사라고 건네기도 한다. 살사 음악에 맞춰 사람들과 춤도 추다가 늦게까지 마시게 됐고 또 많은 돈이 나갔다. 그런데 그 남자(이름은 루이스, 직업은 살사 퍼쿠션 뮤지션)가 내일 밤 8시에 아바나 리브레 호텔 앞에서 만나서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한다. 한국 친구가 생겨서 너무 기쁘고 자기가 소개해준 레스토랑, 술집에서 내가 행복한걸 보니 자기도 너무 좋다고 한다. 그래서 집에 오면 시가 세트도 선물로 주고, 살사 음악 앨범도 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준비한 근사한 저녁, 가족과 함께하는 살사 파티도 함께. 난 알았다고 했고 루이스가 갈 택시비까지 주고 집에 와서 잤다.

다음 날 8시가 가까워지면서 난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제 너무나도 많은 돈을 써서 쿠바에서의 여행 경비를 다시 계산해야 했고, 내가 그 사람을 믿고 집까지 가야 하는지 결정을 내리지 못 했다. 더군다나 정부에서 허가된 가정집 숙소가 아닌 집에 방문하거나 자는건 불법이기 때문이다. 결국 약속은 지키자는 마음에 난 나갔고 루이스와 나는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이 많이 탄 로컬버스는 나에게 위험하다며 버스를 타지 말자고 한다. 지금 내 복장이 버스에서 소매치기 당하기 가장 쉬운건 사실이었다. 루이스는 계속 아메리칸 라티노의 특성에 대해 나에게 설명을 했었다. 하지만 난 택시를 타기 싫었다. 비싼 돈이 나가기 때문이다. 그 때 부터 난 루이스의 표정이나 분위기를 보고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버스를 안타고 택시를 탔기 때문이 아니라 루이스의 표정에서 뭔가 불안한 직감이 온 것이다. 결국 택시를 타고 루이스 집으로 간다. 루이스 집은 아바나는 아니고 바로 옆 동네인데 가는 길이 심상치 않다. 점점 불빛은 보이지 않고 집 근처에 오니 완전 할렘가였다. 난 갑자기 소름이 돋는 공포를 느꼈다. 달려가는 택시에서 그냥 문 열고 뛰어 내릴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위험을 감수하기엔 늦은 것 같아 포기하고 집에 도착해서 들어갔다. 정말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가난한 집이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시는 80세의 어머니가 계셨고, 여동생과 조카는 일 끝나고 자정쯤 들어온다고 한다. 역시 조금 불안한 기분이 들어서 지갑과 가방을 메고 있었다.

난 목이 말라 물을 달라고 했지만 당연히 집에 물이 없다. 그냥 수도물을 마시는 것 같았다. 루이스는 자기가 나가서 물을 사올테니, 맥주, 럼도 같이 사는게 어떠냐고 물었다. 난 또 돈을 쓰기 싫어서 결국 물이랑 맥주만 사오라고 돈을 줬다. 한참이 지나서 온 루이스는 물, 맥주, 그리고 자기가 마실 음료수, 어머니 드릴 아이스크림을 사 왔다. 순간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들은 음료수 한 병, 아이스크림 하나 제대로 못 먹는게 분명했는데, 난 초대받은 손님이라면서 그것 조차도 기분 좋게 선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난 지갑과 가방을 벗어서 다 쓰러져가는 침대 위에 놓았다. 루이스는 어머니가 준비해 놓으신 재료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걷지 못하는 어머니를 위해 내가 부축하면서 몇 가지 일을 도와드리니 아주 좋아하신다. 그러고 요리가 다 나오기까지 1시간은 걸린 것 같다. 샐러드, 생선튀김, 토마토 소스를 사용한 소고기 스튜, 그리고 밥. 당연히 숙소에서 먹는 식사와 비교하면 너무나도 초라한 저녁이었다. 역시 밥이 5인분 양이다. 더군다나 루이스는 나를 만나기 전에 먹었다며 나 혼자 먹으라고 한다. 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같이 저녁식사를 할 것으로 생각했던 나는 또 다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왜 나만 먹으라는 것일까. 오늘 초대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 난 먹다가 정말 배가 불러서 더 이상 못 먹겠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루이스는 괜찮다면서 다 먹으라고 한다. 그다지 맛있지 않은 그 음식들을 정말 억지로 다 먹었다. 난 루이스에게 잠깐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자고 했다.

그런데 루이스가 시가 얘기를 한다. 몬테크리스토 시가를 동네 친구가 싸게 파니까 사가라는 것이다. 난 당황해서 조금 커 진 목소리로 어제는 그냥 준다더니 갑자기 2세트나 사가라는건 뭐냐고 물었다. 루이스는 목소리를 줄이라고 한다. 영어가 섞인 내 목소리가 동네에 들리면 모두 나와서 쳐다보거나 위험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집으로 다시 들어왔고 난 지금은 시가 살 돈이 없다고 계속 말했다. 하지만 루이스는 왜 어제는 좋다고 난리치더니 지금은 안 사냐고 계속 따지기 시작했다. 난 당신이 분명히 그냥 준다고 해서 좋다고 했지 그렇게 비싼 돈을 주고 2세트나 살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실망한 표정의 루이스는 다른 얘기를 시작했다. 지금 집에 페인트칠을 새로 시작했는데 돈이 부족하다며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순간, 1시간 전에 그들에게 느꼈던 연민의 감정과 나에 대한 부끄러움은 완전히 사라지고 공포에 휩싸였다. 난 철저하게 당한 것이다. 모든게 다 시나리오였다. 루이스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 돈은 우리돈 7,000원이 안되는 5페소 였지만 내 지갑엔 50페소 지폐들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솔직히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지금은 집에 갈 택시비 밖에 없으니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루이스는 이렇게 되면 어머니에게 미안하고 가족 모두가 실망한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와 돈을 받지 못하는 지금 상황에 대해 얘기하면서 싸운다. 비록 스페인어지만 대충 알아들을 정도로 난 긴장하고 있었다. 시간은 이미 자정을 향해 하고 있었고 난 너무 늦어 이제 가 봐야 한다고 재촉했지만 루이스는 이제 곧 여동생과 조카가 오니 같이 살사 파티도 하고 즐기자고 한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솔직히 여동생이 있는지도 믿을 수 없고, 루이스가 살사 뮤지션인 증거도 집에서 찾지 못했다. 탈출구를 찾아야 했다.

난 루이스에게 내일 시엔푸에고스로 떠나지만 어차피 멕시코로 가기 위해 다시 아바나로 오게 되니 그 때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며 수첩에 주소를 적어달라고 했다. 루이스는 계속 실망한 표정에 당황한 모습이었다. 억지로 수첩에 주소를 적는다. 너무 길다. 주소가 아니다. 그냥 집에 오는 길을 설명한 글이었다. 난 더 이상 이 집에 있다가는 내가 가진 모든 돈을 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시라도 빨리 나가야 한다. 루이스에게 나가서 걸으면서 얘기하자고 하고 어머니 손을 붙잡고 인사를 했다. 동네 큰 길로 나가니 오른쪽엔 성매매촌, 왼쪽엔 수 많은 청년들이 무리를 지어 서 있다. 난 너무 무서웠다. 여기는 쿠바다. 내가 여기서 돈을 빼앗기거나 몸을 다치게 되면 도움을 요청할 대사관, 사람도 없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루이스는 잠시만 기다리자고 한다. 지금 걸어가면 위험하니 사람들이 사라지면 나가자고 한다. 하지만 난 그냥 걸어가자고 했다. 지금 못 가면 오늘 여기서 쿠바 여행이 끝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위험하지만 뚫고 지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난 영어를 쓰지 않고 스페인어로 루이스와 대화를 하며 걸어갔다. 동네 청년들이 소리를 치기 시작한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나에게 거는 시비인지 아니면 루이스 저 놈 사기꾼이니 나보고 조심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자 루이스가 뭐라고 큰 목소리로 대꾸한다. 큰 길 까지는 약 200M 정도 걸어야 하는데 몇 분 안되는 그 시간이 한 시간 처럼 길게 느껴졌고 뛰는 가슴은 멈추질 않았다. 다행히도 무사히 큰 길가에 도착했다. 하지만 너무 어둡고 택시는 없다. 그러는 와중에 루이스는 그럼 3페소만 달라고 한다. 내 지갑에 동전 있는거 아니까 그것 만이라도 달라고 한다. 난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지갑을 털어서 3페소 정도의 동전들을 줬다. 택시가 안 온다. 속으로 울기 시작했다. 10분 정도 지나자 건너편 길가에 택시가 와서 난 바로 뛰어가서 잡았다. 루이스는 따라 와서 택시 운전사와 요금 흥정을 한다.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택시 운전기사와 싸움이 날 것 같아, 난 흥정은 필요없다며 기사에게 그냥 출발하라고 했고 그 곳을 빠져 나왔다.

숙소에 들어왔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현실을 무시한 채 여행의 낭만과 사람에 대한 경험만을 생각한 내가 한 없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지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왜 난 항상 당하기만 하고 이렇게 어리석은 것 일까.

다음 날 시엔푸에고스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계속 생각을 했다. 루이스를 사기꾼으로 불러야 할지 아닐지가 중요한게 아닌 것 같다. 그는 단 5페소를 원했다. 물론 시가를 사고, 그 집에 계속 있었으면 또 다른 상황이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보통 까사 빠띠꿀라(가정집 숙소)에서 저녁을 먹어도 3-10페소를 준다. 나에겐 공짜로 저녁을 대접한다고 하고 결국 자기 집 페인트칠을 위해 5페소를 원했다. 난 왜 주지 않았을까. 물론 50페소 지폐뿐이라 당연히 잔돈을 받을 수 없었을테지만, 5페소 지폐가 있었어도 주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3페소를 동전으로 주기는 했지만 그 때는 불안감이 최고조로 도달한 상태여서 도저히 논쟁할 여유가 없었다. 난 철저하게 당한게 분명했기 때문에 더 이상 눌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5페소는 나에겐 큰 돈이었지만 돈 많은 여행자에겐 아무 것도 아닌 돈이다. 반대로 쿠바 서민들에겐 너무나도 소중한 돈이기도 하다. 루이스는 나를 만나 랍스터를 먹고 술집에 가서 펑펑 마시고 다음날 시나리오 까지 준비한 것이었다. 아니 그 시나리오는 이미 정해진 것이고 난 그대로 낚인 것이다. 난 한국에서든 어디서든 항상 누구에게나 친절하려고 노력한다. 아마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루이스 같은 사람이 말을 걸어오면 무시하거나 적당히 둘러대고 갔을 것이다. 루이스에게 나는 너무나도 뜻밖의 선물이었던 것이다. 솔직히, 마음만 먹었으면 루이스는 그 집에서 내가 가진 모든 돈을 훔치거나 뺏을 수 있었다. 지갑엔 100페소와 아직 환전하지 않은 캐나다 달러가 모두 들어있었다. 그런데 집에 가는 택시까지 따라와서 흥정을 도와줬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일까.

내가 돈이 많아서 여유가 됐다면 그를 도와주는게 옳은 일일까? 대부분은 여행 다니면서 아이들이나 사람들에게 돈을 주지 말라고 한다. 잘못된 습관으로 악순환이 계속되기 때문이고 차라리 믿을 수 있는 지역단체에 기부를 하라고 한다. 루이스는 계속 나에게 행복하냐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하면 루이스는 자기도 나에게 아바나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게 해 줘서 행복하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원한건 비싼 레스토랑과 술집이 아니라 50원짜리 커피를 마셔도, 1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속이지 않고 친구가 되는 것이었다. 차라리 레스토랑, 술집을 데려가지 말고 그냥 집에서 저녁을 대접하고 도움을 요청했으면 어쩌면 나는 기쁜 마음으로 도와줬을텐데. 이제는 루이스를 미워할 마음도 없지만, 아바나 거리 혹은 말레꼰에서 나 같은 사람을 찾아다니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아직도 그 동네와 루이스의 집, 어머니의 표정 모든 것들이 지워지지 않는다.

* 이 날 이후 20일 동안의 쿠바 여행은 매우 편안하고 즐거웠습니다. 위 내용은 아주 특이하고 바보같은 경우 입니다. 쿠바는 여행자에겐 아마도 가장 안전한 나라 중에 하나 일 것 입니다. 물론 어디를 가도 삐끼가 있고 돈을 구걸하는 사람도 있지만 순수한 친근함의 표현으로 다가오는 좋은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잊지 말고 그 사람들과의 만남을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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