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 독립 기념일에 나는 뭐하고 지냈나

멕시코 독립 기념일은 놓쳤지만 운 좋게도 과테말라 독립 기념일과 전야 축제는 즐길 수 있었다. 이틀 전에는 미스 과테말라 선발대회가 있었고, 기념일 전날은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사실 일주일 전 부터 많은 행사가 있고 독립 기념일이 있는 주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동을 한다. 홈스테이를 하고 있지만(옆 방에는 뉴저지에서 온 60세 간호사 할머니가 있는데 이제 막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는 분이다. 웃긴건 스페인어를 영어 발음으로 하고 아직 초보수준도 못 되는데 주인할머니랑 참 잘 지낸다. 항상 서로 닭살이 돋을만큼 반갑게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는데 서로 못 알아듣는게 분명한데, 그래서 그런지 항상 과장되게 서로 웃는다^^) 할머니에게 오늘은 전야제 축제를 보러 간다고 하고 저녁식사는 준비하시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TAKA House 에서 다 같이 식사를 하고 일본 친구들과 Parque Central (중앙공원) 으로 갔다. TAKA House 에서 기타로 내가 아는 일본 노래들을 연주하고 mp3로 들려주면 즉흥적으로 대충 비슷하게 코드 따서 반주해주니 친구들이 참 좋아한다. 어렸을 때 일본문화에 잠시 빠졌던 것을 이제 써 먹는구나. 중앙공원에는 정말 엄청난 인파가 도로 및 공원에 있었다. 여행자들도 많지만 꼭 이 곳 Xela 에 살지 않더라도 독립 기념일 전야제를 즐기기 위해 다른 도시에서 온 사람들도 분명히 많을 것이다. Xela 는 과테말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기 때문이다. 수 많은 클럽 및 레스토랑에서는 밤새 파티가 열리고 공원 주변은 수 많은 인파와 함께 빠질 수 없는 먹거리 시장도 한창이다. 공원 한 쪽 무대에서는 음악 공연이 계속 이어지고 다른 한 쪽 도로에서는 거리 악단의 연주와 다양한 퍼포먼스가 계속 되고 있다. 마야 원주민의 비율이 월등히 많은 과테말라에서 지금 여기 공원에서는 메스티소의 비율이 대부분이다. 어디가나 마찬가지지만 지배계급은 즐기고 빈곤한 사람들은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노력한다. 자정에 시작되는 불꽃놀이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띠뜰란 호수 마을 옆 방에 살았던 아일리쉬-프렌치 연인을 우연히 만났다. 목소리가 매우 매력적이었던 프랑스 여자는 이미 취해서 너무 반가워한다. 친근한 사람들끼리는 포옹과 키스로 인사를 하는게 난 너무 좋다. 정말 순간의 포옹이지만 매우 친근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말보단 몸의 접촉과 적극적인 표현 하나가 이렇게 기분을 좋게 만들 수도 있다. "반가워요, 수! 당신을 아주 잘 알지는 못 하지만, 일주일 동안 본 당신은 친절하고 저에게 매우 좋은 인상을 남겨줬어요!" 약간의 술냄새가 내 귀 속으로 들어간다. 사실 아띠뜰란 호수에서는 필리핀 교수 아저씨와 일본 친구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짧은 만남이지만 여행자들끼리의 기억은 오래 갈 수도 있고 더 깊게 진행되지 않아 좋은 인상만 남을 수 있는 것 같다. 자정부터 15분간 계속된 불꽃놀이를 말 없이 바라보다가 우리는 숙소로 돌아갔다. 약 300년 동안 스페인의 지배를 받다가 독립을 했으니 이제 독립 기념일은 역사의 치유 보다는 축제의 날이다. 물론 과테말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빈곤하고 문맹이며 라틴아메리카에서 몇 안되는 친미 국가지만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것 같다. 이래저래 불안한 상황만큼 치안도 좋지 않다. 반대로 생각하면 여행자들에겐 원주민들의 삶과 의상, 그들의 민예품을 마음 껏 즐길 수 있다는 뜻도 된다. 하지만 더 깊게 들어가면 마찬가지로 원주민들의 삶과 관련된 문제가 심각하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조금 관심이 있어서 다음 주에 여행 계획을 변경할 수도 있을 것 같다.(화산 트레킹을 포기해야 하나;;)

오늘은 독립 기념일, TAKA House 는 Parque Benito Juarez 의 한 곳을 차지하고 행사를 한다. 팔씨름 경기, 스페인어 이름을 한자로 적어주기, 인디오 차 및 간단한 간식 판매 등이다. 나도 아침 7시 반에 TAKA House 에 가서 행사 준비를 도와줬다. 멕시코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최초의 원주민 출신 대통령 Benito Juarez 의 이름을 딴 공원은 여기 과테말라에서도 볼 수 있었다. 오늘은 공식적인 행사가 많은데 그래서 의미있는 이 공원에서 대부분 열린다. 아침에 일본 친구들과 물건과 음식들을 행사장으로 옮기는데 한 친구가 물어본다. "한국에서도 독립 기념일이 있나요?" "당연하죠, 일본으로부터..." "아! 그렇죠;;" "한국에서는 그 날 여기처럼 축제가 많나요" 모르겠다. 내가 기억하는 광복절은 대부분 엄숙하고 역사 이야기가 되풀이 됐던 것 같다. 오토바이족들이 전날 쇼를 하긴 하지만. 우리는 아직 즐길 수 없는게 당연하겠지.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상처들과 해결되지 않은 역사의 잔재들이 너무 많으니까. 더 심각한건 그것들을 이용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과 집단들이 아직도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언어부터 시작해서 문화,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에 아직도 그 잔재들이 남아있다는 것. 많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몇 백년씩 스페인의 지배를 받아 그들의 주 언어가 스페인어가 됐고 메스티소가 생겨서 그들이 지배계급이 되고 식민지풍 도시들은 여행자들이 몰리는 현상이 일어나지만, 우리는 생각해보면 아직도 아무르지 않은 상처들을 안고 살고 있다. 나도 참 우리나라에 대해 아는게 없지만 생각하면 할 수록 열 받고 슬픈건 사실이다. 아무튼 9시가 넘어가면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고 오후 4시쯤 철수 할 때까지 참 고생들 많이 했다. 그 만큼 수입도 꽤 나온 것 같다. 아이디어가 좋았다. 이 곳 사람들에게 팔씨름은 그 용어 자체부터 흥미롭고 팔씨름 자체가 생소한 놀이였다. 그리고 종이에 붓으로 한자이름을 적어주는 것도 당연히 이 곳 사람들에겐 하나쯤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임에 분명하다. 과테말라 아이들이 참 좋아하는 만화, 게임이 드래곤볼, 나루타 인데 나루타의 샌달이라고 이름을 지어서 일본식 덧신 같은 것을 만들어서 판 것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재밌었는데 갈 수록 나도 우리나라 친구들과 이렇게 우리 문화를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여행 중에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 외로워지기도 했다. 우리는 우리 문화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얼마나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잘 알고 있을까. 이 마음이 변치 않아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정말 내 나라를 사랑하고 잘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저녁에는 다 같이 중국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하고 돌아왔다. 몇 년 씩 세계를 일주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참 부럽다. 내가 지금 이십대였다면 나도 그럴 수 있을텐데. 도피하듯이 떠났지만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처럼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돈 문제 그리고 어두운 터널 같은 미래. 돈이 있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내 미래가 열려있다면 나도 2-3년을 투자해서 가 보고 싶은 모든 나라들을 다 돌고 싶지만 지금은 둘 다 암울하다. 떠났다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들에겐 부러운 인생일 수 있지만 난 늘 말한다.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대학 중퇴한 용기가 부럽다고 하는데 그건 용기가 아니라 내가 사회를 너무 몰랐고 게을렀고 결국 나의 실수였다. 지금 여행도 자신감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경제적으로도 가장 힘들 때 떠난 것이다. 시도할 수 있는 여유가 부럽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사람 그 자신의 삶과 용기를 생각하는게 더 중요할 것이다.

1825 views and 0 respons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