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이 좋아

나에게도 '그날'이 있는 것일까. 에콰도르 수도 Quito가 그냥 싫었다. 날씨도 싫었고 히피들의 성지 수크레 호스텔도 싫었다. 달갑지 않게 대하던 한국인도 싫었다. 더군다나 수크레 호스텔엔 방이 없어서 거실 바닥에서 자야 했는데 예전 같으면 오히려 싸게 묶게됐으니 좋아했을텐데 그것도 싫었다. 난 몇 시간 있다가 주인 아저씨에게 다른 곳에 간다고 말하고 나왔다.

멕시코나 과테말라에서 히피들이 몰리는 호스텔에 가 보지 않은게 아니어서 수크레가 싫었다고 말하긴 힘들다. 어쩌면 Quito가 싫은게 아니었을지도. 정확히 모르겠다. 여행 5개월째, 갑자기 짜증이 팍 밀려온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런 날도 있는 거겠지 하고 지금은 생각하지만 그 날은 하루 종일 비를 맞으며 배낭을 메고 돌아다닐 정도로 정을 붙이지 못 했다.

잠깐! 자꾸 사람들이 '히피'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알던 히피의 문화가 잘못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과테말라에선 인디오들이 파는 물건을 싸게 사서 몇 십배로 되파는 인간들도 있다고 들었다.

아무튼 난 하루 만에 밤 버스를 타고 Manta로 향한다. 에콰도르는 크기가 작아서 언제든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니까, 키토는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왜 Manta로 갔을까?

쿠바, 멕시코, 콜롬비아에서 몇 번 먹었던 생선 요리는 나를 미치게 했었다. 우리나라에선 먹어보지 못 한 커다란 생선에 입에 살살 녹는 그 느낌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참치, 상어등을 볼 수 있는 새벽 어시장, 오랜만에 다시 먹어보고 싶은 생선요리 그리고 잠깐이라도 바다를 보고 싶어 Manta로 간 것이다.

어차피 쿠바, 카르타헤나의 말레꼰이나 해변을 기대한게 아니었고 내가 기대한건 어시장 이었다. 아침 일찍 도착한 나는 너무 배가 고파 무작정 시장으로 가서 아침을 먹고(이것도 생선요리로;;), 바다로 향했다. 지금쯤은 마무리가 됐을거라 생각했지만 아직도 상어등 다양한 생선을 해체하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었다. 어부들이 밤새 잡아온 생선들은 도매상, 소매상 모두에게 팔린다. 바로 옆에는 커다란 도매시장이 있고 당연히 Ceviche 를 포함하여 아침을 먹을 수 있는 노점들도 있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 하나 물어보는 나에게 모두 친절하게 답해 주신다. '여기 있는 동안은 하루 종일 생선요리만 먹어야지!!'

아침을 먹었지만 그래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세비체를 먹고 돌아가려는데 커다란 배 아래 그늘에 앉아있는 아저씨 혹은 청년들이 나를 부른다. 역시 예상대로(?) 거칠고 자극적인 얘기들을 계속 나눴다. 어제 하루의 스트레스가 모두 날아간 기분이다. "여기 에콰도르로 와서 프로그래머 일 해요. 정부에서 도와줄 거에요. 물가 싸고 얼마나 좋아!" "한국 돌아가서 스페인어 공부하고 싶으면 다시 남미 올게요-.-;;" "내일 아침 6시에 다시 봅시다!"

아주 오랜만에 춥지 않은 곳에 와서 좋다. 물가 싸고 관광지 분위기 안나서 좋다(물론 현지인들에게는 관광지다. 평일인 오늘도 수 많은 관광버스와 사람들이 바다를 가득 매웠다). 난 혼자 있으면 외롭지 않고 오히려 많은 대중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인가?

오늘은 아이폰 알람을 5시에 맞춰놓았는데 7시가 다 되서 일어났다. '아! 이미 해체작업 하고 있겠구나'. 평소에는 그렇게 부지런하더니 하필이면 오늘 늦잠을 자서 보고 싶은 풍경을 놓쳤다. 그래도 재빨리 가방을 메고 바다로 뛰어갔다. 노점에서 아침을 먹고 재밌는 생선 해체작업 구경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회'가 먹고 싶어졌다. "아저씨, 저 이거 날 것으로 먹고 싶은데요. 얼마죠?"(세비체 정도가 회를 닮은 음식이랄까, 당연히 여기는 회가 없다). 난 참치 천원, 다른 생선 천원어치 회를 샀다. "요리해서 먹을거 아니니까 잘게 잘라 주세요". 비록 김, 기름장, 간장, 겨자, 초고추장 없이 맥주와 함께한 '회'였지만, 그리고 처량하게 혼자 바다에 앉아 주섬주섬 먹은 '회'였지만 자연산 생선회는 언제나 환상적이다. 2천원이었지만 무게는 1kg, 그러니까 나 혼자 '회' 1Kg를 먹은거네. 여기서 아주 질리도록 생선요리만 먹다가 가야지!!

 

365 views and 0 respons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