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전 그날이 또 반복되었을까. 어제 본 영화 ‘북촌방향'처럼. 즐겁고 행복한 하루 그리고 밤이었지만 예전과는 다른 미세한 차이를 느끼기에 마음이 더 복잡하다. 내 가슴은 더 이상 사랑에 대한 느낌을 받을 수 없는 물건이 되버린걸까. 아니면, 난 '관계 기피증'에 걸린 것일까.
어제는 영화같은 일이 벌어졌다. 물론 지금 이 곳에서 나는 여전히 나약하고 용기없는 사람이다. 요즘에는 그게 내 본모습이라면 꼭 억지로 바꿔야하나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하지만…

아무튼, 외로워서 또 나를 부른건지 아니면 다른 마음인지 모르겠다. 15년을 알고 지냈잖아. 그래도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더라고… 그래서 더 복잡하고 불안해. 아니 더 정확한 표현은 아직도 믿음이 안가.
사랑이 두려운 것은 사랑이 깨지는 것보다도 사랑이 변하는 것이다.
slush.org 에서 Demo Booth 운영 첫날. 피칭 스크립트도 준비 못했고 미숙한 영어지만 잘 해낸것 같다.
겨울이 시작된 핀란드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소박함과 친절함이 있다. 이 소소한 매력이 하루 하루 지날수록 나를 기분좋게 해준다.
SLUSH 행사가 끝나고 다음날, 지금 혼자 국립박물관에 있다. 지루하지않은 미술관은 오랜만인데, 커다란 테이블에 앉아 사진책들을 보며 헤드폰으로 시벨리우스 음악을 듣는데. 시벨리우스 음악이 이렇게 좋았었나…
다른 북유럽과는 또 다른 핀란드의 매력이 나를 행복으로 이끈다.

우연과 필연의 미로.
삶과 우연의 기묘한 만남.
나의 일상은 우연의 만남, 그 인연의 마법에 빠져들었다.
1. 오키나와 가족여행
- 양가 부모님과 함께한 5일동안의 행복한 시간들.
2. SLUSH
- 생애 첫 외국출장 및 컨퍼런스 참가. 데모부스를 운영하며 많은 것들을
깨달았고 핀란드는 여름에 다시 가고 싶다!
3. 관계의 단절
- 올해는 많은 사람들과 관계가 끊어졌다. 나의 실수 그리고 내
성격때문이다. 어차피 그 정도 가치의 관계였기에 큰 후회는 없다.
4. 회사생활의 리즈시절
- 지금 다니고 있는 스타트업에서 회사생활중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있다. 물론 내 목표는 회사생활을 끝내고 자유인으로 돌아가는 것.
5. 익숙함
- 부부생활이 이제 익숙함을 지나, 새로운 전환을 필요로하는 단계까지 왔다.
아마 아내보다 내가 더 할게 많을텐데… 잘하자.
20대 감독 Xavier Dolan은 천재일까 아니면 자기도취에 빠진 예술적 허세를 부리는 것일까. 모르겠다. (아직까지) 난 그의 영화가 좋다.
‘마미'는 감정의 불꽃놀이 속에 140분 내내 소름돋는 전율의 연속이었다. 자유에 대한 갈망을 이렇게 멋지면서도 가슴속 깊이 와닿게 표현할 수 있다니.
더군다나 '승리자'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줬을때의 감동은, 아주 오래 갈 것 같다.
우울하고 고민만하던 33년의 삶이지만 몇 번의 행복이 있었다. 첫 번째는 수능 끝나고 약 4-5개월 동안의 연애. 두 번째는 군 전역 후 짧았던 그 몇 개월의 일들. 마지막은 작년부터 올해까지 다녀온 중남미 여행.
그런데 요즘 내 삶에 영화같은 일들이 벌어지면서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행복을 경험하고 있다. 그 행복은 나를 변화시키고 있다. 작은 습관들 하나까지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미 나는… 작년부터인가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사람을 이해하기 시작했는데(트위터에서 이런 글을 봤다. 남자는 삼십대중반이 되야 사람을 이해하기 시작한다고 -.-;) 그 변화를 내가 느낄 정도니 놀랍지 않은가.
이 세상속 많은 사람들이 이미 경험했을 행복이 나에게 너무 늦게 찾아온 것이라고? 아니다. 내가 게을러서 그런 것도 아니고 나라는 사람은 지금 이 시기에 철이 들고 인연이 생길 수 밖에 없던게 아닐까. 중요한건 미래다. 너무 행복해서 불안하다. 이 행복이 깨진다면, 이 행복을 지키기 위한 어려움들을 내가 극복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불확실의 불안. 그 불안은 이번 행복이 우연과 필연의 미로속에서 만들어진 운명의 느낌을 지니고 있고 나에게 찾아온 마지막.. 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지난 주말의 꿈만 같던 그 시간속에서 나는 고등학교때 첫사랑을 하던 시절로 돌아간듯 했다. 그리고 오늘은 꿈이 현실이 되려하는 얘기도 들었다. 이런데도 고민을 하는것을 보니 아직 나를 완벽하게 탈바꿈시키진 못했나보다.
어떤 것에 대한 결핍으로 무엇을 갈망하는것도 아니고 난 속물근성도 없는데 불안에 빠지다니,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다시 읽어봐야 하나…
“자신있는 모습과 나를 믿어주고 기다려 주는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면 …”
그 동안 나라는 사람에게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던가. 나에 대한
믿음…자신감… 여행때 얻은 그 모든 것들이 벌써 사라진 것은 아니겠지. 오늘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다. 나를 성숙하게 해주는 너에게 감사해. 더 이상
불안은 없어. 필요한건 내가 나를 믿고 걸어가면 될
뿐이야.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중반까지의 밴드음악을 오랜만에 들으니, 예전 음향회사 시절이 생각난다. 무대 조명 음악뿐 아니라 사람들 한명 한명의 이미지와 말투까지.
시간은 너무 빠르고 추억은 현재의 나를 힘들게 한다.
“사랑이란 상실이며 단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남에게 주어 버렸을 때 사랑은 더욱 풍부해진다.”
쇼펜하우어의 이 말은 매우 상투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서른 중반이 다가오는 나는 이제서야 이해를 하고 실천하고 있다. 의식해서 행동한다기 보다 자연스럽게 나에게 스며들어 나를 변화시켰고 그 속에서 시간을 되돌린 듯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급속히 가까워지는 감정의 흐름들이지만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느꼈기에 이 것이 지나가는 바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서른셋에 혼자 남미로 배낭여행을 떠나고, 서른넷이 됐다. 여행이 끝난 후 절망의 바닥에서 난 다시 일어났고 그 즈음에 희망을 안겨준 사람을 만났다. 난 지금, 이제서야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다. 나를 가다듬고 완성시키는데 필요했던건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도와줄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 회사에 온지 한달. 너무 재미 없다. 하긴, 회사까지 재밌으면 다른 행복을 조금 덜 느끼게 되는건가?^^ 살면서 이렇게까지 마음 맞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더군다나 어제는 사람들 앞에서 개망신까지 당했다. 수치스러웠고 모욕적이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황당한 그 상황에 당황했다. 회사생활하면서 처음 당하는 그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오늘 나에게 모욕을 준 그 사람이 일 때문에 하소연 하는걸 들으니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능력이 없는데 관리하려니 좀 힘들까. 그리고 나에게 하지 말아야 할 소리들을 전부 하는구나.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한테도 내 얘기를 이런 식으로 하겠지? 슬픈건 그 사람이 내 멘토라는 것. 내가 정한게 아니라 이미 정해진 거지만.
일단 어제의 그 수치심은 잊어보려고 하는데 생각할 수록 화가 난다. 내 주제에 이렇게 크고 유명한 회사를 다니는 것에 그냥 만족해야 하나? 아마도 당분간은 그럴 것 같다. 왜냐면,
요즘 나의 화두는 “40, 그 이후를 계획한다.” 이기 때문. 39살이 되면 구체적으로 실천을 할 것이고 40살 부터는 제 2의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조금만 더 긴 호흡으로 참고 기다리자’ -강원도의 힘.
윌슨 : 날 몰아세우길 잘하셨어요. 전 그게 필요했구요,
고마워요
하우스 : 우리 사이 아직 괜찮은 거야?
윌슨 : 좋은 조언이었어요. 그냥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서
온 거예요.
하우스 : 난 자네가 좋아. 자네랑 있으면 재밌어. 그리고,
만일 자네가 날 싫어한다고, 나랑 있는 게 즐겁지 않다고 진심으로 말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어. 그렇지만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필요한 게 있다면 제발
뭐든 해버리게.

나는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나. 왜,,,,,
‘스스로 살아가기’ 시작.
처음은 아니지만 아주 오랜만에 집을 떠나 생활한다.
회사 생활하면서 이것 저것 준비하느라 정신없었다. 한편으론 슬프다. 왜냐면…
Someday if I would lose my way
Please remind me of your lovely dance
The days we used to take a walk and sing along
I’m sure that can make me smile
And someday if I don’t laugh at all
Please bring me a glass of wine that we really loved
How can I forget those moments that we chattered away in the sun
I know we’re gonna be alone again
And almost every memory will fly away
Someday if I’m off my feet in bed
Please play the songs of our/shiny days for me
Everything between us wouldn’t be like the way it used to be
but I hope we can dance once again
춤을 추자 나와 함께 그날 들처럼
춤을 추자 원 없이 원 없이
춤을 추자 나와 함께 이 순간에
춤을 추자 원 없이 원 없이
- My last song, 안승준
결혼전엔 기혼자들과 서서히 멀어지게 되고, 결혼후엔 아이가 있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더라.
사실 나도 아이 있는 집과 같이 여행을 가거나 외식을 하는게 썩 내키지 않는다. 그들도 우리와 육아에 대한 얘기를 재밌게 할 수 없어서 싫겠지.
모두들 아이를 낳아보라고, 세상이 달리 보인다고 하지만.. 영원한 회귀를 생각하면 난 나를 위해 남은 인생을 즐기고 싶다구요.
아니, 꼭 확신이 있는건 아닐지도 몰라.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면 남들처럼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렸을지도 모르겠어.
둘간의 설레임과 사랑이 영원하지 않으니까, 다른게 없다면 또 다른 고독을 느끼게 되니까.

동부이촌동의 작은 먹자골목이지만 거의 모든 종류의 술집들이 아기자기하게 모여있다. 음식도 대부분 만족할만한 수준이고 무엇보다 일본여행온 느낌이 나서. 옆에 있는 시장도 깔끔 그 자체.
골목의 시작과 끝이 너무 짧긴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정감있고 소중한 곳.
어쩌면 쿤데라의 생애 마지막 소설일지도 모르는 ‘무의미의 축제’. 150페이지의 짧은 소설이지만 ‘농담’에서부터 시작한 쿤데라 문학의 종합선물세트라고 불릴만하다. 책을 덮자마자 처음부터 다시 읽고 싶어졌다. 그리고 지금 내 나이와 경험에 이 소설을 읽고 느끼고, 감동을 받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무의미의 축제’를 즐기기 위해선 삶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경험이 있어야 한다. 이 짧은 소설안에 문학, 음악, 연극, 영화적인 요소를 모두 느낄 수 있다.
85세가 넘은 나이에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는 쿤데라가 존경스럽다. 1996년 ‘불멸’을 읽고 받은 충격에서 시작한 쿤데라 사랑을 20년이 지나도 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

바쁘다는 핑계로 해 줄 수 있는게 별로 없구나.
그래, 정말 견딜 수 없는건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었어.

귀금속 도매 상가에 들어갔다. 목걸이를 정하고 내가 잠시 나가있는 동안 나즈막한 목소리를 가진 매력적인 가게 아주머니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남자친구, 생긴 것도 그렇고 말하는거 보니까 참 착한것 같네요. 내가 살아보니까 다 필요없더라고. 그저 착한 남자가 최고야!”
난 거의 평생을 인상파, 범죄형으로 살아왔는데 몇 년 전부터 순하게 생겼다, 착하게 생겼다, 성실하게 생겼다… 이런 얘기를 많이 듣고 있다. 어떻게 된거지? 뭐가 달라진걸까? 아님 또 다른 나의 착각?
남: 예전에 말했던 사람 기억나? 한동안 뜸하다가
갑자기 연락와서 말벗이 필요하다며 한 번 만나자고 하네?
여: 너 여행블로그 보고 페이스북 친구맺은 그 사람? 탱고
한다는..
남: 응. 그냥 만나서 얘기 나눠보려고. 근데 너가 기분
나쁘다면 안만날게.
여: 아냐, 만나. 직접 만나보는게 좋은 것 같아. 계속
마음에 남아있지 않도록...
남: 너 쿨한데?
남: (...그런데 나 너한테 미쳐있다고 생각했는데, 네
생각만 하고 너한테 줄 것들만 생각하며 살고 있는데 이 경우는 또 뭐지?
따뜻한 마음이 그리웠던 것일까?...아닌데, 난 요즘 모든 것을 주었을 때의
풍부함을 알고 있단 말이다! 그럼 이건 뭐냐고?!)

아내와 저녁먹고 한남대교에서 댄스타임.
덥지도 춥지도 않은 요즘 날씨가 일년 중 가장 좋다. 야외에서 밥먹고 술마시고 마음껏 걸어다니고. 이럴때는 이 도시가 괜찮게 느껴진다.
선배들 만나면 변하지않은 그 꼰대같은 고지식함에 답답하고, 동기들 만나면 나보다 잘난것도 못난것도 없는 심심함이 싫고, 회사 어린 동료들과 술마시면 그 시절로 돌아가고싶은 마음에 가슴이 쓰리다. 가버린 봄날 그리고 아무것도 이룬것 없었던 10대 20대.
이제 몇 년 안남은 30대, 정말 돌아갈 수 없는걸 알면서도 슬프다. 늙어버린 내 자신과 지금 내 모습과 내가 했던 모든 것이. 누가 날 위로해 줄까.
10대 시절, 나를 팝송의 세계로 안내해준 김광한 아저씨. 특히 92년도였던가? 팝스다이얼 10주년 특집 방송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일주일동안 모든 방송을 테이프에 다 녹음했었다. 방에 있던 더블데크에서 Guns N’ Roses 의 Sweet Child of Mine 도쿄돔 라이브버전, Slash의 그 기타전주를 들었을때의 충격과 감동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70도 못채우고 가셨다, 유언도 없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시작하자. 로베르토 볼라뇨 2666.
그녀가 나에게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프로포즈가 아니라,
만약. 우리가 결혼한다면… 이렇게 시작한 이야기의 핵심은.
벗어날 수 없는 가족 문제.

우리 둘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아니, 둘만이 아니라 현실에서 도피하지 않고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은. 모르겠다.
TV를 보니 복면을 쓴 여자가 “나에게로의 초대"를 부른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사랑받는 노래이자 노래방 스타들의 스테디 도전곡. 그런데 저 가수가 부르는게 뭔가 부족하고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에게 이 노래는 고3시절 동네 학원의 추억이 먼저 떠오른다. 문제아 혹은 공부 못하는 애들을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해줬던 이상한 형태의 학원. 같은 고3친구들과 몇몇 후배들 그리고 재수생 누나 형들까지 모두 친했고, 가끔은 원장, 선생들과 다같이 가라오케도 가고 학원에서 술도 마셨다. 주말엔 가끔 학원이 하우스장으로 변하기도 했었다. 원장은 절실한 기독교 신자였고 자신이 운영하는 이 학원도 하늘의 뜻이라고 믿고 있었다.
아무튼 원장과 몰라 사귀었던(나와 몇명만 알고 있었다), 재수생 누나는 수능을 몇주 안남기고 갑자기 연극영화과를 가겠다며 오디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레미제라블 "On My Own"을 매일 연습했던 그 누나는 내가 그때까지 본 가장 노래를 잘하는 내 주변 여자였다. 그 누나가 노래방만 가면 부르던 "나에게로의 초대” 보다 날 감동시킬 가수는 아마도 없을지도 모른다.
당첨된 아파트 계약금을 내고 나니, 통장잔액이 5만원 미만.
그런데 난 휴가를 내고 “아이슬란드" 항공권을 샀다. 몇 주 전에 샀으면
20만원 싸게 샀겠지만, 바로 결정하지 못한 내 성격에 대한 비용이라고
생각하자…
아무튼, 세상의 모든 고독, 아이슬란드에서 죽을때 생각날 만큼 아름다운 여행을 해야겠다.
원래 계획하고 있었지만 이제 그 친구들과의 만남도 중지할 것이다. 다른 모임에서 사람들을 만났을 때의 느낌을 알고 있다. 더 이상 불편하고 역겨운 사람 혹은 대화속에 있고 싶지 않다.
“너는 어떻게 내가 말하면, 바라던 그대로의 맛을 낼 수 있어?”
……
‘내 음식이 너 입맛에 맞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아이슬란드 사진과 영상을 보여주는건 죄를 짓는 것 같다. 아이폰으로 찍은 그것들은 내가 본 아이슬란드가 아니기 때문이다.
링로드, 인랜드, 하이랜드, 차 세우고 노천온천, 다른 행성에서 하이킹, 4륜차로 오프로드 달리기, 아무도 없고 자연만 있는 드넓은 도로 혼자 달리기, 별들과 은하수 밑에서 온천, 오로라, 고래, 퍼핀, 가족 게스트하우스, 정겨운 호텔…
일주일 동안 죽기 전에도 생각날 많은 것들을 경험했다. 그리고 또 한번 가야겠다. 아이슬란드는 배낭여행, 장기여행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겐 그 어디서도 맛보지 못할 느낌을 주는 곳이다. ‘지구'의 원래 모습일테지만, 여행자에겐 다른 행성에 온 것처럼 묘한 고독감과 황홀감을 안겨줄 것이다.
새로운 동네에서 내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삶의 모습들을 보고 있다.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면서 생기는 많은 것들을 매일 매일 배우고 있다.
조금 불편하고 잠시 숨돌릴 여유도 찾기 힘들지만 지금 내 삶은 미래를 위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견디고 있는거야.
시골 어느 마을(영화 배경은 춘천이었지만), 이런 집을 사서 살고 싶다. 회사생활을 일찍 그만두기 위해서는 다른 생계수단을 찾아야 한다는 것. 수! 넌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용기가 없어서 그냥 그대로 사는 것일까, 능력이 없어서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일까.
업계 최고의 회사를 다녀도 역시 난 행복하지 않아. 정말 돈이 없어서 다니는
거라고. 하루 하루가 지옥같지만 버티는 거라고.
그런데 너도 알고 있잖아. 지금 이 생활이 너의 마지막 삶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그림을 그려보자.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서 구체화시켜보자.
평생 해본 적 없는 실수를 반복한다는 것은 얼마나 추한가. 내가 철없고 어른의 느낌은 전혀 없는 못난이라는 건 알지만, 머리에 어떤 부분이 상했는지 자신에 대한 절제가 전혀 안된다. 집, 회사, 술자리 어떤 곳에서도.
내가 그렇게 증오 하던 꼰대, 하대가 바로 나라는걸 인정한다는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이렇게 괴로워할 바엔 나도 별 수 없는 속물에 쓰레기라고 생각하고 남은 여생을 사는게 마음 편할 것 같다.
금요일 밤, 결혼 7년차 친구의 대하&막장 드라마 이야기를 몇 시간 동안 들었고, 오늘 내 친구는 막 엄마가 된 친구집에 다녀오더니 결혼하고 싶다며 몇 시간 동안 나와 이야기를 했다.
내가 아직 강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것.
상대방에게 ‘기대'라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자꾸 하게 된다.
회사생활이 지금 나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아무한테도 말 안했단 말야. 그런데 정말 힘든가봐…
중학교 5인방의 유일한 여자 OO. 어쩌면 학창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였는데 십수년간 외국에서 회사다니고 스튜어디스를 했던 그와 23년만에 만났다, 어제 2016년 2월 3일. 우린 포옹을 했고 몇 시간 동안 수다를 떨었다. 스페인 사람과 스페인 와이너리에서 결혼을 할거고 다음달 부터 미리 남미로 신혼여행을 간다고. 남편 일 때문에 거주는 싱가포르. 부럽다는 생각 보다는 나도 빨리 만나는 사람을 바꾸고 사는 공간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장문의 사직서를 써놓고 일주일째 말을 못하고 있다. 이런거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 스타일인데 이번엔 왜 그럴까. 회사생활의 마지막이라는 생각 때문일까. 아무튼 어제의 만남의 여운이 생각보다 깊다. 마지막에 서로 안아주며 작별하던 그 감정과 몸의 느낌을 잊을 수 없다. 스페인이나 싱가포르로 오라고 하지만 아마도 10년 안에 다시 만날 일이 없을지도 모르겠지. 그래, 10년 마다 한 번 씩 이렇게 만나서 수다 떨고 서로를 쳐다보는 것도 좋아. 그 시작을 서른 전 부터 했었으면 더 많은 추억이 있었겠지만. 다음에 보자.
내 손을 기억하고 있다니. 손이 참 예뻤다고ㅎㅎ 기분이 묘하다. 누군가 25여년전 내 몸의 일부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행복하고 자유롭게 다녔던 회사에서 결국 생애 처음으로 Burnout이 되버린 채로 그만두게 됐다. 꼭 번아웃 상태가 아니었어도 1년 안에 그만뒀을테니 시기만 조금 앞당겨진 셈.
몸과 마음이 이렇게 녹초가 되는 경험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이 회사에서 배운 것도 많고 핀란드가서 Slush 행사도 참여하고 휴가도 맘껏 쓰며 여행도 다녔지만 남은건 배우거나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대부분.
한 달만 버티고, 이제 새로운 인생을 또 시작해야 한다. 뭘 할지 정하지도 못했지만, 분명한건 이제 회사생활은 끝이라는 것.
어찌됐든, 나이 마흔 전에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 모험하겠다는 약속은 지켜지겠구나.
…“우리 생각하는게 같은거지…?”
이제 난 프로포즈 라는 것을 준비하면 되는건가
우연히 발견하고 들어간 지리산 게스트하우스 ‘다락방’. 회사 생활의 끝을 일주일 남긴 나에게 찾아온 운 좋은 인연이었다. 주인 아저씨와 대진 스님, 그리고 그 사람들을 둘러싼 다른 사람들과 차(tea), 향, 음악 그리고 삶에 대한 이야기들. 게스트하우스 또한 보이는 것들 하나 하나에 스며든 놀라움과 의미들이 있었고, 언제든 와서 쉴 수 있는 공간을 찾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대진 스님이 퇴직하면 꼭 오라고 하셨다. 인생의 전환점에 선 지금, 사는 공간을 바꾸고 만나는 사람을 바꿔야 하는데 구례 지리산 다락방 게스트하우스가 바로 그 시작점이 될까?
고등학교때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이 보다 아름다운 노래가 있을까? 'BOOWY’, ‘사잔 올 스타즈’, ‘미스터 칠드런’ 등 좋아하는 일본 아티스트가 많지만 평생 들어도 질리지 않을 아름다운 사랑 노래는 ‘차게 앤 아스카’의 곡들이 많다.
생각해보니,
단 한번도 좋게 생각해본 적 없는 회사를 다니고 있구나.
물론 지금도 업계에서 매출1위, 욕먹기1위;;
세 달 동안 내가 느꼈건 이 곳의 공기, 분명히 문제가 있다. 조직이 커지면 제대로 관리하기 힘든건 알겠는데 그 미래는 생각하고 있는건지?
…그래도 오늘 송년회 행사로 뮤지컬 캣츠를 보면서 아주 오랜만에 문화적 감흥을 느꼈고, 다른 곳에서 받기 힘든 복지와 다양한 보상을 받고 있으니 일단 참고 버티련다. 내가 투사는 아니잖아…

2003년 10월, 2006년 12월.
그리고 2011년 12월, 세번째 소매물도 여행을 기다린다.
친구의 부모님과 함께 가는 여행이라 빈틈없이 준비해야 겠다는 생각에 약간의 부담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내 인생을 변화시켜준 2011년을 마무리하는 여행의 의미도 있다.
조만간 2011년 나만의 키워드를 정리해봐야겠다^^
이 세상 대부분의 여성이 요리와 살림, 육아를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면, 나와 함께하는 사람은 그 부담을 가지지 않은채로 평생을 살게하고 싶어. (사실 꼭 너한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지만… 만약 다른 사람이었어도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거니까)
이미 난 요리를 전담하는 남자니까. 근데 내 주위에도 이런 예를 찾기 힘들다. 많은 친구 선후배들은 집에서 상상하기 힘들정도로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이다. 그 속에선 나만 이상한 놈이지.
그렇게 생각해보면, 전 여자친구처럼 요리를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을 만나고 있다면 내가 지금과 똑같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의미없는 가정일까?
유교적인 사회의 잣대가 아닌 둘이 행복하고 함께면 좋은건데 말야. 세상살이라는게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으니…
아르헨티나(특히 북부), 콜롬비아, 칠레에 대한 향수는 가끔씩 나를 잠 못들게 한다.

만약, 그 곳들을 다시 못가게 된다면… 정말 상상하기도 싫을만큼
끔찍하다. 여행이 나를 바꾸어 놓았다고 허풍을 치는게 아니다. 오히려
여행은 아무것도 아니다. 많은 여행 에세이들에서 볼 수 있는 헛된 희망의
메시지들과 환상을 싫어한다.
그런데..
내가 느끼는 감정은…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노스탤지어'라고
확신한다.
바로 전날 비행기표를 사서 떠난 11일간의 홋카이도 배낭여행. 제일 좋아하는 일본 음식과 술의 향연, 기차여행과 에키벤, 노천온천과 맑은 공기 그리고 생애 최고의 스시. 자전거 혹은 바이크를 타고 다니다 몸을 맡긴 노천온천의 물이 얼마나 좋은지 피부가 바로 반응할 정도였다. 장거리 기차에서도 에키벤 먹을 생각에 늘 흥분했고, 부드럽고 시원한 맥주와 함께하는 스시는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 그리고 우유와 아이스크림, 푸딩, 메론, 양고기, 옥수수 등 끝이 없는 먹거리.
비록 배낭여행이라 몸고생은 했지만 비수기여서 내가 주인공인듯 즐길 수 있었던 이번 여행. 옥의 티가 있었으니 바로 삿포로 스스키노에서 우연히 들어간 현지인들이 가득했던 꼬치집.
바에 앉아 꼬치 두개와 사케를 시켰는데 어느 순간부터 서빙하는 아주머니와 청년의 눈빛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일본어를 잘 못하지만 내가 옆에 앉은 술취한 아저씨와 얘기하는것을 듣고 한국인임을 알게된 후 그랬던 것 같다. 사실 정확한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한국인이어서인지 아니면 주문을 너무 조금해서인지. 그 후로 사케는 몇 잔 더 주문했으니 그것때문은 아닐수도. 결국 두 번째 꼬치는 몇 십분을 기다린 후에 나오고 그들은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겨우겨우 물수건을 받고나서야 내 자리에만 기본반찬과 물수건, 젓가락등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할아버지가 구워줬던 삼겹살 꼬치는 한국에서는 맛보지 못한 맛이었다. 난 분위기를 완전히 파악하고 더이상 자리에 있을 수 없어 자리를 떴다. 화가 나면서도 궁금했다. 왜 그랬는지.
예전 아르헨티나 어느 커피숍에서 혹은 수 많은 여행중 만났던 일부 사람들에게도 그런 눈빛과 대접은 받아본 적이 있지만 적응하긴 늘 어렵다. 내 겉모습과 옷이 어떻든 사람을 그렇게 대해선 안된다. 더군다나 난 예의하나만큼은 확실한 사람이니. 아무튼 세번째 일본 여행인데 생각지도 못한 경험을 해서 놀랐다.
그래도, 홋카이도는 부모님 모시고 꼭 다시 온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내가 철부지라는 것을 알게됐어.”
“사실, 그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고 다시 알게된 너는 15년전, 10년전 내가 바라봤던 그 모습이 없더라고. 내가 잘못봤던 건데ㅠㅠ 지금 나에겐 아무 상관없어…”
사실 중요한건 그게 아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의 차이는 처음부터 서로 알았고 지금은 많은 부분을 이해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화가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하다. 어쩌면 영원히 풀리지 않겠지, 우리 인생사처럼.
조급(?)한 마음을 가다듬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차근차근 하루를 만들어 나가보자. 그가 원하는건 내가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는데, 이건 정말 꼬리에 꼬리를 물고 꼬일 수 밖에 없는 오묘한 부탁이다.
가끔 꿈에 나올 때 마다 깨지 않기를 항상 바라는데. 어제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네, 생각보다 오래 간다. 감정이…

잊어버린 이십대의 기억들을 되살려준 편지들. 고마운 사람들. 비록 이 중
몇 명만 내 곁에 있지만 가슴속에 추억을 담아주어서 고마워.
더 늦기전에, 늙기전에 뜻깊은 파티를 하고싶다. 사람들을 불러 모아놓고,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아니라 모두 서로를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하는.. 그런
자리.
이미 여러 번 봤지만 넷플릭스에 올라왔길래 Inglourious Basterds
보다가.
(타란티노 영화를 20년 넘게 보고 있지만 Top 3 중 하나, 10점 만점에
11점)
Strudel (슈트루델) 먹방씬. 아,,, 진짜 먹고 싶다!!!
* 유대 율법을 따르는지 확인하기 위해 우유와 크림을 주문하는 한스 대령의 센스. 코셔에 따르면 육류와 유제품은 같이 먹으면 안된다(독일식 슈트루델은 소시지가 들어간다. 그래서 그런지 쇼사나는 빵부문만 잘라서 먹는다).
어제 재즈피아노 취미반 한 달치를 등록하고 첫 수업을 했다. 관악기를
배우기 전에 피아노를 어느단계까지 마치고 싶은 마음에(그래도 스무살때부터
연주했던 정 때문에) 시작한 2012년 첫 문화생활.
역시 지금까지 난 그저 정해진 패턴만 움직일 수 있었던 연주자였다.
기초부터 다시 시작하니 지루하긴 한데, 내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했기 때문에
앞으로 쭉 나가면 될 것 같다.
문제는 집에 피아노가 없다는 것. 싼 디지털 피아노라도 알아볼까, 아니면 종이에다가 건반을 그려놓고 연습이라도 해야 할까.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
어느 정도의 속도로 살아야 너를 만날 수 있을까…?




오늘은 행복했다. 더 친밀해졌고, 자연스러워졌다.

여름으로 가는 문, 1992년, 4,500원. 그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고, 학창시절 중 가장 다양한 경험과 반항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도, 로버트 하인라인 책을 사서 읽었었나.
SF 글쓰기 8주 강의를 듣고 있다. 지루한 사회생활과 너무 익숙해져서 새로움이 사라진 결혼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친구와 한 달에 한 번 만나고, 회사 내 동료와 브로맨스급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게 지금 내 삶의 유일한 재미랄까. 하지만 더 많은 모험과 자극이 필요하다.
SF 단편이나 시놉시스를 쓰기 위한 목적보다는, 내 스스로 창의적인 면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확인하거나 그렇지 않은 면이 있다면 발견하고 싶어서 강의를 신청하게 되었다. 이렇게라도 안하면 아마 평생 생각만 하다가,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
내가 이야기를 만들어 낼 최소한의 능력을 가졌는지 곧 판가름 날 것이다.
혼자 지낸다. 2월말까지 끝내야할 프로젝트가 있어서 아마도 매일 늦게까지 일을 할 것 같다. 밀린 이불빨래도 하고 그 동안 못 먹었던 음식들 먹어봐야지. 뭐..태국이라, 신기하게도 전혀 부럽지가 않다. 이제 동남아는 큰 관심이 없어서 말이지.
실용음악학원에서 재즈피아노를 배우면서 느낀 점. 세상 모든 일에는 넘기 힘든 벽이 있는데 난 아직 그 벽을 넘긴 일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스무살때 코드 자체를 몰랐는데 연습해서 익숙해진 만큼 지금도 끊임없이 반복해서 연습하면 일단 손과 머리에 익숙해지긴 할텐데, 피아노가 없어!
일단,,, “표백” 다 읽자.

추억의 공간으로 1층 방을 꾸미고 있다. 편안한 의자에서 커피,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하는게 다음 목표.
페이스북에 생일을 비공개로 바꾸고 맞이한 생일. 내 생일을 아는 대학 동아리 동기들 에게만 축하 연락을 받았다. 당연하지 않은가? 누가 다른 이의 생일을 적어두거나 캘린더에 등록해 두고 알림을 받겠는가. 페이스북에 안뜨면 아무도 모른다.
이제 인정, 관심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면 버려야지. 언제까지 거짓된 메시지와 좋아요 속에서 살 것인가.
가족들과 소고기 실컷 먹고 동네 가게에서 맥주 마시면서 행복한 월요일 밤을 보냈다. 마음 속에 만족을 주지 못하는 SNS는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사람과 마주해서 얘기하고 향기를 느끼며 살자.
이렇게 크게 느껴지리라고 생각 못했는데.
너도 내 생각이 많이 난다고 하니.
어쩌면 4개월을 쭉 달려왔던 우리에게 변화를 위한 시간인지도.
당분간은 지금 이 순간, 현재에 충실하자. 미래는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거라고 누가 말했던가.
연휴의 끝자락, 파업중인 지상파 방송국에서 영화가 나온다. 라라랜드. 개인적인 취향으로 위플래쉬를 훨씬 더 좋아하기에 그냥 극장에서 한 번 보고만 영화였는데, 같이 봤던 사람이 생각나서 캘린더를 뒤져보았다. 2016년 12월 26일.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흘렀던가. 맘에 드는 것도 없는데 뭘 그리 좋아하고 그리워하는지.
라면 - 아주 어렸을 때, 아마도 5살 이전. 잠실이었나? 삼촌네 집에서 작은어머니가 끓여준 달걀이 풀어져있던 안성탕면. 내 생애 첫 라면의 기억. 지금도 안성탕면을 먹을 때면 꼭 달걀을 넣어서 끓이는데 그때 그 맛이 떠오르는 듯 하다.
떡볶이 - 개포5단지 살 때 상가 어딘가에 있던 쌀떡볶이집. 처음 맛 본 썰떡볶이는 신세계였고 그 가게는 장사 참 잘 됐었다.
돈가스 - 개포동 상가에 있던 경양식 레스토랑 하얀집. 지금도 하얀집의 실내 풍경이 떠오른다. 빵은 기억이 안나고 스프와 돈가스는 맛까지 어렴풋이 기억난다.
숯불 바베큐 치킨 - 역시 개포동 상가에 있던 숯불 바베큐집. 지금 아무리 치킨 요리가 다양해지고 발전해도 그 시절 숯불 바베큐 치킨이 최고다.
꼼장어 - 사촌 형들과 포장마차에서 먹었던 꼼장어. 아직까지 더 맛있는 꼼장어를 먹질 못했으니.
스파게티 - 어머니와 무역센터 현대백화점 식당가에서 먹었던 토마토 스파게티.
민물장어 - 아마 2010년 이후로 없어졌지만 대치동 민물장어집 보다 깔끔한 장어를 먹어본 적이 없다. 부부인 아저씨 아주머니도 참 좋으셨고 반찬도 매우 정갈하고 깨끗했다.
치킨 - 아르헨티나 칼라파테의 솔 아저씨가 요리해준 치킨은, 1시간 이상 걸렸는데, 나중에 레시피를 물어볼 정도로 맛있었다.
소고기 - 아르헨티나 여행의 첫 도시 우마우아카 작은 식당에서 드디어 처음 먹어본 아르헨티나 소고기. 말 그대로 충격과 환희.
쌀국수 - 하노이 어느 한 식당의 쌀국수들. 하루에 두 번이나 먹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스시'이고, 아직까지는 홋카이도에서의 스시가 최고지만 앞으로 더 맛있는 스시집을 가야하니 일단 생략!


11월 10일. 노랑이가 입양 온 날. 많이 사랑해!
2010년 이후 외국으로 여행을 가지 않은 두 번째 해 (2013년도가
처음).
개발자로 생활한 이후, 기술 공부를 가장 하지 않음 (사실 아예 안 했다고
봐야).
조금은 지쳤던 작은 월세집에서 벗어나 드디어 이사를 했다.
아기 고양이가 새 식구가 되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고 있다.
한국나이로 마흔이 되었는데 아무런 계획도 의욕도 없다.
좋아하던 친구가 잠적했다 (언젠가 한 번은 만나겠지).
이렇게 별 거 없는 인생인데 고민만 하고 살았다. 40년 뒤 엉엉 울면서
무슨 후회를 하려고.
한 사람의 귀국을 맞이하기는 처음이다. 인천공항에 오면 항상 난 이런 생각만 했었다. ‘난 언제 떠나보나…’. 하지만 남미 여행을 갔다와서 그런지 그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나의 다음 여행은 세계일주겠지?
주근깨 투성이의 타버린 얼굴을 보니 내 안에 있는 고민들이 싹 씻겨진다.
(그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100% 사실은 아니네. 공항 가는길에 차에서 보인 비행기를 보면서, 공항에서 배낭을 맨 사람들을 보면서 나의 역마살이 살아오르는 듯 했다.
왜 나에겐 회사생활을 그만둘 능력 하나도 없냐고!!
나이 40이 넘어 이제 겨우 알게됐다.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입만 살아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그리고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서 그 어느 것도 제대로 해 놓은 것이 없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 됐던 목표도 없고 의욕이 없다는 것. 이전에 힘들었던 시기와는 분명히 다른게 있는데 확실한 이유를 모르겠다. 그래서 자신감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를 스스로 차버릴 정도로 모든 것에서 도망가고 있다. 어차피 나 혼자 극복해야 하니 하나씩 바꿔보자.
1. 만나는 사람을 바꾸자
- 불편하거나 내가 싫은 사람은 연을 끊어도 좋으니 앞으로 만나지말고,
SNS에서도 보지말자.
- 새로운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만나자. 특히 스타트업 관련.
2. 회사에 속하지 않고 살아보자
- 매일 출퇴근하는 삶이 아니라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적게 받고 몇가지 일을 해도 좋다.
3. 창업을 생각해보자
- 내가 잘할 수 있는, 나의 장점은 무엇일까.
한 달에 두 번은 강제적으로 칼퇴근 할 수 있는 정책을 시행한다고?
ㅋㅋㅋㅋㅋㅋㅋ 누구 머리에서 나온거냐ㅎㅎㅎㅎㅎ 바보들아
(봄날은 간다 에 나왔던)고즈넉하고 차분히 정리된 소박한 절, 신흥사. 따뜻한 햇살이 비치고 있던 설선당에서 형과 이야기를 나눴다. 따뜻한 햇살만큼 행복했던 대화.
바로 직전까지 난 2주 동안 한 시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지난 주는 거의 매일 빈 속에 술만 마셨고, 이번 주는 다른 생각을 하려 노력하면서 일에만 집중했지만 가끔씩 올라오는 그 무엇때문에 힘들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지금은 성숙해졌다. 조급함을 버릴줄 알게 됐다. 사람을 믿는 법을 알게 됐다. 기다릴 줄 알게 됐다. 마음을 편안히 가지는 법을 배웠다.
놀라웠다. 40대 전후의 인생 선배 두 명과 가진 두 번의 저녁자리에서 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깨달음을 얻었다.
신흥사에 간 이유는 절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기서 나만의 부탁을 속삭여보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이 우리가 서로 아는 말로 시작해서 문자를 보낸다면 모든 것이 다 괜찮아지는건데…’
그런데 그 순간 거짓말같이 문자가 왔다. 우연일 뿐이지만 기적이라고 생각하자, 재밌게.
“OOO? 나, 이제 다 괜찮아졌어. 걱정하지마.”




둘째 까망이. 지금처럼 형이랑 사이좋게 지내자.
“시간이 흘러 네가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됐을때, 나는 어떻게 살지? 하는 불안감이 가장 크게 느껴져”
… 일어나지 않을 안 좋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우리지만 이건 생각할 수 밖에 없는 문제라며 나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그리고 (아직) 나에게 남아있는 감정기복의 문제 그리고 안 좋은 일이 닥쳤을 때 다른 모든 것 까지 의미없다고 생각하는 이성조절실패의 문제, 이 두가지도 걸리는 문제라고 했다. 이 습관들은 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너로 인해 문제가 발생했을때는 다시 나타나더라. 하지만 최근에 한층 더 성숙해지는 계기가 많았기에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나는 ‘아이'를 원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한적이 없었다. 만약, 결혼을 하면 평생 단 둘이 행복하게 살고만 싶었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은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단정짓지는 않는다. 어쩌면… 부모님을 위해서? 내가 아이를 생각하고 있는건 아닐까?
물론 그녀의 생각은,
“난 아이를 정말 키우고 싶은데, 나이도 그렇고 몸 상태도 그렇고 아이를
낳을 생각이 전혀 없어.”
모든게 순리대로, 내 뜻대로 흘러가리라 기대하거나 그런 사람을 만나기를 기다리는 것은 둘 다 어리석은 짓이다…
쩝,,,
Make You Feel My Love -Adele
비바람이 스칠때나
세상의 짐이 너무 버거울때
내가 당신을 따뜻하게 감싸줄께요
당신이 나의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땅거미가 지고 별은 떠오르는데
당신의 눈물을 닦아줄 사람 곁에 아무도 없을때
내가 당신을 백만년 동안이라도 안아줄께요
당신이 내사랑을 느낄수있도록말이죠
당신이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는것을 알고있어요
하지만 난 괜찮아요
우리가 첨 만난 그 순간부터 느껴왔으니까요
당신이 내사람이란걸
의심해본적없어요
난 밥도 굶고
미친사람처럼 길거리를 기어다닐 수도 있어요
내가 하지 못할 일이라곤 없을거에요
당신이 내 사랑을 느낄 수만 있다면
험한파도위에 폭풍이 불어 닥치고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온다해도
당신은 나같은사람을 또 만나지는 못할거에요
다시는
내가 하지 못할 일이라곤 없어요
당신을 위해서라면 이 지구 끝까지라도 가겠어요
당신을 행복하게해줄께요
당신의 꿈을 이뤄줄께요
당신이 내사랑을 느낄 수있도록
그대가 내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그대가 늘 행복할 수 있도록
오래도록 그대에게 행운을 날려줄께요
내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결혼 후 처음으로 혼자하는 여행이라는것이 가장 특별할 줄 알았는데 그건 극히 일부분처럼 느껴진다. 이곳, 홋카이도 쿠시로에서 누가 4박 5일 일정 전부를 사용할까. 물론 거점이고 매일 드라이브하며 근처 여행지들을 돌아보지만.
하네다에서 쿠시로로 가는 비행기에서부터 지금까지 사람들 전부가 기억에 남는다. 이 시골 도시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모두의 표정과 나를 향한 친절함이.
연민의 감정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스타트업 회사 개발자로 살아가는 것과, 이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는 모습의 차이를 생각하지 말자. 나야말로 지금의 삶을 벗어나고자 매일 고민하지 않는가. 분명한건, 유명한 관광지가 아닌 일본여행은 처음인데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된다.
아마도, 지금 이미지로 새겨진 모든 것들이 꽤 오래동안 가슴속에 남을 것 같다.

생애 첫 차. 그 동안 부모님 차를 같이 썼고, 결혼 후에는 장인어른의 2002년형 싼타페를 사용했었다. 운 좋게 도요타 마스터 딜러분을 만나서 더 좋았고, 다른 차는 생각도 하지 않았기에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내 예산 안에서 안전성, 내구성, 연비를 모두 만족하는 차는 사실 프리우스 외에 찾기 힘들다. 신차 효과가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우리 부부에게 최적의 승용차인 것 같아 매우 만족한다. 차를 받고 5일 동안 계속 타고 다녔는데 연비는 30km/L 정도 나오고 있다! 승차감도 이 정도면 중형 세단 부럽지 않다. 안전운전하며 앞으로 10년 이상 행복하게 지내자, 프리우스.
처음으로 일주일 내내 같이 지내고 있다. 아니, 전에 한 번 있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금요일, 베프들과 저녁 술자리를 하고 지하철이 끊겨 12시 30분쯤 집에 도착하니 그녀는 자고 있다. 이것도 병인가? 샤워를 하고 내일 아침에 먹을 쌀을 씻어놓고 얼려놓았던 국을 꺼내놓고… 꼭 누구를 위해서라기보다 난 혼자 살 때도, 부모님과 살 때도 이랬던 것 같다. 이 습관 어디 가겠어…
토요일은 동네 산에 가서 운동도 하고 좋은 공기를 마시다가 우리가 좋아하는 ‘국수나무’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친절한 서비스와 정성스런 음식, 그녀는 맛집을 발견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그리고 어디가든 먹고 자고 누울 자리를 만드는 강한 생활력도 가지고 있다. 다만, 집안 살림과는 친하지 않다. 아무튼 우리는 저녁에 삼겹살을 먹기로 하고 슈퍼에서 먹거리를 샀다. 집에서 처음 먹는 삼겹살, 아니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 삼겹살을 먹은 적이 없던 것 같은데?
고기와 버섯, 오이, 깻잎과 각종 양념장과 매화수까지. 함께하는 토요일 저녁이 이렇게 여유롭고 행복하다니. 내가 하는 요리를 너무 좋아하기에 더 행복하다ㅋ
이제 연극을 보러 나간다. 오랜만에 하는 저녁 외식도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심각할 수도 있고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생각해보면 너의 말대로 조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지는 것일 수도 있는 지금 우리의 관계.

웃긴건 난 이럴 때 마다 한 걸음씩 더 성숙해진다는 것이다. 또 다른 ‘기다리기'를 배웠다. 그리고 몸이 견뎌낼 수 있을 정도가 됐다. 꼭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아니더라도, 나와 다른 사람의 성격과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둘의 관계를 더 지속시킬 수도 있다. 마음이 편안하다. 명상도 큰 도움이 된다.
그녀 아버님의 생신. 조니워커 골드 18년산을 들고 같이 집으로 찾아갔다. 동생과 아이들이 있었고 어머님, 아버님이 너무 반겨주신다. 처음 뵜던 여행 때 이후 나를 볼 때 마다 아주 반겨주시고, 어머니는 오늘, “장가 오면 이런 밥 많이 먹여줄게” 라고까지 하신다. 내가 마음에 드신 것일까? 아버님은 내일 차 가져오지말고 술마시러 오라고 하셨다. 그녀의 마음이 더 앞으로 달려가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난 그 날도 노력하면서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처지다. 더군다나 우리집의 상황을 생각하면 그녀가 오고 싶다가도 도망갈 수도 있겠다.
그리고 오늘도 역시 느꼈다. 난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면 관심이 없는 것일 수도? 물론 내 아이가 생기면 달라질 것 같다. 친구들이 그러더라. 세상을 새로 태어난 것 같고, 모든게 달리 보인다고. 그리고 너무 행복해서 죽을 것 같다고.
휴, 일단 어머니 회갑, 일본여행 준비나 하자.

원불교 다니시는 어머니가 내 방에 걸어두신 글. 이렇게 가슴에 와닿을수가!! 너때문에 마음고생도 많았지만, 언제나 고마워. 나란 사람이 사회와 연결될 수 있게 해줘서.

그녀와 우리부모님과 가기로 한 어머니 환갑기념 일본온천여행은 취소.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생돈 나간것도 아깝지만 당분간 그녀와 떨어져서 생활해야하네. 발목 아프다…
큰 행사를 마치고 피곤해 쓰러지기 일보직전. 소고기가 먹고 싶다기에 집에 가는길에 한 식당에 들러 등심을 같이 먹었다. 다 먹고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어할 줄 알았는데, 난 어떤 느낌을 받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랜만에 정치, 사회 이야기.
참 웃기다. 스무살 때 만난 동아리가 어떤 곳 이었는데 지금은 정치 얘기 하기가 썩 매끄럽지 않다. 사실 다른 동아리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감정이 자주 든다. 그냥, 의견 차이를 떠나 기본적으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설명하기가 너무 귀찮았다.
그래도 오늘 나는 폭발했다. 처음부터 마무리까지 술술 풀리면서 간간이 양념섞인 얘기까지. 그녀가 흐뭇하게 나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고보니 밥 먹으면서 참 오랜만에 대화한 것 같다. 재밌다, 이런 작은 것 하나 하나가.
적어도 3-4주 깁스를 하게 된 나, 취소된 일본여행, 아마도 주말에만 보게 될 우리. 이 것들이 또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될까? 어쨌든, 봄은 왔네!
“우리, 그냥 결혼할까?”
“윤달에 잡아버릴까?”
“우리 지금 이대로라면 결혼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부모님과 저녁식사를 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나에게 툭 던진 이 말들로 시작한 대화의 끝은 예상대로,
“난 지금 너와 너무 행복하고 자유로운데 왜 꼭 결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더군다나 결혼에 대한 압박도 없고 필수사항도 아닌 내 상황에서. 결혼을 하면 뭐가 더 행복해지는데?”
그래도 유익하고 즐거운 대화였다. 불안한 감정이 드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나를 돌아보자. 나는 확신이 있는데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난 왜 결혼을 하고 싶은 것일까? 난 왜 결혼을 하면 그로 인해 얻는 스트레스보다 내가 경험못한 것들을 통해 얻을 성숙함을 크게 기대하는 것일까?
내가 그녀에게 더 확실한 모습을 보여주면 될까? 내가 밀어붙여야 할까? 그녀의 성격을 알기에 어떻게 밀어붙이고 기다려야 하는지는 알고 있는데 결혼 이야기라면 판단이 흐려진다. 확실한 모습으로 쭉 밀어붙이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내 입장과 다른 그녀의 상황을 이해하지만, 난 이런 자유로운 생활이 나중에 가져올 허전함과 외로움을 느끼고 싶지 않은 것이다. 꼭 가족이나 아이를 통해 얻는 행복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주위에서 많이 봐 왔다. 그런 사람들이 나이 먹어서 얼마나 허전함을 느끼는지를.
너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해 주고 싶지 않고, 평생 네 편인 나를 믿고 행복하게 살게 해 주고 싶은건데… 그건 결혼만이 정답일까?
봄비일까?
촉촉촉 봄비가 추위를 가신다.
땅은 점점 따뜻해져
두터운 외투를 벗고
봄눈 움트는 소리.
봄비일까?
창가에 후두둑 빗소리가
근심을 가신다.
번뇌는 점점 작아져
맘속 짐을 벗고
봄길 걷는 발걸음.
–
전화통화를 끝내고 몇십분 뒤 나에게 이런 시를 보내왔다. 오랜만에 한결
가벼워진 마음인게 분명하다. 솔직히 깜짝 놀랐다. 몸은 떨어져 있지만 마치
옆에 있는 것 처럼 편하고 행복하다. 이 모든게 기적같고 고맙다.

아르헨티나 Cafayate에서의 행복했던 저녁식사. Sol 아저씨의 작품. 그 당시 요리하는 것을 직접 봤어야 했다! 나중에 아저씨가 쪽지로 레시피는 알려줬지만 어떻게 요리해야 할지 아직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연구해보자.
내 생애 최고의 닭요리였다.
한달전 혹은 두달전, 정확히는 모르겠다. 여느때처럼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우리. 남은 밥이 많지 않아 난 어제 퇴근길에 샀던 빵을 먹었다. 다 먹을때즈음, 그녀는 특유의 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이거 좀 남았는데 먹을래?”
그 표정이란 귀엽게 보이기도 하지만 자기도 조금은 민망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표정이다. 미역국에 말은 밥이 남았는데 건더기가 없다. 난 그녀가 그것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미소를 지으며 맛있게 먹었다. 난 건더기가 없어도 한번 국에 말은 밥은 잘 먹으니까.
아마도 난 평생 건더기를 채워줘야 할거고 아마도 그녀가 건더기 없는 국밥을 먹을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차이가 전혀 거슬리지 않게 되버린 지금의 우리 관계가 더 신기하다. 설레임은 사라지고 익숙함만 커져 가는 것이겠지.
서로를 행복하게 해 주는 편이 서로를 길들이는 것 보다 훨씬 멋진 일이니까
나 자신이란 도대체 무엇이냔 말이다.
이 여행의 끝은 어디길래 난 이렇게 힘들어하냔 말이다.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가면 모든게 끝이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의미 있는 것이 남아있지 않게 되겠지.
난 어디론가 사라지겠지.
나 자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채 끝나버리는.
이런 노래 듀엣으로 부르고 싶다
말을 나에게 했다. 함께여서 행복하고 아주 많이 좋아한다는 표현은 가끔
들었지만…
흔하디 흔한 저 말이 이렇게 감동적일 수도 있구나.
Alone in Kyoto => Together in Kyoto.
중고등학교때 만화, 애니메이션, 음악에 빠졌을 때를 제외하고는 관심밖이었던 일본. 그 당시에는 어려운 한자를 제외하고는 읽기까지 가능했지만 지금은 다 까먹었다.
“짧게라도 너와 일본여행을 가고 싶어.”
지난번에 못갔던 큐슈 온천여행이 아쉽기도 하고, 무엇보다 Osaka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지난 남미여행때 멕시코에서 만났던 친구도 볼 수 있고, 30-40분이면 Kyoto도 갈 수 있다.
꼭 이 영화와 Air의 음악때문은 아니다. 몇 년전 혼자 가보면 어떨까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럴필요가 없다. 같이 갈 사람이 있으니까…
Kyoto. 기대된다.
건축학 개론은 같이 보고
두개의 선은 혼자 봐야지!
을 일본가서 하고 싶었다면서 참을 수 없었는지 통화하다가 말해버린
그녀.
생각지도 못 했던 말.
난 믿을 수 없었고, 너무 놀랐고, 말이 안 나올정도로 행복했다.
흥분해서 벌써부터 이런 저런 계획을 상의하는 그녀.
내가 십수년 전부터 계획했던 그것들과 모두 똑같네? 정말 신기하다.
믿고 기다리면 되는 거였구나.
오늘은 기념일이다.
잠을 잘 수 있을까? 너무 기뻐서 방에서 혼자 만세를 부르며 소리쳤다.
우리 둘이 행복해야할 파티, 지금부터 시작이다!
For once in my life
내 인생 처음으로
I have someone who needs me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지
Someone I’ve needed so long
나또한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사람이죠
For once unafraid
내 인생 처음으로 아무것도 두렵지 않죠
I can go where life leads me
인생이 나를 이끄는 어떤 일도 할 수 있죠
And somehow I know I’ll be strong
그리고 내가 강해질 것이라는 걸 알고있죠…
For once I can touch
내 인생 처음으로
What my heart used to dream of Long before I knew
나도 모르게 나의 마음이 오랫동안 꿈꿔왔던 무언가를 가지게 되었죠
Someone warm like you Could make my dreams come true
나의 모든 희망을 이룰수 있게 만들어 줄 따뜻한 당신을요..
For once in my life I won’t let sorrow hurt me
내 인생 처음으로 나는 슬픔에 주저않지 않죠
Not like it’s hurt me before, oh
슬픔에 주저않았던 예전과는 다르죠
For once I’ve got someone I know won’t desert me
내 인생처음으로 나를 버리지 않을 누군가가 내겐 있죠
‘Cause I’m not alone anymore
나는 이제 더이상 혼자가 아닌걸요
For once I can say This is mine, you can’t take it
내 인생 처음으로 누구도 빼앗아 갈수없는 나만의 감정을 가졌죠
As long as I’ve got love I know I can make it
내가 사랑을 하는한 나는 무엇이든 할수 있죠
For once in my life
I’ve got someone who needs me
내 인생 처음으로 나를 원하는 누군가가 내겐 있죠
오늘 각자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빨리하는건 모두 찬성하시고 하우스웨딩 계획도 좋아하신다.
문제는 예단. 예물은 서로 반지만 하기로 했지만 문제는 의외로 복잡할 수
있는 예단.
서로 예단을 아예 생략할 계획인데 우리 부모님만 조금 꺼려하신다.
간소하게라도 해야 되는거 아니냐고… 어떻게든 설득을 해야한다ㅠㅠ
아무튼 집을 알아보고 날짜도 정해야 하고 식장 혹은 펜션도 알아봐야하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프로포즈. 뭐, 이렇게 결정난 상황에서 하는 프로포즈라… 그녀가 원했던게 이거였다. 준비도 안된상태에서 받는 프로포즈는 너무 이기적이라고(역시 이성적이야-.-;).
예물도 실용적인 반지만 하자는 것도 분명한 진심일텐데(그녀는 원하는 것을 숨기지 않으니까), 반지 말고도 기념으로 하나 더 준비할까? 쓸데없는데 돈 쓴다고 뭐라 하는 것은 아니겠지ㅋ
솔직히 궁금하지만 아직까지 물어보지 않았다. 왜 갑자기 결정했는지. 갑자기는 아니고 나와 함께할 미래를 그려보며 고민했다고 하는데, 분명 어떤 계기가 있었을테지? 뭐, 이유가 뭐가 중요해. 함께 하기로 한 지금 이 순간들을 즐겨야지.
“미안하다, 아들아. 14살 때 부터 일을 했고 잘 나갈때도 많았는데 최근 10년간 많이 어려워졌다. 아들한테 제대로 된 전세집 하나 구해줄 형편도 못되는구나.”
아니죠. 이 나이에 돈 한푼 모은거 없는 제가 부끄러운겁니다. 결국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빚을 져야 한다. 대출이란 것을 알아봐야 한다. 빚지고 시작하지 말자고했던 그녀는 많이 당황한 것 같다. 서울에서 대출 안받고 아파트 전세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알기는 할까. 그저 나와 취미생활하고 여행갈 돈을 이자로 내야한다고 실망한다.
지금 모든 준비를 내가 하고 있는데 그녀는 우리집 상황은 안중에도 없다. 따뜻함과 정을 포기한지 오래라 나도 예전처럼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당연하겠지만 이래저래 준비할게 참 많다. 어서 조촐하고 재밌는 파티를 하고 스페인으로 날아가고 싶다!
수 많은 인파 그리고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상업화된 관광지였던 교토에 실망하긴 했지만 나머지는 매우 만족스러웠던 2박3일 오사카 여행.
피아노 치면서 내가 만든 노래를 부르거나 특별한 이벤트로는 절대로 그녀를 깜짝 놀라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프로포즈는 바로 이 것.
장소는 ‘철학의 길’ 같은 교토의 한적하고 운치있는 곳으로 생각했으나 사람들에 치이고 하필이면 비온 뒤 추운 날씨에 정신없었다. 하루 일정의 교토 산책이 마무리 될 즈음부터 난 살짝 짜증이 나고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아무튼 오사카 시내로 돌아와서 유명한 튀김집에 갔으나 줄이 너무 길어 포기하고 주위를 거닐다 조그만 꼬치집에 들어갔다. 밤 10시에 내 일본친구 '카즈'를 만나기로 되어있었기에 시원한 아사히 생맥주, 사케와 꼬치를 먹으며 저녁을 해결했다. 이제 카즈를 만나기로 한 우리 숙소로 돌아가는 길.

도톤보리 강을 끼고 걸었다. 강에는 보트를 타고 소리치면서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일본 젊은 친구들이 지나간다. 나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살짝 취기가 오른 그녀는 그들에게 몸을 흔들며 인사한다. 난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 분위기, 굉장히 익숙해. 영화에서 본 장면같기도 하고 말야. 난 발목이 아프다고 말하고 잠시 쉬어가자고 했다. 그리고 난 섹스 앤더 시티의 장면과 똑같이 신발끈을 묶는 자세로 그녀에게 잠깐 가방을 들어달라고 했다. 그녀의 손에는 반지케이스가 놓여졌다.
전혀 생각지 못한 이 상황에 그녀는 아주 놀랍고 행복한 표정으로 감탄한다. “이 말을 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네. 사랑해. 항상 네 편이 되어줄게. 이제 나와 결혼해 줄래?”. 반지를 손가락에 끼워주자 또 한번 놀란다. “도대체 어떻게 내 사이즈를 알아낸거야? 딱 맞잖아!”. “그래서, 결혼해 주는거지?”. “잠시만 기다려봐.” 하면서 계속 웃는다. “일어나도 되. 무릎꿇는 자세는 공평하지 않은것 같아.” 난 일어나고 우린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응. 결혼할거야.”. “그래, 우리 좋은 날이 많이 생길수 있게 잘 살자.”
“내가 꿈꿔왔던 프로포즈의 100% 이상이야. 강이 흐르는 장소, 분위기, 타이밍, 반지 그리고 너의 말 모두가!”. 이 보다 더 성공적인 청혼이 있을까?
그 날 밤은 행복했다. 멕시코 남부 일본인 숙소에서 만난 내 친구 카즈와 우리는 그의 제일교포 친구 가게에 가서 신나게 마시고 이야기했다. 자기 가슴의 반은 한국인이라는, 그들의 강한 심장을 갖고 있다는 카즈, 일본에서 힘겹게 교포로 살면서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광이씨. 기념 사진 한장 찍을 생각 못할 정도로 재밌는 얘기와 우정을 느낄 수 있는 밤이었다.
흔히들 하는 프로포즈이벤트 상품 혹은 형식, 다이아반지? 이런데 전혀 감동과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우리이기에 더 완벽했던 여행과 프로포즈의 조합! 내가 자랑스럽다!
홍대입구 근처 옥탑방에 사는 그녀의 1년선배와 남친. 우리 넷은 막걸리를 마시고 아는 사람이 오늘 가오픈한 가게에 가서 와인을 마신다. 그 형은 홍대 토박이라 오는 손님마다 다 아는 사람들이다. 홍대가 좋은 이유는 바로 이 것. 4명이 시작한 자리는 어느덧 8명이 넘어간다. 우리의 결혼을 축하하는 사람들.
그녀의 선배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네, 네가 왜 결혼하는지 알 것 같아.” 라는 얘기를 그녀에게 한다. 나 조차도 감당하기 힘든 영혼을 가진 그 누나에게 이런 극찬을 다음날까지 계속 들었다. 난 어느순간부터 무한의 자유로움보다는 유연함을 택했는데, 그 유연함이 매너리즘에 빠질 정도는 아니었나보다. 아무튼 기쁘다. 나를 더 사랑할 수 있으니까.
다음 날 비오는 일요일 오후,
“작년 내 생일때, 귀금속 상가에서 귀걸이 샀잖아. 너가 돈 뽑는다고
은행갔을때, 그 아주머니가 그랬거든. 남자는 착한게 최고라고.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그러면서 너 보고 착하게 생겼다고 했잖아. 생각해보니 난 그때
그 말의 영향이 지금까지 작용한 것 같아.”
우디 알렌이 그랬던가. 행복이 아니라 ‘불안'이 인간의 본능에 더 가깝다고. 산다는 것은 그 불안을 하나씩 해소해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http://www.india.co.kr/mediterranean/tour/11_morocco.html

신혼여행은 모로코로 추진. 기간이 조금 짧은게 아쉽지만…, 그렇다고 배낭여행으로 모로코를 가기엔 준비할 것도 많고 힘든 여정이 예상된다. 원래 계획이었던 스페인, 포르투갈은 언제든 갈 수 있으니 모로코에만 올인하자!
자유여행까지도 역시 나에겐 어울리지 않는가보다. 우린 여행상품을 취소하고 배낭여행으로 가기로 했다. 많은 준비를 해야하고 가서 고생할 것 같지만, 봉고버스같은 여행자차량으로 이동하는건 너무 재미없다. 정해진 호텔이나 숙소도 믿을 수 없다. 어려워도 우리가 만들어봐야겠지.
모로코 신혼여행이라, 그것도 배낭여행으로…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은 바로 너와 함께하기로 결정한 것
경기동부연합이니 인천연합이니 주사파들이 다 망쳐놓고 욕은 진보전체가 먹는 비극적인 광경. ‘진보'라는 정당이름 낼름 가져다놓고 이게 뭔 짓거리냐. 이정희가 꼭두가시든 실세든 관심없다. 처음부터 주사파 꼽사리 인생인줄 알았으니까. 노심조에 대한 개인적인 지지는 계속 유지하려했는데 이쯤되면 그들이 민주당 가도 하나도 놀랄 풍경이 아니라는 생각. 십수년전 역겨웠던 학생회 사람들을 생각해보니 이 비극이 낯설지는 않구나. 이게 민주주의냐. 이게 사는건가.
“너가 준비할게 뭐있어?”. 이게 아직까지 내 주위 사람들의 모습이다.
이제 결혼반지와 신혼여행 계획만 남은 것 같다. 노래 연습도 해야 하는구나…;
혼인 서약서를 써야한다. 각자 세가지를 약속하기로 했다. 현실적인 내용과 조금은 낭만적인 내용이 적절히 섞여야 하는데… 억지로 쓰기보다 천천히 하나씩 써보자.
일단 몸부터 추스리자. 거의 쓰러지기 일보직전이다. 결혼준비때문이라기 보다 몇 달 전부터 쌓여온 피곤이랄까.
If we live our lives the right way, then every single thing we do becomes a work of art.
서로 따지는거 없고 소탈한 두 집안. 이렇게 편안하고 재밌게 끝낸 상견례라니. 소주도 3병이나 마신 부모님들. 시흥 물왕저수지 쌀밥집이라는 어쩌면 조금은 색다른 장소. 모든게 수월하게 진행되니 참 마음이 편하다.
서울-대청호펜션-익산-군산-새만금-변산반도-전주-서울
20대 중후반부터 내 삶과 함께해 온 하우스가 끝났다. 기분이 묘하다. 슬프기도 하고 눈물이 찔끔나기도 하고. 이렇게 시간이 흘렀구나 생각하니 멍하기도 하고.
나에겐 “윌슨” 같은 친구가 있을까?
Enjoy yourself, it’s later than you think
Enjoy yourself, while you’re still in the pink
The years go by, as quickly as a wink
Enjoy yourself, enjoy yourself, it’s later than you think
You’re gonna take that ocean trip, no matter, come what may
You’ve got your reservations made, but you just can’t get away
Next year for sure, you’ll see the world, you’ll really get around
But how far can you travel when you’re six feet underground?
가장 힘들고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을때 떠났던 남미여행처럼, 지금의 나도
최대한 빨리 결정을 내리고 모험을 해야할까?
회사생활을 끝내고싶다. 그런데 무엇을 해야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이 나지 않는 것도 처음.
결혼생활을 유지하기위한 나의 무의식일까? 나름 안정된 직장을 버리지
말라는?
대학졸업장이란건 이래서 필요한 거구나. 모험을 하려고해도 범위가 달라지니
말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사귄지 한 달 만에 시작한 동거생활. 정말 사랑하고 깊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과 동거를 해야 한다. 한 사람과 한 집에서 살다 보면 사소한 감정 다툼이 반드시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도 동거는 상대방의 진짜 모습과 내면을 알 수 있다. 혼전 동거든 결혼과 상관없는 동거든 난 모든 연인에게 강력히 추천하는 바! 어쩌면 난 서른을 훨씬 넘은 나이여서(정확히 말하면 서른 중반이 되면서 여유로움과 너그러움이 생기면서) 그런지 모든 것을 더 슬기롭게 대처했는지 모르겠다.
우린 동네에서 외식 한 번 안했다. 라면 한 번 끊여 먹은 적이 없다. 아침을 못 먹은게 한 두번이었던가? 아침, 저녁을 항상 요리해서 먹었는데 내가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떠나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좀 서운하기도 해, 여기서 정말 편했어.”
내가 살아보지 못한 환경에서 8개월동안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짐 싸고 떠나는 그 순간까지 웃지못할 풍경이 벌어졌다. 결혼 준비보다 나를 더 힘들게 했던 방 빼기 대작전. 이제 속이 후련하다.
품절남까지 2주 남았다.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자유생활을 즐겨보자!
무일푼 신혼부부. 더군다나 우리 집도 거의 돈이 없는 상황. 하지만 당장 서울을 벗어나 살기는 힘들어 빚을 지고 큰 부담을 안은 채 작은 아파트 세입자는 됐다만, 살림은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장모님이 큼지막한 생활가전은 이미 다 사주셨고, 신부는 인터넷으로 싼 물건을 워낙 잘 고르기에 하나씩 마련하고 있다. 이제 이번 주말에 하나씩 짐을 풀어놓다보면 필요한 것들이 무수히 쏟아질 것이다. 집 인테리어라고 부르지 않아도 사람이 살면서 필요한 것은 욕심이나 취향에 따라 얼마나 많아질 수 있을까?
공간활용 : 집이 좁으니까 최소한의 가구만 놓고 가능한 빈 공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2인용 아일랜드 식탁이면 충분하고 쇼파도 2인용이면서 뒤로 젖힐 수 있는 실용적인 것으로. 옷장 대신 커튼이 있는 행거로. 먼 훗날 여유가 생기면 이탈리아 가구 같은 진정한 공간활용 제품을 사고 싶기는 하다!
문화생활 : 오디오는 한쪽 고음처리가 잘 안되는 스피커에 오래된 앰프, CD플레이어등 내 방에 있는 것을 그대로 가져가야겠다. 새로 사기에는 너무 부담이 되기 때문에. 집에 TV가 없는 대신 저가 프로젝터를 하나 샀다. 영화를 보거나 가끔 보고싶은 TV프로그램을 보는 용도로.
가구 : 중고가구매장에서 구입하기로. 혹은 내 카드 포인트와 회사 복지카드 남은 것을 최대한 활용해 본다.
사치스럽지 않고 알뜰한 그녀라 더 맘에든다. 결혼준비로 다툰적도 없지만, 집 꾸미기로 다툴 일도 없으니까.
결혼식이 끝나고 우리는 축령산 근처 펜션에서 와인과 맥주, 소주를 마시며 자축을 했다. 그리고 일요일 밤은 우리도 모르는사이 잠이 들어버렸다. 월요일 아침, 이제 아내가 된 그녀를 보내고 혼자 집에서 출근 준비를 하려니 무언가 한여름밤의 꿈을 꾼듯한 기분이다.
마치 대학교 시절 공연이 끝난 후 느끼는 기분이랄까. 직접 준비하고 기획해서 그런 것일까? 더 이상 바랄 것 없이 만족한 결혼식이면서도 약간의 허무함과 아쉬움이 느껴진다. 조금 더 여유롭고 긴 시간을 함께하는 잔치가 못된 것 같은 아쉬움이 제일 크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호불호가 갈렸지만 의미있는 시도였던 청미래의 유기농 음식,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몰랐던 친환경 결혼식의 모습등… 몇명의 사람들일지라도 결혼식을 보고 느끼는게 있다고 하니 더 기쁘다.
누구나 마음 먹으면 할 수 있지만 시도를 하지 않기에 누구나 하지 못 하는 준비과정과 결혼식이었다. 차에서 내려 식장을 향해 공원을 걸으며 신나했던 아내의 모습이 떠오른다. “결혼식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재밌고 행복했어. 내가 생각한 그 이상으로 만족해!”
“부부가 자주쓰는 말, 여보(如寶)라는 말은 보배와 같다라는 말이고, 당신(堂身)은 내몸과 같다라는 말입니다.”
결혼을 하면 꼭 여보, 당신을 해야겠다고 어렸을때부터 생각했다는 아내. 난 여보, 당신이 싫었는데 말뜻을 알고보니 조금 친근해졌다.
어느덧 우리는 여보, 당신 하고 지내고 있다. 힘들고 짜증나는 날 보다 좋은 날이 더 많도록 노력할게.
결혼 후 일기를 쓰기가 힘들구나. 오히려, 이 생활이 익숙해져 모든게 무뎌져가면 일기를 쓰게될까?^^
머리가 죽어간다.
- 방금 전 경험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이 자주 생긴다. 내가 알고 있었던,
지금까지 축적했던 정보들을 꺼내기가 너무 어렵다. 1년 사이에 더
심해졌다.
가끔 화가 나서 미칠 것 같다.
-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자기 전까지 나만의 시간이 얼마나 될까. 책 읽는
것도 부담된다. 그렇다고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재미없는 서른
중반의 회사원이다.
힘이 없고 의욕이 없다.
몸과 마음 둘 다 텅 비어버린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은 모든 것에 쉽게 싫증을
느끼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잠시 지친 것인가.
난 지금 부조리한 권고사직에 맞서 싸워야하고, 아내를 행복하게 해야하고, 서울 여행을 온 일본친구를 2박 재워주면서 같이 지내야하지만 이 사이에 아버지가 컴퓨터 고장났다면서 걸어 온 전화도 친절히 받아야 한다.
난 일어날 수 있다.
난 이 부조리하고 썩어빠진 회사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난 증오를 희망과 실천의 땀으로 씻어 낼 수 있다.
난 지금보더 더 강해질 것이다.
난 나의 아내와 가족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난 이번 경험을 통해 세상을 조금 더 알게 되겠지만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는 순수함을 버리지는 않겠다. 그것이 이 사회에서 나를 바닥으로 몰 지라도.
나를 도와준 사람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우연의 장난.
나의 승리로 끝이 나려 한다.
하지만,
그 인간의 비참한 최후를 반드시 봐야겠다.
그 인간으로 인해 피해보고 상처받는 사람들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도록.
내 생애 처음으로 한 사람에 대한 증오심을 가지게 됐다.
90년대는 뭔가 애뜻함이 덜 묻어난다. 아직까진 80년대가;;
The Sopranos Final Scene (via njean666)
시즌6을 정주행 해서 결국 소프라노스 엔딩을 봤다. DVD 풀세트를 사고 1년을 넘게 봤던 것 같다. 그만큼 중간에 지루한 시즌도 있었지만, 각 에피소드 엔딩 송들은 Soundtrack을 사야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만족스러웠고 시리즈 엔딩 씬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어쩌면 The End Of Evangelion 보다 더 충격적이면서 깊은 여운을 남겨 주었다.
Journey의 Don’t Stop Believin'을 듣는다면 앞으로는 소프라노스 엔딩만 생각나겠지.
David Chase, 대단한 작품의 대담하면서 연출력의 정점을 보여준 엔딩을 보여줘서 너무 감사해요.
人間が変わる方法は3つしかない。1番目は、時間配分を変える。2番目は、住む場所を変える。3番目は、付き合う人を変える。この3つの要素でしか人間は変わらない。もっとも無意味なのは、『決意を新たにする』ことだ。
NIGHT RANGER - GOODBYE (via aldini250)
보통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Yahoo! Music Radio iPhone App을 실행한다.
이제 오래 된 오디오는 먼지만 쌓여가고, 미국에서 많이 쓰는 알람과 함께 있는 라디오도 사용 안 한지 오래다.
어쨌든, 오늘 나온 노래는 Night Ranger의 ‘Goodbye’.
1980s 팝송들은 나를 너무 추억에 빠져들게 해서 가끔은 우울하게 만들지도 하지만, 오늘처럼 기분을 너무 좋게 만들어 자신감이 생기기도 한다.
I Love 1980s !!!
당장은 힘들겠지?
일단, 이 나라에선 더 이상 못살거나, 살 수 없게 될 것이다.
3년 뒤에도 국민들이 멍청하다는게 밝혀진다면,
그 때는 진짜 떠날 생각이다.
Journey - Don’t Stop Believing (Live) (via TheVeryEvilEye)
자꾸 소프라노스 엔딩이 생각나서, 이 노래를 듣고 있다.
Just a small town girl
Livin’ in a lonely world
She took the midnight train goin’ anywhere
Just a city boy
Born and raised in south Detroit
He took the midnight train goin’ anywhere
A singer in a smoky room
A smell of wine and cheap perfume
For a smile they can share the night
It goes on and on and on and on
Strangers waiting
Up and down the boulevard
Their shadows searching in the night
Streetlight people
Living just to find emotion
Hiding somewhere in the night
Working hard to get my fill
Everybody wants a thrill
Payin’ anything to roll the dice just one more time
Some will win, some will lose
Some were born to sing the blues
Oh, the movie never ends
It goes on and on and on and on
Strangers waiting
Up and down the boulevard
Their shadows searching in the night
Streetlight people
Living just to find emotion
Hiding somewhere in the night
Don’t stop believin’
Hold on to that feelin’
Streetlight people
Don’t stop believin’
Hold on
Streetlight people
Don’t stop believin’
Hold on to that feelin’
Streetlight people
엔딩 씬에 나온 식당의 모습과 가족들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노래다.
(뭐랄까.. 불안하지만 결국엔 Life Goes On… 비슷한 느낌)
역시, 요즘 노래들보단 예전 노래들이 사람의 감성을 훨씬 더 자극한다.
그것도 기계적인 디지털이 아닌, 풍부하고 인간적인 아날로그로.
itunes 역사상 가장 많이 다운로드 된 노래(200만 이상),
소프라노스 엔딩에 나온 이후 다시 한 번 미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되었다.
10년 만에 ‘소매물도'를 버릴 수 있게 해 준 '굴업도’. 꼭 이 섬이어서이랴, 많은 섬들이 있고 그것들이 가진 독특한 매력이 있겠지. 하지만 내 짧은 경험에선 굴업도는 당분간 잊기 힘든 곳으로 기억되리라.
지금 내 옆에 있는 당신이, 내가 알고 지내던 그 사람 맞지?
너무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그리고 신기하다. 우리가 같이 있다는게. 같이 산다는게. 같은 침대를 쓴다는 것이.
I FEEL THE ECHO :: HBO의 새 시리즈 " Treme"

아이폰 유저가 되면서 첫 번째로 쓸모 없어진 물건. 보이스 레코더.
가끔 술마시고 집에 걸어가면서 혼잣말을 녹음하곤 했었는데..
미안하다. 그래도 팔거나 버리지는 않을거야.
우리가 한 공간에서 아침과 밤을 함께한지 1년이 되었네요.
지금 당신은 침대에서 자고 있고 나는 ‘에피톤 프로젝트’ 음악을 들으며
남미를 그리워하고 있네요.
아르헨티나로, 콜롬비아로, 칠레로… 어디든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You know what I find interesting? If you lose a spouse, you’re called a widow, or a widower. If you’re a child and you lose your parents, then you’re an orphan. But what’s the word to describe a parent who loses a child? I guess that’s just too fucking awful to even have a name.

북촌 데이트
Moonlighting Ending Theme (Full TV ver.) (via 85S03)
난 아무리 노력해도 70-80년대 음악, 영화, 기타 문화,예술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학창시절 나의 추억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믿는 것 처럼 마지막 아날로그 시대가 끝나면서 더 이상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예술이 없기 때문일까?
나도 인터넷 사업을 하려고 하고, 구글 및 오픈소스, 소셜서비스를 신봉하고, mp3로 음악을 듣고, 맥북으로 영화를 보고, 아이폰을 사용하지만.
가장 행복 할 때는 턴테이블로 LP를 듣고, 편지를 쓰고, 오래된 비디오테이프의 먼지를 닦고, 절판된 음악,영화 잡지들을 바라 볼 때다.
내가 이상한 걸까?
약 3년 전, 그 당시 만나던 여자친구와 집 앞에서 식사 겸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난 우리 집안에서 있었던, 큰 상처와 아픔이었고
아마도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그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런데 그는 나의 아픔을 느끼고 이해하고 위로해 주는 대신,
이런 얘기까지 할 정도로 자기를 믿고 좋아한다는 생각에
행복해 하고 있었다.
Mass Effect 2 Cast Video (via BluesNewsDotCom)
XBOX를 사고 해 본 게임 중 Fallout3와 함께 탄성을 질렀던 게임.
RPG 요소가 대부분 사라졌다고 하던데 왜 그랬을까?
3개월 이상 게임을 하지 않고 살았는데 다시 XBOX를 연결하게 만든 게임.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해간다.
내가 IT 업계에 있지 않았다면 몰랐을 소식까지 모두 접하는 정보의 홍수.
아이폰, 트위터, 소셜, 애플, 구글… 이런거 잘 몰라도 잘 사는 내 친구들이 부러운 것일까?
요즘엔 1년이 아니라 거의 일주일 단위로 트렌드가 변하고 새로운 기술이 나온다.
가끔은.. 토할 것 같다.
매일 보지 않으면 불안한 구글리더, 트위터. 이미 나도 중독이 되어 버린 것이다.
평생 이 정글 속에서 긴장하면서 불안하게 살고 싶은 거니?
아니면 언젠가 빠져나와 자연에 몸을 맡겨 사는 그 날을 기다리는 거니?
Fiona Apple - Why Try To Change Me Now? (Live) (via Lanark98)
I’m sentimental
So I walk in the rain
I’ve got some habits
That I can’t explain
Could start for the corner
Turn up in Spain
Why try to change me now
I sit and daydream
I’ve got daydreams galore
Cigarette ashes
There they go on the floor
I go away weekends
And leave my keys in the door
But why try to change me now
Why can’t I be more conventional
People talk
People stare
So I try
But that’s not for me
Cuz I can’t see
My kind of crazy world
Go passing me by
So let people wonder
Let ‘em laugh
Let 'em frown
You know I’ll love you
Till the moon’s upside down
Don’t you remember
I was always your clown
Why try to change me now
Don’t you remember
I was always your clown
Why try to change me
Why try to change me now
islands in the stream (via JONESY07)
YouTube에 있는 이 동영상의 댓글들만 봐도 알 수 있다.
Country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듀엣곡.
요즘 시대에 이렇게 가슴 따뜻한 퍼포먼스를 볼 수 있을까?
Kenny, Dolly 둘 다 가수가 아니라 대단한 뮤지션들 이었다.

Dolly is so cool !!!
I love dolly’s laugh !!!
TV Drama 역사상 길이 남을 결말이다.
영국 드라마는 몇 번 봤으나 잘 안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Life On Mars는 내가 좋아하는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던 드라마였다.
소프라노스 결말이 황당하면서 충격적이고 불친절 했다면,
라온마는 환상적인 열린 결말이었다.
이렇게 기분을 좋게 만들면서 여운을 오래 동안 남길 수 있다니…
HBO: Six Feet Under: Claire Fisher's Artwork
Glee Imagine (video) (via TSer11T)
올드팝, 뮤지컬 음악을 재편곡해서 보여주는 것 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드라마.
시나리오와 연출은 맘에 안 들지만, 그냥 가볍게 즐기면 된다.
문화, 예술은 시간이 흐를수록 쌓여가고 영원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대중문화는 5년도 안되는 주기로 잘려져 있다.
…
생각해보니 나도 10년 전에 Imagine을 편곡해서 공연 했었지…
그때는 시간이 흘러가는건 생각도 못했고, 지금처럼 멍청하고 답답한 인생을 살게 될지 전혀 몰랐다.
난 실패한 마이너리거..
2008년 말 부터 지금까지 행복했던 날이 없다.
끝이 안 보이는 터널을 지나고 있다.
회사를 그만 둔지 4개월이 넘었다.
난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면, 난 뛰어난 머리나 직관을 가진 것도 아니고
학력과 경력은 동종업계 최하 수준이고
인맥도 없다.
그리고 돈도 없다.
그런데도 내가 뭔가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아니, 만들 수 있는 그릇이라도 가진 것일까.


친구가 LP 몇 장을 줘서, 오랜만에 LP를 살짝 정리해 봤다.
아직 더 많은 영화를 봐야 하지만, Nashville, High Fidelity 등과 함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음악 영화 Almost Famous
Cameron Crowe의 자선적 이야기인 이 영화는
70년대 락 음악에 대한 시대적인 평가에 따라 비판받을 점도 있을 수 있으나,
나에겐 학창 시절의 꿈을 생각하게 하는 감동의 영화였다.
난, 80년대 청춘로맨스 영화를 만들 때 부터 카메론 크로우를 너무 좋아한다:)
평생 간직할 이 LP는 Amazon에서 구입했으며, Limited Edition 이다^^
Pranav Mistry: SixthSense 기술의 놀라운 잠재력 | Video on TED.com
damages opening credits (via reyndani)
한 번 보면 미칠듯이 빠져드는 드라마.
시나리오, 연출, 배우, 배역, 편집 등 모두 맘에 든다.
오프닝의 음악과 편집은 이 드라마의 긴장감과 차가움을 잘 표현해 주었다.



요즘 내 모습과 다를게 없다.
The Big Lebowski.
나에겐 위로와 걱정도 사치다.
Facebook | 이 영상"Fallout: New Vegas Teaser Trailer [HD]"은 Fallout님에 의해 게시되었습니다.
머리 속이 너무 복잡하다.
정리가 안 된다.
이럴 때 억지로 뭔가를 하려는게 안 좋은 것을 알지만,
조급한 마음 때문에 자꾸 해결해 보려고 한다.
미칠 것 같다.
괴로운 월요일이 지나면 어느새 금요일, 그리고 주말.
그렇게 빨리 지나가기에 기억에 남는건 거의 없고 모든게 흐릿하기만
하다.
서른 다섯이라니…이게 뭐야.
어제 술 마시다가 갑자기 가고 싶어서 홍대 올드락을 갔는데
언제 변해버린거지?
단골은 아니었지만 음악듣고 술마시고 막춤도 출 수 있는 곳이었는데.
예전 올드락 같은 클럽을 다시 찾아야 하는군.
나에게 홍대는 90년대 말 까지다.
앞으로도 자주 갈 일은 없을 듯…


Nate Fisher 를 보면 자꾸 감정 이입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Peter Krause 가 보여주는 표정 때문에? (난 그의 연기를 무척 좋아한다)
아니면 그가 처한 상황과 고민들에 공감을 해서?
그가 웃으면 나도 행복하고 그가 울면 나도 눈물이 난다.
Gunbuster ova6 end scene (via gavrila81)
영원히 들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음악과 엔딩씬.
20년도 넘은 작품이지만, 아직도 화자되고 있는 애니메이션.
특히 OVA 6화는 모두 흑백으로 처리하는 실험성,
그리고 12,000년 이라는 시간 만큼이나 깊은 감동을 주는 엔딩까지..
결국 난 아직까지 GAINAX, 안노히데아키의 팬이다.
이유를 모르겠다. 이 곳은 나의 작은 일기장이었지만 최근 몇 달간 끄적거린 글도 거의 없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산더미지만 써지지 않는다. 몸과 마음이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지쳐있는 것 같다.
배낭여행 시절에는 그 바쁜 일과속에서도 꼬박꼬박 일기를 썼고, 쉴틈없이 문장이 만들어졌었다. 지금은 한 문장도 쓰기 힘들다. 정리도 안되고 표현도 안된다.
한 달 동안 혼자 지낸다. 일단 몸을 편하게 하기 위해 부모님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마음의 휴식을 위해서는 못 만났던 사람들을 만나고 혼자 짧은 여행을 다녀오고자 한다.
내년은 나의 40대를 위한 준비가 실행되는 해가 될 것이다.
Death Cab for Cutie - Transatlanticism (Live on Soundstage) (via Traumweltleben)
The Atlantic was born today and I’ll tell you how…
The clouds above opened up and let it out.
I was standing on the surface of a perforated sphere
When the water filled every hole.
And thousands upon thousands made an ocean,
Making islands where no island should go.
Oh no.
Those people were overjoyed; they took to their boats.
I thought it less like a lake and more like a moat.
The rhythm of my footsteps crossing flatlands to your door have been silenced forever more.
The distance is quite simply much too far for me to row
It seems farther than ever before
Oh no.
I need you so much closer
I need you so much closer
So come on, come on
5일 동안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있었더니
모든게 두렵다.
그리고,
고통스럽다.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다.
빨리 나아졌으면 좋겠다. 빨리…
1. 도톤보리 강변에서의 프로포즈
2. 따뜻한 6월의 야외 결혼식
3. 별이 쏟아졌던 사하라의 밤하늘
4. 내 생일 미역국
5. 부부싸움
Youtube로 들어도 사운드가 죽인다.
13년 전, 이태원 올댓재즈에서 재즈 공연 전에 봤던 뮤직비디오.
Sade는 중학교 때 부터 좋아했던 밴드다.
이미 늦었지만 더 늦기전에 꼭 보고 싶은 뮤지션.
사람들이 우리를 망각하기 전에 우리는 키취로 바뀐다. <br/> 키취는 존재와 망각 간에 갈아타는 정거장이다.
아내 없이 지내는 요즘, 갑자기 여행이 그리워지고 있다. 회사 생활 자체에 대한 회의감도 한 몫 하고있다.
두 개의 배낭을 메고 세상 끝까지 갔었던 지난 중남미 여행. 그곳의 향기가 너무 그립다. 아직도 연락하고 지내는 여행친구들이 있지만 내 곁을 스쳐 지나간 수 많은 친구들의 얼굴도 그립다.
다른 세계 그 자체인 쿠바.
혁명의 고장 멕시코 치아빠스.
아름다운 호수마을 과테말라 아띠뜰란.
꼭 다시 오라고 했던 콜롬비아 친구들.
진짜 Eco를 배웠던 에콰도르 Black Sheep Inn.
세상 모든 히피들과 함께했던 페루 리마.
국경으로 가는 밤기차 볼리비아.
해산물의 천국 칠레.
지금도 고향처럼 그리운, 여행의 결정체 아르헨티나.
Six Feet Under Last Episode (via mboy16)
실제 방영 기간이었던 2001년 부터 2005년 까지 봤다면,
분명히 감동과 여운이 몇 배는 더 했을 것이다.
‘네이트'를 보면서 같이 눈물 흘린적이 몇 번 이던가.
그리고 그가 했던 고민들과 좌절들, 이상의 한계.
대부분 아주 깊이 공감하면서 나 또한 울고 웃었다.
'클레어'를 보면서 20년 전 포기한 나의 꿈과 펼쳐보지도 못한 재능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가족의 죽음이 그 후 남은 사람들의 생활을 어떻게 바꿔놓는지 너무도 잘 알기에,
괴로움을 참지 못해 중간에 그만 보려고도 했었다.
지금은 곁에 없는 내 동생이 보고 싶어서 밤에 울기도 했으며,
한심한 인생을 살고 있는 나를 사랑해주시는 어머니를 보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프기도 했다.
63개의 에피소드에 표현된 메타포들, 가족의 의미,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
그리고 예술가가 되고 싶은 갈망의 간접적인 만족 등등..
아마도 내 인생을 바꿔 놓을 드라마가 될 것이다.
목소리를 잃어버린 영화평론가 로저이버트이야기 « 에스티마의 인터넷이야기
I FEEL THE ECHO :: 'The Wire'에서 가장 빛났던 장면15
뮤지컬영화, 음악을 주제로 한 영화등이 아니라면
감독의 성향에 따라 스크린에서 쓰이는 음악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음악을 거의 안쓰는 감독이 있는가 하면, 마치 뮤직비디오나 CF를 보는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많이 쓰는 감독도 있다.
The Wire는 오프닝과 엔딩 크레딧에서만 노래와 배경음악이 나온다.
당연하다. 드라마를 보면 알게 된다. 왜 그렇게 했는지…
추가로 시즌 피날레 때는 항상 인상 깊은 노래와 함께 깊은 여운을 주는
영상을 보여주는데 마치 아주 긴 장편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City of God 의 리얼리티뿐 아니라 사운드트랙을 매우 좋아하는데,
The Wire 는 스크린에서 음악과 노래를 꼭 필요한 부분에만 사용했을 때 나오는
효과의 극대치를 보여준 것 같다.
The Wire 를 보는 내내 귀가 즐거웠던 이유는 음악 뿐만이 아니었다.
내 귀가 이상할 수도 있지만, 내가 느끼기에 The Wire 의 음향은 굉장히 선명했다.
배경음악이 없어서 더 집중된 부분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마치 극장에서 보는 것 처럼
선명하고 섬세한 음향을 느꼈다.
특히 배우들의 목소리와 성량은 압권이다.
거의 모든 배우들은 캐릭터에 맞는 톤과 성량 그리고 말투를 가지고 있는데,
조금만 볼륨을 키워서 들으면 매우 걸죽(?)하게 들리기 때문에 귀가 즐겁다.
이제 David Simon등 The Wire 제작진이 선물할 Treme 기다린다.
** Spoilers **
THE WIRE - Greatest Quotes
** Spoilers **
THE WIRE - Other Greatest Quotes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바닥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밑이 보인다.
만약, 올 한 해 동안 내가 웃지 못한다면
난 모두를 배반하고 떠날 수 밖에 없다.
요즘 들어 유난히
스무살 때 내가 선택했던 길에 대해서 한 없이 후회하고 있다.
20대 대부분의 생활은 지금 나에게 사람 한 두명만 남겨주었다.
그 사람들도 점점 멀어지고 있지만…
New Kids on the Block- Time is on our side (via prettylanna)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좋아했던 아이돌 그룹은 New Kids On The Block
그리고 Take That 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교 시절 내내
나는 New Kids 의 모든 앨범을 다 듣고
거의 모든 비디오를 보면서 춤을 따라 췄다.
내가 가질 수 없었던 터프함을 가진 도니 윌버그를 가장 좋아했다.
그리고 이 노래를 가장 좋아했다.
* 참고로 New Kids 의 새 앨범 보다는 Take That 의 최근 앨범이 훨씬 좋다.
13년이 지났지만 내 친구 ‘이퐁'과 나누는 대화는 아직도 설레이고 흥미롭다.
물론 13년 전 1997년 가을, 아무 얘기도 하지 말고 그냥 같이 떠나자고 해서 갔던
동해바다처럼 맑고 깨끗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사실 그 부분에선 내가 변한게 많아서 그렇다.
대학동아리시절, 중퇴, 군대, 음향회사, SI회사, 게임회사를 거치면서
나는 계속 변하고 있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세상을 바라보고 걱정하고 활동하는 모든 모습이 변했다.
'이퐁'은 그대로인데 내가 변해서 오히려 최근 몇 년간 전화하거나 만나기 거북했던 것 같다.
변하지 않은건 내가 '이퐁'보다 더 감성적이고 눈물이 많다는 것 뿐…
그리고 나의 평생의 친구라는 것.
하지만,
난 새로운 친구도 필요하다.
…
용기를 내자.
기억나는대로 정리 해 보면,















(생각날 때 마다 채워 나가야지~)
물론… 아무리 이래도 난 대화가 통하는 우리나라 여자가 제일 좋다~~
* 남미여행 다녀와서 글 수정한다ㅋㅋ 눈이 변했어. 콜롬비아, 칠레 여자들이 젤 좋아!ㅋㅋ
게임회사 다니면서 드디어(?), 처음으로 게임팀에 속하게 됐지만, 마음을 둘 곳이 없다. 지금 이 일을, 이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 때가 맞다. 확신한다.
인생의 절반을 향해 가고 있는 지금, 더 이상 초조해하기 전에 계획을 하고 준비를 하자. 바로 실천할 수 있도록.

우리는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난 퇴근 이후 프리랜서 일을 하기로 했다. 당분간은 주말도 없이 일만 하며
돈을 좀 모으자.
그런데 옷장 용도로만 쓰던 작은 방을 정리해서 책상을 쓰게되니, 마치
어렸을때 내 방이 생겼던 그 순간처럼 기분이 설레고 좋네.
난 내가 원하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
지금은 기술이 형편 없어서 조바심도 나지만,
어느 정도 단계가 지나면 내가 서비스 하고자 하는 그림과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흐름을 잃지 않고 꾸준히 나가는게 중요하다.
방심하지 말아야 하고 자만하지도 말아야 한다.
살면서 성공해 본 적이 없어서 실패의 두려움은 없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즐기자.
그리고 내 주위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생활하자.
1년에 한 번 씩은 갑자기 떠오른다. 97년 말, 가을이었는지
겨울이었는지.
인하대 후문가 멀리 있던 미네르바의 부엉이.
도대체 그 카페에서 나눈 이야기는 하나도 생각 안나는데, 몇몇 이미지들과 설명할 수 없는 아련한 이 느낌은 무엇일까.
언젠가, 조용한 날에 인하대 후문을 거닐 날이 오겠지.
BOOWY-[LIVE]19880405 NO. NEW YORK[LAST GIGS].mpg (via boowy1988445)
80년대 일본 Rock 음악의 상징이자
88년 해체 후 지금까지도 일본의 대중음악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전설.
너무나도 유명한 Kyosuke Himuro와 Tomoyasu Hotei 가 속해있던 그룹이다.
Last GIGS 는 그들의 마지막 공연이었고 난 1장짜리 CD,
Complete 2장짜리 CD 모두 가지고 있다.
고등학교 때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 음악, 영화 등에 빠진 시절도 있었다.
Boøwy 는 그 시절 그리고 지금까지도 가장 좋아하는 일본 뮤지션이다.
음악이 정말 독특하거든..
I felt like this was something. Being with you made me feel more… just, feel more, I guess. I’m not used to feeling that with anyone. Everything I was running away from, I don’t even know what it is—fear, I guess—I felt all of that with you.

(via sixfeetumblr)
몇 년 전에는
나에게 최면을 걸면서까지 억지로 사랑해보려고 했지만,
내가 사랑하지 않아서 상대방에게 상처만 주었다.
더 오래 전에는
사랑할 수 있었지만 내가 그러지 못했다.
지금은
내가 노력하고 찾는다고 오지 않는다.
놓치기 싫은 소중함이라고 생각해도 내 뜻대로 살 수는 없다.
힘이 쭉 빠지면서 허무하다.
그래도 모든 것을 내 가슴속에 담아 참고 있는 나를 보니
조금은 어른이 된 것 같다.
I think if you’re afraid of something, it probably means you should do it.
Gilbert O'Sullivan Alone Again original version the song that i love no : 1 (via yoramla)
왜 이렇게 한 번에, 모두 나를 거부하는 것일까.
왜 나를 떠나는 거야.
남은 사람이 없다면 또 혼자가 되는거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내 모습이 얼마나 싫었는지,
이미 문 닫은 블로그지만 티스토리 블로그를 지워버렸다.
겉은 티스토리지만 사실 이글루스, 태터툴즈 시절 글이 대부분이다.
가끔 옛날 생각하면서 보곤 했었는데, 이젠 백업 xml 파일 밖에 없다.
이 텀블러도 지우고, 트위터, 페이스북 계정들도 없애버리려고 했다.
별 것도 없지만, 인터넷에서 내 정체성을 모두 지워버리고
도망가고 싶었다.
아마…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다면 곧 그렇게 되겠지.
아무래도, 치료해야 할 병인 것 같다.
Treme Trailer #3 (Long Version) (via WireLover2)
The Wire 제작진이 만든 드라마를 또 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결혼 1주년 기념 (배낭)여행, 남해.
처음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 여행이었다. 금요일 밤 부터 일요일 밤까지 긴
시간처럼 느껴졌던 알찬 스케줄.
그런데 난 좀 더 멋지고 낭만적일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변해가는 건가.
한 달 후면 이 곳을 벗어나 마치 시간을 되돌린 것 처럼 다시 작은 회사로 들어간다. 무언가 얻는게 있으면 반드시 잃는게 있는 법. 난 내가 선택하고도 단 하나의 조각까지 잃기 싫었나보다.
미생 시즌1 마지막편을 보고 힘을 얻었다.
Goodbye NEXON… 존재의 가벼움은 참기 힘들었다. 그래도 넥슨 시절은 평생 못 잊을 내 인생의 전환점인건 분명하다.
http://cartoon.media.daum.net/webtoon/viewer/21728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1년 반 전에 산 책이지만 아직 시도조차 못했다.
그 책을 읽기엔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 감성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책들을 사곤 했다.
정신차리자.
자신에게 맞지도 않는 가면을 씌우려 하지말고,
계속 불어나는 거짓된 마음도 버리자.
실제 나의 모습을 절실히 느낄 때 받을 상처를
두려워하지 말자.
그래도 내가 가진 장점이 있을테니, 그것을
극대화 시키고 더 이상 포장하지 말자.

안동, 청송, 울진, 삼척, 고성…
일주일동안 가슴속에 남는 여행의 추억을 만들었다.
잊을 수 없는 저 크림치즈빵의 여운을 기억하면서 다음 여정을 그려본다.
…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싶어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랑은 내가 먼저 다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버리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물잔과 같았다. … -노희경

우리동네 아트나인 맘에든다. 12층 야외테라스가 있는 식당도 좋고 이렇게 노을을 볼 수 있는 극장 안 분위기도 좋다.
오늘 본 Medianeras(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도 만족!
가끔 야외 테이블에서 파스타와 맥주, 와인을 즐기러 와야겠다.
결국 게임회사에 대한 미련과 적성에 맞지 않았던 회사에 대한 고민이 맞물려, 바로 결정을 내리고 수 많은 면접 끝에 이직이 확정됐다.
지난 8월말, N사를 퇴사하고 소셜마케팅회사로 이직했던건 나의 실수였다. N사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했던 조급한 판단이었고, 출근 첫 날부터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라는 느낌이 내 머리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다시 구직활동을 하면서 불안감과 초조함에 괴로웠지만 배운 것도 많다. 아, 이게 어쩌면 마지막 이직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현실. 내 나이와 경력, 능력을 고려해볼때 이번에 이직하는 곳에서 회사생활을 마무리 할 것 같은 예감. 모든 것이 초라했던 나를 바라보며 하루 하루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운 좋게도 내가 원하는 업무를 할 수 있는 곳으로 가게 됐다. 더군다나 유명한 미국회사가 인수한 게임개발스튜디오. 면접을 망쳤던 대기업 공채도 합격했다는 메일이 왔지만 가지 않을 생각이다. 그곳에서의 모든게 뻔히 보이니까.
합격 소식을 듣는 순간 날아갈 듯 기뻤다. 아내에게 감사한다. 단 한순간도 나를 재촉하지 않고 계속 믿어주었다. 존경스럽다…
아직 정식 출근까지는 시간이 있으니 공부도 다시 하고, 정신력 강화에 힘을 쓸 것이다.
우선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꺼려하는 일을 하거나 맡아본적이 많지 않다. 즉, 누구나 같은 상황에서 힘들거나 어려운 일은 경험했지만, 선택이 다른 상황에선 대부분 더 가치있거나 재밌는 일을 맡아왔다.
이번 회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져서 놀랐다. 물론 따져보면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전 회사의 경력과 게임팀에서의 경력 등.
그리고 나만의 ‘촉'도 있는데 회사생활을 예로 들면, 사람을 보는 순간, 공간을 둘러보는 순간 바로 촉이 온다. 이 공간에서 이 사람들과 최소한 몇 년은 일할 것 같은 느낌. 넥슨을 관둘 때도 비슷했다. 친한 몇 명은 꽤 길게 인연을 유지할 것 같았고 그건 회사공간과 상관없었다. 나머지는 정말 보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렸다. 그래서 급하게 그만두고 어울리지도 않는 마케팅 회사로 들어갔다. 넥슨 퇴사후 10일 동안 쉬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급하게 이직을 결정했고 무엇보다도 그 마케팅 회사에 대한 '촉'이 안좋았기 때문이었다. 회사가 나쁘거나 사람들이 안 좋았던게 아니었다. 내 일이 아니라는 느낌, 그리고 왠지 여기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할 것 같은 예감등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조직 규모나 체계의 변화가 커서 적응하기도 힘들었다.
지금 이 곳에서 첫 출근한날, 팀원 한 명을 보자마자 '촉'이 왔다. 왠지 이 사람과는 인연이 없을 것 같은. 정말로 오늘 그 사람은 다른 부서로 이동하게 됐다. 사실 내가 원하던 것이 이뤄진 것이기도 하다.
이제 내 능력을 시험할 때가 왔다.

너무 비싼 가격, 믿을 수 없는 위생, 불친절, 늘어가는 조미료
함유량.
서울에서 이름있는 평양냉면 집들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광명에 있는 “정인면옥”. 심지어 수육까지 매우 훌륭하다. 하루에 한번씩 저 평양냉면이 생각난다. 아직 가보지 못한 집들이 더 많지만 적어도 전국에서도 손에 꼽힐만한 맛이 아닐까 생각된다!
Six Feet Under - Transatlanticism (tribute video) (via narvinek)
(스포일러 비디오)
보고 싶은 Claire
클레어 같은 여자를 만나고 싶어 아직까지 이 모양인거냐.
サザンオールスターズ LOVE AFFAIR~秘密のデート~ (via southwind88)
2008년 30주년을 마지막으로 무기한 활동 정지에 들어간 Southern All Stars
이렇게 다양한 음악 스타일과 주제를 표현하면서도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 밴드가 있다는게 부럽기도 하다.
당신이 아티스트라면 한 번 연구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구와타 게이스케(桑田佳祐)

역시나 실패한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 두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으니
다음번엔 꼭 성공하리라.
아무래도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를 계속 가열하는건 아닌것 같다. 마지막에만
쓰고 가열은 다른 등급의 오일로. 간을 하는 소금의 양과 질에 신경써야하고
육수가 없는게 레스토랑과 큰 차이일지도!
알리오 올리오야 말로 쉬운 레시피로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궁극의
파스타!
내 청춘의 하이라이트는 고등학교가 아니라 중학교 시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춘기의 절정이었을까?)
남자3-4, 여자2-3명 으로 이뤄진 단짝 패거리가 있었고, 주변에서 싸움이 끊이지 않아 늘 긴장해야했다. 그리고 어리숙했던 고백과 성공, 흔한 패턴의 전학 이별까지.
그 중 가장 친했던 J.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했지만 어떤 이유로 인해 관계가 끊어졌다. 그리고 10년이 더 흐른 뒤에 당시 싸이월드를 이용해 내가 연락을 했고 우린 몇 번 만나 회포를 풀었다. 그 때 난 나에게 놀랐다. J는 자신이 가진 추억의 전부는 ‘나'라고 말할 정도인데, 난 고등학교때 J에게 무엇때문에 화가 나서 관계를 끊었는지 조차도 기억 못하고 있었다. 작은 것 하나라도 틀어지는 것을 참지 못했던 내가 그렇게 쉽게 J와 관계를 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J도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J와는 또 연락이 끊겼다. 6-7년도 넘은 것 같다. 다시 만나면 물어보고 싶다. 내가 또 잘못한게 있는건지, 아니면 마음에 안드는 쪽으로 변한건지.
며칠 전 단짝 패거리중 한명인 H와 연락이 닿았다. 무려 20년 만에. 난 그녀에게 한 번도 이성의 느낌을 가진 적은 없었다. 다른 여자 아이를 계속 좋아하고 있었고 H와는 같은 반 단짝이었다. J와 나, H 그리고 공부를 잘했던 S, 잘 기억나지 않은 다른 여자애들까지. 특별한 사건들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H는 잊을 수 없는 이름이자 친구다. 아주 친하기도 했지만 나에겐 사춘기 시절 남자친구만큼 가깝고 편했던 이성친구였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6-7년전 J를 만났을때 H와 S가 만났다가 헤어졌고 S는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H는 얼마전에 J가 연락을 해 왔다고 했다. H를 둘러싸고 다시 모이게 되는 것일까?
H와 연락이 되는 순간 온 몸에 전율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만나고 싶었지만 H는 한국에 없다. 난 로드무비를 좋아하고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러 떠나는 것을 좋아한다. 남미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약 2주간 부산에서부터 올라오면서 여행 친구들을 만나면서 작은 회포를 풀었던 적도 있다. 'H를 만나러 갈까?’ 하는 생각을 했다.
H를 만나면 과거의 기억들을 정리하고 내 삶의 전환점이 될 자극을 받을 것 같은 느낌이 왔기 때문이다. 만나서 좋아도 괜찮고 큰 실망을 해도 괜찮다. 결국은 H를 만나러 가는 나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평생 한 번은, 어릴 적 친구를 만나러 먼 길을 떠나보고 싶었다.
색채가 없는 나는 H를 만날 수 있을까.
다른 친구들 입장과 마음도 생각해야지.
내가 외롭고 힘들다고 예전 생각만 하면서 위로 받으려고 하지마.
어제 속으로 몇 번을 울었는지 모른다. 정장을 차려입은 내가 얼마나 초라하게 느껴졌는지. 반나절도 안되 그 취급을 받고. 어머니가 회사 괜찮냐고 물어오는데 울고 싶었다. 너무 미안하고 항상 고마워서.
그런데 전화할 친구가 없다. 모두 다른 사람이 있거나 가정이 있어서. 아니, 그럴거면 뭐하러 친구라고 부르니? 내가 제일 친하다고 믿었던 친구들도 마찬가지. 이제 정말 연락하지 말아야지.
혼자 여행하면서 행복했잖아. 어제 일은 무언가 운명적인 느낌이 들어. 네가 지난 일년 동안 느낀 그대로 살라고. 돈 때문에 욕구를 억누르지 말라고.
생각할 시간은 이제 하루 밖에 없어.
1. 여름여행
- 올해 최고의 여행지 울진에서 발견한 보석같은 숙소와
아저씨,아주머니.
- 80s~90s 음악들과 함께한 명파 해수욕장에서의 마지막 밤.
- 국내 최고의 제과점 맘모스 베이커리의 크림치즈빵.
- 동해 해안도로 일주.
2. 넥슨 퇴사 후 두 달간의 방황
- 어떻게 버텼는지, 아직도 생각할 때 마다 괴롭다…
3. 결혼 1주년 기념여행
- 버스타고 다닌 남해 여행.
4. 박미모(現 PFE) 연합엠티
- 제천(청풍호), 영월.
- 한 사람을 걱정하는 모임에서 최근 안티모임으로 탈바꿈.
5.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 양준모, 선민 완전 소름.
중학교 졸업 이후 보지 못했던 친구를 만났다. 만나고 몇 마디 나누자마자 잊었던 어릴적 내 감정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중학교 단짝들 중 왜 이 친구만 덜 친했고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지.
앞으로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을 것 같다. 내가 과거의 경험들과 관계들을 회고하는 것은, 앞으로 내 가치관과 맞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위한 선행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오늘 ‘심야식당’ 같은 가게를 발견해서 가슴속 한편은 뿌듯하다^^
고등어초회, 시메사바 (しめさば)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삶은 결국 목표를 상실하고 존재 가치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자본주의를 거부하든가 아니면 그 체계의 끝까지 가보든가. 아니면 지금처럼 노예로 살다가 죽겠지.
하지만 그때의 나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언젠가, 누군가에게,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간이란 건 어떤 경우에는, 그 인간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오래 전에 이즈미가 해준 말을 떠올렸다. “넌 틀림없이 멋진 사람이 될 거야. 네 안에는 아주 훌륭한 것이 있으니 말이야” 나는 그 말을 떠올릴 때마다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내 안에는 멋있는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어, 이즈미. 지금쯤은 너도 그 사실을 잘 알게 됐겠지만 말이야.
대학을 들어간 스무 살 이후 보다,
중-고등학교 6년 동안 더 다양하고 많은 경험을 하고 사람들을 만났었다.
특히 고3, 그리고 수능 이후…
19살 이었던 나는 서른 넘은 그 사람들이 왜 그런지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렇게 상처받고 힘들어 할까.
왜 아무것도 해 놓은게 없다고 자책할까.
왜 눈물을 흘릴까.
그리고 10년도 훨씬 지난 지금..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빠르게 지난 것 같지만
13년 이란 시간은 정말 긴 시간 이었다.
당연히 아쉽고 후회하고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고
불안해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나와 내 주위가 어둡고 비관적이고 도피적이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요즘 다시 읽었더니 심장이 떨리고 내 과거가 생각나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난 아직도 과거로부터의 영향에 대해서 어찌할 줄 모르는 상태인데, 어쩌면 이 책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몇 번 더 읽어봐야겠다. 한 명씩 바꿔가면서 감정이입을 해 보고 싶다.
그리고.. 줌파 라히리, 폴 오스터의 남은 소설들도 읽어보자.
영화 ‘더 헌트'는 보는 내내 불편한 영화였다. 그리고 15년전 내가 속했던 조직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다를게 없었다. 주관적 정의에 사로잡혀 진실따위는 중요치 않았던 사람들. 주로 선배들이었다. 나는 최소한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마녀사냥을 하지 말자고 그랬지만 나 또한 그들에게 왕따 당하고 사냥당했다.
그 이후 (어쩌면 그 전부터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단 한 번도 그 선배들과 동기, 후배들을 친구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늘처럼 높아보였던 선배들도 그저 이십대 중후반의 최소한의 판단력과 연민조차 없는 인간들이었다. 그 사람들은 (내가 보기에) 지금도 우물안 속에서 가식으로 가득찬 가면을 쓴 채 살고 있거나, 자신들이 싸웠던 가치는 모두 쇼였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사악한 공동체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영화에서 친구의 눈빛을 보고 진실을 알게되는 장면이 나온다. 15년전 그 일들은 이제 진실은 중요하지도 않고 알 수도 없게 돼버렸다. 그리고 그때도 그랬고 아마 지금도 그럴것 같은데, 난 그 사람의 눈빛을 보고 무엇이 진실인지 느끼지 못할 것이다.
“Stay On These Roads”
The cold has a voice
It talks to me
Stillborn, by choice
It airs no need to hold
Old man feels the cold…
Oh baby don’t
‘cause I’ve been told
Stay on these roads
We shall meet, I know
Stay on…my love
We shall meet, I know
I know
Where joy should reign
These skies restrain
'Shadow your love…’
The voice trails off again
Old man feels the cold
Oh baby don’t
'cause I’ve been told
Stay on these roads
We shall meet, I know
Stay on…my love
You feel so weak, be strong
Stay on, stay on
We shall meet, I know
I know
I know, my love, I know
Feel the cold
Winter’s calling on my home..
회사가 문 닫는다. Disney에서 결정한대로. 처음 경험하는 이 상황. 7월까지 나오는 월급으로 버틸수는 있겠지만, 이제 내 삶에 전환점이 온 것 같다.
신중하게 고민할 것이다. 마흔 이후의 내 삶에 대해서. 또 지금처럼 회사를 다닐 것인지 아니면 사업을 할 것인지. 혹은 먼 곳으로 이사가서 소박하게 살 것인지.
졸업장 하나 없고 경력도 초라한 내가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 배낭여행도 다니면서 즐겁게 살아왔어. 고생도 많았고 운도 좋았어. 이제 방향을 바꿀 때가 왔네…
개발자의 일을 한번에 벗어나려고 했던건 처음부터 무리였던건가?
얼마전부터 하고 싶었던 “글 쓰는” 일을 아예 안하는건
아니니,
조금 더 멀리 보고 노력해야 할까.
아니면 난 이쪽 저쪽 어느것 하나 잘하지 못 하는 인간일 뿐인가.
오늘은 폭발직전에 참았고 바로 비굴함을 보인 기념비적인 날. 지금 이 나이에, 이 경력에, 이런 시대에 대학교 2학단위 선배보다 못한 인지와 경험, 가치관을 가진 팀장과 지내야 하다니. 살면서 한번도 가져본적 없는 편견, “여자라서 그런가"라는 단서를 붙이게 만들었다. 여자친구와 밀당 하는 것 보다 힘들다.
하루 하루가 파란만장하다.
“Feria en mi casa” Pilsen. Flashmob. (by hechaporpaisas)
Colombia, Medellin, Antioquia, Paisas…
휴…이 정도면 거의 향수병..
자존심 상해.
비참해.
이해할 수 없어.
…다 내가 한 짓 그대로 받는건가봐.
아내, 양가 부모님 총 6명이 떠나는 오키나와 가족여행. 가난한 장기 배낭여행자 출신인 나는 역시 짧은 여정을 준비하고 계획하기에 어울리지 않았다. 실수도 많아서 생돈도 꽤 나갔고. 뭐, 그래도 일단 준비완료잖아!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싶다. 술자리에서 아버지가 그러셨다. 가족들에게 피해주지 않고 이 몸 그대로 즐기며 살 날은 길어야 10년이라고. 난 가능하면 많은 시간을 가족들과 보내려 애쓰고 있는데, 그래서 그 만남들 모두가 소중하고 가슴속에 간직되길 바란다.
오키나와가 우리 가족에게 어떤 선물을 줄지 기대된다!
오키나와 4박5일은 완벽했다. 물 좋고 공기 좋은 그 곳에서 우리 6명은 평생 기억에 남을만한 여행을 했다. 물론 때때로 성숙하지 못한 내 모습에 실망하기도 했지만, 아내와 나는 행복한 부모님들을 보며 큰 보람을 느꼈다.
오키나와에서 생산되는 Orion 맥주는 다른 일본 본토 맥주를 비웃기라도 하듯, 감동 그 자체였다. 맥주라고 부를만한게 하나도 없는 우리나라가 정말 싫다.
아직 제주도를 못가봤는데 안가도 될 것 같다. 다음에도 난 오키나와를 선택해서 해보지 못한 여행을 하련다.
이번 백수시절은 예전과 다른 점들이 있다. 취업하겠다는 의지가 거의 없고, 프로그래밍을 공부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나에 대해 몰랐던것 혹은 무의식적으로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깨닫게 됐다. 그것은…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으며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보잘 것 없는 인생이라는 것이다.
스무살 때부터 17년 동안 난 무엇을 해 온 것일까.
무시 당하는 삶도 이제 지치기 시작.
그리고 내 평생의 친구에게 배신감을 느끼기 시작.
당연하지… 모두 ‘내'가 아니니까.
그 누구도 지금의 나를 느낄수 없어.
…
이 정도로 끝낼까
나 자신에 대해 알아 가고 있다. 전과는 전혀 다른 깊이로. 우울증에 걸리고 좌절하고 실패한다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음에 또 다시 일어설 힘이 생긴다.
끝이 안보였던 거대한 남미땅에 서 있던 나를 회상해보자. 세상의 주인공이었고 그 누구도 막지못할 자신감과 삶의 행복이 있었다. 지금 이 곳에서도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We have to go back !!!

Dean Stockwell and Dennis Hopper - Best perfomance (by DavidSalomon)
살면서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씬 중 하나. 소름돋을 정도의 불안감과 공포감이 몰려온다. 로이 오비슨의 이 몽환적인 노래는 그 효과를 극대화 시켰다.
이 영화 블루 벨벳 또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영화 중 하나다. 데이빗 린치는 그저 찬양할 수 밖에.
http://u2island.posterous.com/#!/slideshow
이런 기능이 있다는 것을 귀국한 후에 알았다.
블로그에 대부분 500px로 사진을 올려서 전체화면 슬라이드로 보니 아쉽네.
그래도 F11키를 눌러놓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어설픈 감상에 빠진건 아니고, 지금 나와는 너무 달랐던 내가 사진속에 보이니까. 아주 많이 행복했고 나에게는 최고의 낭만이었어.
다음 여행은 장기간의 세계 일주가 목표지만 마지막은 남미가 되겠지. 감히 마음의 고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 나를 반겨줄 사람들이 있는 곳.
혼자 떠나지는 않을거야. 내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게 된다면 그 사람과 같이 떠나고 싶다.

그래, 어른이 되지 않고도 살아남기 위해 노력해왔지. 지금도 그 경계에서 머뭇거리며 어느 곳으로도 옮기지 못하고 있어.
어른이 되기를 포기 못하는 내 나약함과 비겁함 때문이겠지.
(Frances Ha는 최근에 본 영화중 가장 사랑스러우며 10년전 나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여행이었다)
약 5년 전 부터 난 처음으로 ‘후회되는 것’ 한 가지를 인정했다. 바로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것. 다시 돌아간다면 따위의 가정은 필요없다. 어차피 시공간 자체가 그렇게 흘러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 미련을 가지냐고? 억지로라도 학사학위를 땄다면 내가 섰던 기로에서 조금 더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했을테니까.
지금은… 힘이 바닥까지 떨어져서,
배고프고 불안해.
조금의 자신감도 찾을 수 없는데, 누가 거짓이라도 나에게 힘을 줬으면
좋겠다.
위로같은거 말고…
두 세번의 기회를 스스로 버리고 한 번은 면접에서 떨어졌고. 내가 버린 일들에 대한 미련은 전혀 없고 면접에서 떨어진 회사도 사실 안간게 잘된 일이다. 그리고 내 나이가 적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적어도 우리나라 IT사회에서는. 그래서 일단 도피 계획을 세우고 마지막으로 게임회사를 찔러봤더니 전회사에서 잠깐 보고 내 여행 중에 관심을 보여줬던 고마운 분이 직원추천을 해줬다. 서류통과하고 정말 오랜만에 기술면접이라는 것을 보게 된다.
결론은 완전 개망신. 1년 사이에 다 까먹기도 했지만 내 원래 실력이 형편없다. 1시간 동안 괴로웠다. 자꾸 다른 생각이 나서 면접에 집중할 수 없었고 떨고 있다는 인상까지 심어준 것 같다. 이미 떨어졌다고 판단했다. 내가 면접관이라도 나같은 사람 경력으로 안뽑겠다.
마지막에는 그냥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말해버리고 나왔다. “나 실력 없는거 알고 슈퍼개발자 절대 못된다는것도 안다. 공학적인 머리도 없어서 코드도 아름답게 잘 못짠다. 지금까지 적당한 개발실력과 그 외의 장점가지고 일하면서 살았다. 이런 사람이니 알아서들 생각하시라”. 마치 영화 쇼생크탈출에서 레드(모건 프리먼)가 마지막 가석방 심사때 말했던 분위기와 비슷했다. 그런데 붙었다네. 이게 말이돼? 전혀 기쁘지가 않다. ‘그냥 내 원래 계획대로 IT포기하고 다시 도망가도록 내버려둬ㅠㅠ’. 혹은, 사람 놀리는건가? 물론 아직 인사면접, 임원면접이 남아있다.
에효!! 일단 붙고 보자. 내 학력, 실력에 들어갈 수 있는 회사가 아니니까 기회라면 그냥 잡고 마음의 안정을 찾으면 그때 남은 인생 계획을 세워보자고.
대학교 동아리 동문회 겸 직딩밴드하는 선후배들의 공연. 가기 싫다. 그냥 시끄럽기만 할 것 같아.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지만 아무 얘기도 못할 것 같아. 한 두번도 아니고 가봐서 알잖아. 아무 보람도 없이 일요일 아침 냄새나는 몸으로 집에 돌아온다는 것을.
게으른 사람들, 변하지 않는 사람들, 고집불통인 사람들, 잘난척만 하는 사람들, 우물안 개구리들. 이십대 중반까지 내 청춘의 핵심이었던 추억의 사람들이 고작 이거라니. 물론 친구들도 있긴 해.
그래도 나를 생각해주는 몇몇만 만나고, 이제 다른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테야. 당장은 여행을 못가니 그렇게는 못만날테고 내가 참여할 수 있는 모임이 있을거야. 찾아보자.

아래 그렇게 안간다고 써 놓고 가고야 말았다. 요즘 마음 약해지게 만드는 선배들이 있는데 전화와서 왜 안오냐고 그러자 바로 마음이 바뀌고 말았다. 아무튼 몇 년 만에 동아리 행사에 참석했고, 선후배들의 멋진 공연도 처음 보았다. 뒷풀이도 역시 매우 재밌었다.
물론 예상대로 변해버린 사람들에 대한 거부감은 그대로였다. 원래 본성이 그런건지 사회생활을 하면서 겉멋이 들고 가치관이 달라진건지 모르지만, 한마디로 재수없었다! 어차피 안 볼 사람들이니까…
그리고 오랜만에 본 선배누나와의 긴 대화……
벌써 10년 전이구나. 그 사람도 그때 너무 어렸었다고 말할 줄 몰랐다. 난
나만 그런줄 알았는데. 이십대 중반이 그렇게 어린 시절이었나… 참 신기하다.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만나는 것에 정답이 있겠냐만, 노력없이
감성에만 빠져서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이제 안다.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하면 오히려 스무살 이후 내 사랑은 모두 철부지 같아. 부끄럽다. 그래도, 능력은 없었지만 앞으로는 못 느낄것 같은 감정의 기억은 지금도 남아있잖아.
내 생애 회사생활중 가장 행복하고 재밌는 시절을 보내고 있다. 최근 몇년간 하지 않았던 야근과 집에서 일하기, 주말에도 일 생각하기등. 개발자로서의 삶에 대해 회의를 느끼던 중 만난 보석같은 인연.
성숙해진 내 마음가짐도 한몫했겠지만 사람, 복지, 사업방향등 연봉을 제외한 모든 것이 마음에 든다. 당분간 연봉에 너무 얽매이지 않기로 했다.
역시 난 대기업보단 Startup 체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