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생각하며 쓴 메모
2021-05-26
우리 모두가 겪는 문제 중 하나는, 지나고 나서야 후회하고 지나고 나서야 그 때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는 것 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초등학교 졸업 후 서울에 와서 60년 넘는 시간 동안 후회 없이 살았다고 하셨습니다. 하고 싶은거, 먹고 싶은거, 가고 싶은 곳 모두 즐기고 경험해서 미련이 없다고. 전 이 말을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또 나도 이렇게 후회없이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듭니다.
2021-06-27
많이 힘들다. 마른 몸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를 때 마다 눈물이 나온다. 오늘은 아버지가 장인어른과 통화하면서 우셨고 나도 울었다. 난 마음을 가다듬고 부모님의 마음 안정을 위해 많은 얘기를 해드렸다. 집에 와서 밤에 아버지가 오늘 좋은 만남이었다며, 마음이 편안하다고 메시지를 보내셨다. 이 시기를 견뎌내야 하는데 나 혼자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아내가 있어서 큰 힘이 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게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 혜진이의 죽음때 난 25살 이었고 그때의 슬픔은 지금과 달랐다. 그건 내가 죽기 전까지 극복해야할 상처다.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보는 것도 너무 괴롭다.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까. 수 많은 영상을 보면서 많이 준비했는데 생각보다 담담해지기가 어렵다. 한 사람의 인생이 정말 행복했다는 것을 죽음 앞에서 받아들이는게 잘 안된다. 이제 난 모든 것에서 “무상"을 보고 느끼게 됐다.
2021-06-29
아산 병원 가는 길, 아버지와 손을 잡고 1km을 걸었다. 병원을 떠나기 전 아버지에게 마음 편히 가지라는 말을 하면서 난 울었고, 아버지와 악수했고 또 악수했다. 아버지와 손을 이렇게 잡아 본 적은 아주 어렸을때 이후 처음이라고 아내에게 말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어렸을때도 이런적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평일 금주 법칙을 어기고 술을 마시고 있다.
2021-07-02
2021년 7월 1일 오후 12시에 입실. 밤 9시 13분 수술 끝나고 중환자실로. 9시 26분에 아버지가 깨어나셨다는 연락을 받음. 그래도 니네 아버지 강단이 있다며 꼭 견뎌내실거라던 어머니 말이 맞았다. 난 부모님 댁에서 9시 조금 넘어서 나왔는데 집으로 가는 길에 전화를 받았다. 눈물이 또 나왔다. 장인 어른도 전화 주셨고 상황을 말씀드렸다. 9시간 넘는 대수술을 견딘 아버지가 너무 자랑스럽다. 물론, 이제부터 또 다른 싸움의 시작이지만 큰 고비를 넘겼다. 이번주는 하루 하루 견디기 힘들었고 오늘은 더 길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리고 너무 고맙습니다.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남았던 상관없다. 하루 하루 후회없는 삶의 추억을 만들어 드릴 것이다.
2022-01-26
아빠, 또 싸우면 됩니다. 나도 피하지 않을게요.
2022-03-31
To. 연구간호사님
아버지는 지난주 화요일에 돌아가셨고, 수목장에 잘 모셨습니다. 가족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주무시듯 편안히 가셨습니다. 통증이 없어서 전 말기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조사해보니 마지막 2-3주는 임종 전 증상이랑 딱 맞아떨어지네요(의사는 이걸 몰랐을까요? 정말 화가 납니다). 다행히 당일 아버지께 하고 싶은 말은 다 했고, 아버지도 시간이 왔다고 생각하셨는지 어머니께도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담당 의료진도 아닌데 여러모로 신경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김성배 교수의 방식에는 불만이 많습니다.
국소적이고 파편화된 치료만 할 줄 아는게 현대의학의 한계라고 생각했지만, 적어도 주치의라면 돌아가시기 일주일전 응급실에 갔는데, 앞으로 이런 일로 응급실 와서 돈 쓰지 말라는 말만 하고 가는게 정상인가요. 그 전에 몸도 제대로 못 움직이는 환자를 피 검사가 양호하다는 이유만으로 항암치료를 하는게 의사의 정확한 판단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을 환자로 생각하는게 아니라, 재료로만 취급하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꼭 김성배 교수가 아니더라도 대부분 비슷한 교육을 받고 의사가 됐으니 똑같을 거라 생각합니다. 직장으로 전이된 후, 여명이 짧을 수도 있으니 웰다잉 혹은 행복한 죽음을 준비하라는 조언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김성배는 전이됐는데 아주 특이한 현상이다 그런데 면역항암제 좋은거 있으니 해봐라 이 말이 전부였습니다. 부작용과 다른 준비에 대한 얘기는 입에 담지도 않았구요.
제가 의학계에서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 모든 사람에게 김성배 교수는 피하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나 주변에 암치료가 필요한 상황이 오면, 저 사람에게는 절대 가지 않을거에요.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이 그저 돈 벌어주는 치료용 재료로만 생각하는 의사가 앞으로는 사라지길 바랍니다. 전체 그림과 환자의 상태를 살펴보지도 않는 의사에게 누가 가겠습니까.
별개로, 아산 병원 간호사 분들과 모든 분들이 보여주신 친절함과 정성에 감사드립니다. 김형렬 교수가 수술 잘 해주셔서 마지막 6개월 동안 가족여행도 가고 삶을 즐기셨습니다.
기술과 장비는 발전했지만, 여전히 진단과 전체적인 관리를 못하는 현대의학의 현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인간 이하의 재료 취급 받지 않으려면, 저부터 스스로 공부하고 몸이 반응하는 것들을 믿고 대응해야겠네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