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mortalité

고통

아버지 암이 전이되어 심각한 상태가 시작됐다.

난 내 삶의 행복한 부분만 기억하고 있던 것 같다. 돌이켜보니 내가 중3때 동생이 자살시도 했었고 10년 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 모든게 충격이고 슬픔 이었지만, 16살 때도 25살 때도 나의 ‘삶’이나 ‘죽음’을 생각하진 못했다.

그 누구보다 건강했던 아버지가 하루 아침에 암환자가 된 이후, 난 건강과 암에 관련된 공부만 한 게 아니었다. 아버지의 삶이 마치 내 것처럼 매일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경험을 하고 있고, 나도 마치 다 산 것처럼 지금까지의 모든 추억이 밤마다 생각나 괴롭다. 아름다운 추억일수록 가슴이 더 미어진다.

바짝 마른 아버지가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눈물을 참기 힘들고 고통스럽다. 차라리 교통사고로 죽는게 낫다. 어제 응급실에 실려갔는데, 예정되어있는 임상시험 항암치료를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웰다잉을 위해 항암치료를 해야 할까, 아니면 다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까.

부모님의 투병 혹은 죽음을 경험하는 나이가 되니, 나도 죽는다는 것이 더 실감나게 느껴진다. 지금까지는 죽을 때의 고통이 무서웠는데, 이제는 암 같은 병이 무섭다.

언제까지 살 지 고민하지 말고, 어떻게 살 지 생각하는게 더 중요한데 일상 속에서 항상 무상(無常)을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그 누구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내 주변에 나처럼 힘든 사람이 있다면 나도 그들에게 도움이나 위로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나마 이렇게 지껄이는게 낫다.

회사에 정신상담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용해 볼까, 사실 이런 것 보다 암환자 가족 모임을 나가고 싶다. 그 사람들만 나에게 위로가 될 것 같다.

암 판정 받고 아버지가 처음 한 말은, “국민학교 졸업하고 서울 올라와서, 지금까지 정말 재밌게 살았다. 후회없이 먹고 놀고 일했다.” 60년 넘게 서울에서의 삶을 사랑했던 분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은 계속 변한다 그 후에, “가족 모두 행복하고 잘 풀리고 있는데, 세상 한창 즐길 수 있는데…” 라며.

난 아버지의 죽음을 준비해야 할까, 끝까지 현대 의학을 믿고 포기하지 말까, 아니면 하고 싶은거 다 하시면서 이 세상과 작별 할 수 있도록 해드릴까.

이 고통은 언젠가 끝나겠지만 아버지에 대한 추억, 눈물, 그리움은 영원할 것이다. 난 자식이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